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자객에게 투영된 스필버그의 휴머니즘
        2006년 05월 24일 12:17 오후

    Print Friendly

       

    1972년 뮌헨 올림픽은 독일로서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그랬던 것처럼 뮌헨 올림픽도 독일이 전쟁의 폐허와 상처를 딛고 새롭게 부활했음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였다. 또 독일이 과거의 기억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평화국가’의 대열에 들어서는 상징적인 의식 같은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나치의 선전무대로 변질됐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반성하고 수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새 독일의 꿈’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했다. ‘검은 9월단’이라고 알려진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조직이 선수촌을 습격해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11명의 선수를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에 투옥된 팔레스타인 230여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테러리스트들과 협상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 대신 이스라엘의 특수부대를 보내주겠다고 독일정부에 제안했다. 당시 독일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요구조건을 들어줄리 만무한 상황에서 독일의 선택은 위험을 무릅쓴 인질구출 작전이었다. 이미 11명의 인질 중 2명이 납치범들에 의해 살해된 상태였다.

    독일경찰은 납치범들이 요구한 이집트 행 비행기를 인근 공군기지에 준비하고 이들이 이동하는 중간에 급습하기로 했다. 그리고 경찰은 인질들과 납치범이 타고 있는 헬기가 기지에 내렸을 때 공격했다. 그 결과 9명의 인질 전원이 사망하고 8명의 납치범 중 5명이, 그리고 독일경찰 1명이 사망했다. 평화를 꿈꿨던 올림픽은 장례식으로 돌변했다.

    자국민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도 불구하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 독일의 입지를 좁혀놓고 사태를 악화시켰던 이스라엘 정부는 ‘복수’를 계획했다. 납치범들은 대부분 죽거나 독일의 감옥에 갇혔지만 사건을 기획하고 준비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찾아내 모조리 암살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정보기관 모사드는 암살팀을 꾸려 사건에 관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을 제거하는 ‘총검작전’을 계획했다. 당연히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검은 9월단의 모체인 ‘파타’ 조직의 간부들을 겨냥했다. 파타는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해방운동조직이었다.

    후에 ‘신의 분노’라고 이름이 바뀐 이 작전은 72년부터 79년까지 진행됐다. 목표를 살해하기 위해 저격에서부터 자동차폭탄까지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중간에 모사드와 군정보국은 ‘청춘의 봄’이라는 별도의 작전을 꾸려 암살의 희생자수를 늘렸다. 작전의 자세한 내용과 결과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정부의 고위관계자들 몇 명이 직접 작전을 통제했기 때문에 모사드의 고위급 인사들도 작전의 실체를 알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정확히 몇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작전을 통해 암살됐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작전의 실체를 담고 있다는 책이 두권 발행됐다. 하나는 1984년 자신이 암살팀의 리더였다고 주장하는 전직 모사드 요원 유발 아비브의 증언을 토대로 조지 조나스가 쓴 <복수>라는 책과 미국의 보수적인 중동전문가 아론 클라인이 쓴 <뮌헨 1972>다. 후자의 책은 국내번역 됐다.

    * * *

       
    ▲ 1972년 9월 5일, 올림픽 선수촌 건물에서 포착된 ‘검은9월단’ 단원의 모습. 이후 사건을 상징하는 사진이 된 장면이다.

    조지 조나스의 <복수>를 읽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래동안 이 책을 영화로 옮길 것을 구상했다. 사실 <복수>는 출간당시부터 논란을 빚은 책이다. 증언자인 유발 아비브가 모사드 요원이 아니었다는 주장부터 책에 묘사된 내용이 대부분 허구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스필버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그가 원한 것은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실제 역사에 기반한 ‘픽션’이었다. 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사용했던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 후에 그는 이것을 ‘역사적 허구’라고 불렀다.

    스필버그가 뮌헨 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친이스라엘’ 영화를 떠올렸다. 9/11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고, 또 <쉰들러 리스트>와 같은 영화를 만든 유대인 감독이라는 점이 이런 유추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영화는 일방적으로 테러를 비난하거나, 노골적으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스필버그의 상징과도 같은 휴머니즘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정치적으로는 격론을 가져올만한 영화였다. 스필버그다우면서도 스필버그답지 않은 선택이었던 셈이다.

