• 시장해선 안 될 사람, 노옥희
        2006년 05월 24일 09: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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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해선 안 될 사람, 노옥희

    어찌 관상을 보게 되었는지, 어떤 점쟁이가 “김창현은 관운이 없다”고 했다. 말마따나 김창현 전 사무총장은 2002년에는 송철호에게 울산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이번에는 노옥희다. 선거가 꼭 절반에 이른 23일 밤, 레디앙이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 노옥희를 만났다.
    공직후보 선출의 으뜸가는 기준은 그 공직을 잘 수행할만한 능력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지만, 민주노동당 같은 이념정당에서 그리고 이제 막 커가는 신생정당에서 그것만을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열심히 당 일을 해왔는가, 아닌 말로 당에 얼마나 충성했는가 하는 기준도 무시할 수 없다. 당 기여도에서 보자면 노옥희 후보는 김창현 전 총장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 ‘민주노총 경선’을 통해 선출된 노옥희 후보에게, 왜 하필이면 당신이어야 하는가를 물었다.
    “김창현 동지가 오랫동안 당 일을 해온 것은 사실이죠. 저는 그 분만큼 헌신하지 못했고요. 하지만 어떻게 당 일을 했는가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요즘 당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서 그 분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이 노동계 전체를 대표하지도 못하고요. 전체 노동자 중 일부가 노조에 가입돼 있고, 그 조직노동자 중 일부가 당원인 현실에서 노동계 전체를 아우르기 위한 노력으로 민주노총 경선을 했던 거죠. 당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제가 후보로 선출된 것이 당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몇 번인가 아우름을 강조했고, ‘정파적으로 직접 부딪히지 않았던’ 자신의 활동 전력을 노동자들이 장점으로 평가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혹시 무소신은 아닌가, 정당 간부가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에 따른 정치활동을 안 하는 것은 비겁한 것은 아닐까?
    “저도 정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전교조 내부 의견그룹에 속해 활동하기도 했고요. 단지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아직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죠. 제가 당에 대해 아는 것도 적고, 당 일을 많이 했던 것도 아니니, 정파 활동이라 할만한 게 없었던 거죠.”
    노옥희 선본은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공언했다. 물론 그 약속에는 시장 후보 뿐 아니라, 북구청장 동구청장 후보의 약진까지도 포함된다. 그런데 선거운동 절반이 지난 지금도 당 소속 후보들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내부 결속이 잘 안됩니다. 대공장 노동자들이 이제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예열을 위한 예선까지 거쳤는데, 왜 그러지? 노옥희 후보 추대에 간여했던 한 당 간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노옥희 후보의 시작은 말 그대로 자연발생적이었어요. 당 정파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 선거운동은 정파적이더라고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이지만, 울산 풍토병이 또 재발한 게 아닐까 걱정된다.
    노 후보는 또 다른 평가도 내놓는다. “쟁점이 안 만들어져요. 이쪽에서 생각하는 쟁점은 뒤로 밀리고, 정몽구 살리기 운동이 지역을 휩쓸고 있거든요. 정몽구 살리기에 13만 명이 서명했습니다. 다른 대안으로 현대자동차를 살리자는 서명운동을 기획하기는 했는데, 실천하지는 못했죠. 전국적인 한나라당 붐의 영향도 있는 것 같고요”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수성이 만만치 않은 이유는 또 무엇인가? 선거운동이 미숙해서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북구와 동구에서는 8년 동안 집권한 셈이죠. 민주노동당이 구정을 운영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못한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홍보를 잘못한 건지 어쩐 건지, 주민들의 평이 좋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한 상근 간부는 “이길 짓을 했어야지……”라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선거에 이기든 지든, 무얼 잘하고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따져 볼 시간을 가져야 앞으로 또 8년을 도모할 수 있겠다.

