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언론, 여성공약 보도 '기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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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4일 09: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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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전문 주간지라 할 수 있는 <여성신문>과 <우먼타임즈> 주요 지면은 이미 몇 달 전부터 5·31 지방선거 기사가 장식하고 있다. ‘5·31 지방선거, 한국정치 여성이 살립니다’, ‘5·31 지방선거 여성정치세력화 원년으로 간다’등의 기획특집을 통해 여성후보를 소개하거나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분석하는 다양한 기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들 언론의 지속적인 주목은 각 당이 여성후보 공천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크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 후보의 비율은 11.6%로 아직 낮다. 하지만 2002년에 비하면 3배 이상 확대됐는데 이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 중 하나는 여성언론의 비판적 기능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두 언론의 각 정당, 광역시장 후보 여성공약 비교 평가 기사를 보니, 그동안 이들 언론이 강조했던 ‘여성정치세력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여성유권자를 대신하여 각 당과 후보들을 검증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관계, 근거 없는 ‘현실성’ 잣대

    ‘예쁜 포장’, ‘공갈포’, ‘판박이’. 두 언론의 여성공약 총평이다. 다들 비슷비슷한 공약, 그것도 실현가능하지 않은 공약을 ‘있어 보이게’ 포장만 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의 1차적인 문제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관계 보도와 단편적인 공약 비교에 있다. 보육시설 확충 공약의 예를 들어 보자.

       
     
    ▲22일 오전 서울 중구 송현클럽에서 생활자치 맑은정치 여성행동. 여성신문사 주최로 열린 서울시장 후보초청 여성정책토론회 도중 ‘O,×’ 퀴즈에서 민주당 박주선 후보(왼쪽부터),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 민주노동당 김종철 후보가 각각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고 있다./진성철/정치/  (서울=연합뉴스)
     

    <여성신문>은 각 정당이 모두 ‘보육시설 확충’ 공약을 내거는 등 “정당 이름만 가리면 어느 당이 내놓은 공약인지 알기 힘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정책공약집에서 보육시설 확충 공약은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다.

    한나라당의 핵심 보육공약은 ‘보육바우처(보육이용권) 제도’ 도입이다. 말 그대로 부모가 자기 소득에 따라 보육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상품권’을 주겠다는 것으로 이는 공공보육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이다. 몇 가지 보육시설 확충 방안이 있지만, 공약집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보육아동의 70%가 이용하는 민간보육시설의 서비스 수준 개선 필요’라는 기조는 민간보육시설에 기본보조금을 지급해서 보육시장을 키우려는 정부 정책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

    반면 민주노동당의 공공보육 확충 주장은 ‘현실성’이라는 평가 잣대에 걸리고 말았다. <우먼타임즈>는 서울시장 김종철 후보의 공공보육 50% 확대 공약을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공립시설 확충만으로 보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민간 보육시설 개선 지원이 더 현실성 있는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는 단 한 줄의 평가로 일축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어진 민간보육시설에 돈을 쏟아 붓는 것이 훨씬 ‘현실성’있다는 것을 몰라서 이런 공약을 낸 것이 아니다. 우리 당이 공공보육 시설 등 지역복지 인프라 확충을 위해 연간 2조5천억의 지역복지 재정을 마련하는 법안을 제출한 것이 ‘현실성’을 뒷받침해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보육공약은 보육에 대대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이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육예산을 쓰고 어떻게 공공보육 체계를 바로잡을 것인가 하는 정책 지향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두 언론은 우리나라 보육정책을 둘러싼 주요 쟁점과 이런 각 당의 다른 입장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여성 공약’범주 불분명,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 못돼

    이번 공약 비교 기사에서 여성언론이 보여준 또 다른 문제점은 각 당의 공약을 극도로 단순화시켜 비교할 뿐, 중요한 정치적 쟁점을 사장시켜 유권자들의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권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는 각 정당과 후보의 여성공약의 범주를 정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먼타임즈>는 서울시장 후보들이 내놓은 여성공약 중 공통되는 부분이 크게 세 가지라며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방과 후 교육 서비스 △자립형 사립고를 예로 들었다.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방송토론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면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얼마나 ‘극렬히’ 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역시 사실관계 왜곡이라는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자립형 사립고 공약이 ‘여성공약’이라면 도대체 ‘여성공약’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공약인가?

