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구 많이 당선되어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공약도 한순간에 내팽개쳐···이해찬 대표의 노골적인 정치공학 계산법
        2018년 11월 20일 04: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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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제도 개혁에 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던 민주당 지도부가 처음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의 뜻을 밝히면서 집권여당의 기득권 사수로 정치개혁 논의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이해찬 대표는 지난 16일 문희상 국회의장 공관에서 열린 ‘의장-여야 5당 대표 부부 동반 만찬’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재 지지율로 볼 때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을 다수 확보해 비례(대표)의석을 얻기 어렵다”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이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비례의석을 통해 직능대표나 전문가들을 영입할 기회를 민주당이 갖기 어려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연동형 비례제는 정당득표율만큼 각 정당에 의석을 배분하고 배분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모자라면 비례대표 의석을 보완해주는 방식이다. 대신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을 확보하면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받지 못한다. 이 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민주당이 확보할 수 있는 전체 의석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과 의석수의 불비례성이 큰 현행 선거제도의 대안으로 꼽혔다.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내에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19대 대선에서, 민주당은 20대 총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정치개혁 관련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개혁의 주요한 과제로 꼽은 바 있다.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당론으로도 채택하고 있다. 이 대표 역시 정개특위 출범 전까진 이 제도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도 있다. 지난달 1일 기자간담회에선 “저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하지 않는다.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고, 여야3당 대표들이 지난 9월 평양에 방문했을 당시 민주당이 손해 보더라도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정동영 민주평화당·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전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물론 문희상 의장까지도 반발했다고 한다.

    당시 문 의장은 “지금 지지율이 총선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전체적으로 제도를 좋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지 지금 유리한가 불리한가로 보면 안 된다”고 말했고, 정동영 대표도 “이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의석을 많이 손해 보는데 그럼에도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한 것과 다르지 않느냐”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사진=민주당)

    “국민의 눈에 뻔히 보이는 기회주의적 행태”

    이 대표의 이러한 입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당 총선 공약 모두를 파기하겠다는 뜻이라 정치권 안팎의 파장이 예상된다. 정의당, 민주평화당은 민주당이 다시 오지 않을 정치개혁의 기회에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말을 바꿨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원내외 정당과 함께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해왔던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정치개혁공동행동의 반발도 예상된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전날인 19일 국회 브리핑에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집권세력이 됐다고 정치적 대의 앞에서 유불리를 따지고 있다면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변인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왜곡된 선거제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다음에도 민주당이 똑같은 수혜자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며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라고 실어준 힘을 권력의 확대로 착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절호의 기회 앞에서 얄팍한 정치적 계산으로 뒷걸음질 친다면 여당은 민주주의 퇴행의 장본인이라는 낙인을 오래도록 안고 가게 될 것”이라며 “권력에만 몰두하는 한심한 집단의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그 나물에 그 밥 이라는 실망감을 안겨주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정치개혁의)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유불리를 따지며 말을 싹 바꾸고 있다. 이런 태도로는 결코 개혁을 추진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고 질타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어렵다고 항변해왔던 사실을 겨냥해 “자유한국당 핑계를 댈 것도 없다”면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에 뻔히 보이는 기회주의적 행태로는 결코 정치개혁과 경제개혁도 사회개혁도 불가능하다”며 “민주당은 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녹색당도 전날 발표한 논평에서 “자기 정당의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받았을 때 비례대표 당선이 어렵다면, 그건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며 “득표율만큼 의석을 배분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이 대표의 발언에 반박했다.

    녹색당은 “집권여당의 대표가 선거제도 개혁뿐만 아니라 정당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히 수준 낮은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매우 유감”이라며 “이런 식으로 이해찬 대표가 민심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걸림돌이 되겠다면 여당 대표는 물론 더 이상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직격했다.

    하승수 정치개혁공동행동 운영위원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 특히 이해찬 대표가 정치개혁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역사에 남지 않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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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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