    우선 이스라엘은 격분했다. 테러리즘을 옹호하고 희생된 이들을 모욕하는 영화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뮌헨>이 친이스라엘영화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자유주의 평론가들은 영화를 극찬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방식과 피의 악순환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는 영화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부쉬 정권의 ‘테러와의 전쟁’에 넌덜머리가 난 미국의 리버럴 지식인들에게는 좋은 영화로 비춰졌다.

    반면 보수주의자들은 영화가 테러와의 ‘신성한’ 전쟁에 대해 회의주의를 몰고 온다며 비난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짐승 같은 테러리스트 놈들과 앞에서 인간적이 돼봐야 총에 맞을 뿐이라며 짐승을 잡기 위해서는 짐승이 돼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필버그의 전폭적인 지원자들이었던 미국의 유대인 사회도 영화를 비난했다.

    가족영화의 대명사였던 스필버그 감독이 모처럼 논쟁의 복판에 서있는 영화를 만든 것이다.

    * * *

    영화의 근간이 된 책 자체가 진위여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정말 이스라엘 암살팀이 5명으로 구성됐는지, 79년에 작전이 종결됐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생존한 3명의 납치범을 살해하기 위해 ‘신의 분노’작전은 중지되지 않고 계속됐다고도 한다.

    스필버그는 등장인물의 이름부터 해서 사건의 세부적인 묘사들은 영화를 위해 모두 수정했다. 다만 사실이라고 확인되거나 추정할 수 있는 것들은 있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예를 들어 당시 이스라엘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를 비롯해 법무장관과 모사드 국장 등 고위 관계자들은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다.

    심지어는 주인공인 아브너가 훈련을 받기 위해 이스라엘 특수부대에 갔을 때 에후드 바락이라는 장교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도 있다. 후에 노동당 소속으로 이스라엘 총리가 되는 그 에후드 바락이다. 감독이 그냥 재미삼아 집어넣었는지도 모르지만 이스라엘 권력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뿌리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암살팀의 리더인 아브너에게 ‘복수는 신의 뜻’이라고 강조하는 골다 메이어 총리도 바락과 마찬가지로 노동당 소속이다.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서 자랐으며 시온주의-사회주의자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총리는 아랍인에게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인간이었다. 골다 메이어의 협력 거부로 올림픽을 통해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고 다시 태어나는 독일의 모습을 연출하려다가 재앙을 만난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도 사민당 소속이다. 뮌헨 사건을 놓고 손발이 전혀 맞지 않은 이 둘은 사회민주주의정당의 연합체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이었다.

    영화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사실 감독은 이런 논쟁을 원한 것 같지 않다. 영화를 보면 ‘입장’이 요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비켜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그러면서 시종일관 카메라는 암살에 암살을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아브너의 인간적인 고뇌에 집중하고 있다.

    스필버그 감독 자신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에게 역사적 배경은 2차적인 문제였다. 그는 “눈 앞에서 한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극심한 고통이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앗아간 이는 아마도 영원토록 평온을 찾지 못할 거”라고 아브너의 고뇌를 설명했다. 사실 아브너는 스필버그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스필버그표 휴머니즘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사회적 맥락을 제거한 채 인간적인 고뇌만을 앞세워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는 것. 결국 이스라엘이 조직한 암살단의 리더인 아브너처럼 직접 뛰어들어서 체험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또 하나, 폭력의 악순환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또 때때로 폭력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 –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이런 노력에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은 문제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도 상관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물론 영화 한편에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그러나 <뮌헨>은 아브너의 그 길고 고통스러운 고뇌의 순간을 담아낸 노력에 비해 영화의 출발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렸다. 바로 ‘검은 9월단’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마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는 너무 어려우니까 제외하고 딱 이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듯한 태도로 말이다.

    그럼 도대체 할리우드는 그 얽히고설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언제쯤 영화로 만들까?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