    노옥희는 ‘민주노동당 간부답지 않게’ 당 정책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당 공약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꼼꼼한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공공비정규직을 당장 공무원으로 만들기는 어려워요. 법률적 제한이 있거든요. 기간제 계약직인 공공비정규직을 우선 상용직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러면 예산이 문젠데, 어디에 돈을 쓸지 예산을 전면적으로 재편성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을 채택해야 합니다. 대기업에 고용돼 있는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을 없애는 것도 돈 문제가 걸리죠. 하지만 기업의 지불능력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불법자금 펑펑 써대는 것만 봐도 돈은 남아 도는 거 아니겠어요? 물론 회사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지자체․노조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산별화고요”
    노옥희의 공약은 이른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 불리는 조류와 비슷하다. 지역혁신협의체나 경제고용위원회 공약도 마찬가지. 기업임금투쟁 중심의 울산 노동운동이 그걸 받을까? 개량주의나 수정주의라는 욕을 먹지는 않을까? “노동자 시장이 하면 됩니다” 단호하고 확고했다.
    현대차그룹 본사를 울산에 수용한다든지, 차세대 자동차산업인 연료전지차 공장을 유치한다든지 등의 노옥희식 지역발전전략은 몇 만 명을 신규 고용하겠다는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공약보다 합리적이고, KTX 울산역 유치운동에 발벗고 나섰던 몇몇 민주노동당 간부들의 정책보다는 훨씬 민주노동당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지역 특성에 잘 맞아 들었다.
    2002년부터 시작한 5년의 교육위원 경험이 그를 단련시킨 것이리라. “교육위원으로 일하는 동안 교육비리를 척결하는 데 힘을 기울였어요. 교육에 관련한 행정정보를 공개하고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공약은 거의 지켰죠. 학부모․교사 등 교육 관련 주체들과의 소통 공약도 사안이 생길 때마다 간담회를 거치는 등을 통해 실현했습니다. 하지만 학생인권 문제나 학교운영위에 학생을 참여시키는 공약은 아직이죠.” 교육행정 개혁 공약은 다 지켰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교육문화 혁신 분야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 노옥희는 교육자다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가 모토 삼는 ‘돌봄, 나눔, 게으름’이 전투적인 울산 노동운동에서는 생소할 뿐더러, 이질적이지 않을까? 노 선생은, 비판적 언사를 기대한 인터뷰어에게 부응해주었다.
    “저는 남성들과 오래 노동운동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성이 약해졌다고 스스로 생각하죠. 그런 제가 보기에도 황당하거나 불편한 남성 중심성을 느끼게 되요. 울산 노동운동에는 ‘조폭 문화’랄까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남성 중심 문화가 남자들한테 좋은 거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거든요. 남자 활동가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스스로 뭔가를 해결하는 경우가 드문 걸 발견하게 되요. 집안에서도 어머니나 부인이 챙겨주는 버릇이 들다 보니 그렇겠죠. 가부장 문화는 남성을 정신적 미성숙 상태로 만들어요.”
    진보적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는데, 착해서 운동을 하는 사람이 하나고 어쩌다 운동을 하다 보니 운동을 하는 사람이 그 둘이다. 노옥희는 앞에 사람이다. 교사로서의 생활이 그의 심성을 깨우고 운동을 가르쳤다.

    “친하게 지낸 제자 가운데 한 학생이 금형을 하는 마찌꼬바에 실습을 나갔는데 사출기에 손이 들어가는 바람에 그만 손목이 잘리는 대형 산재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 학생은 고모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고아로 나를 믿고 따랐는데 그런 대형사고를 당하니 내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는 사람을 찾아 다녔고 산업재해에 대한 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책을 뒤져가며 이런 저런 노력을 했지만 워낙 열악한 회사인데다 사장도 재산을 빼돌리는 등 부도덕한 사람으로 보상 한 푼 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 제자를 보면서 교사가 자기가 맡은 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학생들을 안스럽게만 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무슨 힘이 되는지에 대한 갈등과 후회로 교사생활을 반성하게 되었다(노옥희, [한 평범한 교사가 눈을 뜨기까지], 2003).”
    노옥희는 천생의 선생이다. 그것도 좋은 선생이다. 그가 가르친 현대공고 학생들은 한국 노동조합운동을 이끄는 활동가들이 됐고, 오랜 해직 후에 복직한 명덕여중에서는 편안함을 느꼈다. 중도탈락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하고, 개근상을 없애자([게으름의 미덕을 가르치자], 2003)는 제안을 펴는 선생님이 계신 학교라면 거의 천국이리라. 그런 학교라면 나도 복학하고 싶다.
    다양한 직업 출신의 사람들이 공직으로 진출하는 게 요즈음 민주주의의 추세다. 어려운 말로는 시민 지배(Civil control)고, 직업정치인이나 관료에게만 살림을 맡길 수는 없다는 상식의 산물이다. 갑갑하지 않겠는가? 낚시를 하는 것보다 낚시 정책을 만드는 걸 더 즐기는 조금은 변태스런 사람끼리 세상사를 정하는 건. 그래서 의사도 변호사도 노동자도 선생님도 공직에 진출해야 한다. 하지만 되물어 보자. 훌륭한 사람들이 몽땅 공직으로만 가면 병원도 공장도 학교도 재미없어지지 않을까? 선출된 공직자로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 것처럼 아이들에게 따뜻한 보살핌의 손길을 주는 것이 더 제격인 사람도 있다. 해직 중에도, 정치를 해도 노옥희는 언제나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꿈꾼다. 다시 교단에 서는 날을.
    그래서 나는 희망한다. 아직은 어린아이인 민주노동당을 가르치기 위해 그의 꿈을 잠시 접어두자고 설득하되, 5년이나 10년 뒤에는 또는 더 빠르거나 더 늦은 어느 시점에 그를 놓아주자고. 학교를 떠나며 “그럼 이만 안~녕([명덕여중의 잊지 못할 제자들에게], 2002)”이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학교 아니고 다른 어딜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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