       
     

    <여성신문>의 자의적인 ‘여성공약’ 범주화는 더 심각하다(위 그림). 먼저 민주노동당에 과감하게 ×표가 쳐진 ‘저출산 대책’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 정부가 마련 중인 저출산 대책처럼 출산, 보육, 육아지원, 일·가정 양립 정책이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이 분야에 우리 당 공약이 없다는 평가는 납득할 수 없다. 혹시 ‘저출산 대책’이 “조부모ㆍ친인척 등이 보육하는 영유아 가정에 대해 육아수당(한나라당)”이나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 아동의 가정에 양육지원수당 제공(열린우리당)” 같은 아동양육에 대한 현금 지원을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 당의 정책은 ‘반대’이지 ‘공약 없음’이 아니다.

    아동 1인당 수당을 얼마나 줄 것인지도 나와 있지 않지만 그리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양육비 지원으로 주로 아동양육을 책임지게 될 어머니나 할머니의 돌봄 노동을 보상하겠다는 것은 결코 찬성할 만한 공약이 못된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여성공약’은 ‘영어마을 등 영어교육 확대’이다. 게다가 전국의 민주노동당 후보가 영어마을 설립에 반대하는 이유는 민주노동당의 견지하는 교육 철학의 문제이다. 영어마을은 계층 간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을 늘리는, 공교육 강화와 배치되는 사업이라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다.

    그런데 <여성신문>은 영어마을이 이미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한 정책, 따라서 어떤 당의 정책에서도 ‘없으면 이상한’공약처럼 범주화했다. ‘반대’도 아니고 ‘공약 없음’이라니 기가 차다.

    생활정치 담지 못하는 ‘여성공약’ 해설

    민주노동당은 이제까지 지자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정책 수혜자도 되지 못했던 일하는 여성의 관점으로 지역사회를 체질개선하겠다는 여성공약의 취지를 밝혔다. 지자체 모든 분야 정책을 성 인지적 관점에서 기획·실행할 수 있는 체계와 그런 사업의 목록들을 갖추는 것을 여성공약 개발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여성공약에는 교통·도시환경 분야, 보건의료 분야, 노인 분야 공약들이 겹쳐져 있다. 가로등 설치 확대로 어두운 이면도로 밝히기,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거리 조성, 여성이 생애주기에 따라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 여성의 부양부담을 덜 수 있는 노인보호시설 확충은 각 분야의 공약이면서 동시에 여성공약이다. 하지만 이런 공약들은 두 여성언론의 ‘여성공약’에 포함조차 되지 못했다.

    풍부한 정보 제공으로 여성 유권자의 선택을 돕겠다는 취지라면, 여타 언론들이 단 한 줄로도 쓸까 말까한 ‘공약 요약’을 똑같은 방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당 여성공약이 지역 여성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이나 해설을 더 중요한 꼭지로 배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대 양당 후보들에게 더 많이 할애된 지면에 대하여는 여성언론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굳이 문제 삼지 않겠다.

    당신들이 말하는 여성정치 세력화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모두 한 정당의 여성공약을 주로 만들었던 당직자의 푸념으로 치부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여성언론의 보도태도가 낳은 가장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여성정치세력화는 여성후보가 ‘얼마나’ 많은가 보다 지역정치가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이다. 생활정치는 여성 지방의원 비율에 따라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라는 성별 뿐 아니라 그 여성이 놓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을 함께 볼 수 있어야 다양한 차이를 지닌 여성‘들’의 요구를 정치의 장으로 옮길 수 있다.

    한달에 1,500만원 버는 여성변호사와 1년에 1,500만원도 못 버는 여성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이여, 출산으로 애국하자’고 호소하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출신 한나라당 여성후보와 ‘발전주의에 기댄 출산통제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여성후보에게 똑같이 ‘여성’이라는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다. 또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정당과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언론이 각 당 지방선거 여성공약의 맥락과 방향, 그 쟁점을 드러내기보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평가로 일관할 때, 어떤 여성의 무엇을 바꾸려 하는가에 대한 각 정당과 정책의 차이는 부각되지 못한다.

    적어도 민주노동당은 보수정당처럼 ‘여성인력 활용’이라는, 자본의 언어를 빌어 여성 일자리 확대 공약을 내걸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계약준수제’ 시행을 아무 근거도 없이 “구체적이기는 하지만 실현가능성 면에서 떨어지는” 공약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이는 최저임금에 100원 더 얹어 받는 공공기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여성언론들이 ‘여성 후보면 모두 여성정치세력화에 기여한다’라는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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