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민들께 바치는
    한 농민의 삶과 백남기 투쟁 보고서
    [책소개]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정은정(지은이). 윤성희(사진)/ 따비)
        2018년 11월 17일 1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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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던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진 지 꼭 3년이 되었다. 그가 눈 한 번 뜨지 못한 투병 끝에 2016년 9월 25일 영면에 든 후 11월 5일 장례식을 치른 지도 2년이 지났다. 2015년 11월 14일부터 2016년 11월 5일까지, 수많은 사람이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며 다시는 국가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기 위한 싸움을 진행해왔다.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은 국가폭력에 희생되었으나 오로지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던 백남기 농민의 삶을 기리고, 그의 뜻을 잇기 위해 자신의 마음과 시간과 몸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치킨展》에서 한국인의 소울푸드 ‘후라이드 치킨’으로 축산업 및 프랜차이즈 외식산업, 그리고 한국 현대사를 엮어 보여준 사회학자 정은정이 글을 쓰고, 2015년 민중총궐기대회부터 백남기 농민 투쟁을 카메라에 담아온 윤성희 작가가 사진을 찍었다.

    시민들께 바치는 백남기 농민 투쟁 보고서

    저자들이 강조하듯이, 이 책은 ‘백남기 농민 평전’이 아니라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이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무자비한 물대포 직사 살수에 쓰러져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10개월여 병상에 누워 있다 끝내 숨졌다. ‘백남기 농민 투쟁’은 이 죽음의 책임자를 명확히 밝히고, 그 책임을 공식적으로 묻기 위한 모든 노력을 가리킨다. 물대포를 쏜 자도, 물대포를 쏘라고 명령한 자도, 그 집회 자체를 마치 폭동인 양 틀어막으려 했던 자도, 누구 하나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 책은 물대포 직사 살수를 비롯해,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이 누구인지, 왜 그토록 무자비한 폭력이 가능했는지를 밝히는 한편, 백남기 농민 투쟁을 이끌어온 사람들의 안간힘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물심양면 백남기 농민 투쟁에 참여해온 시민들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라 말한다.

    민중총궐기대회를 조직했던 노동·농민·빈민조직 등을 비롯해 인권·시민사회단체 등은 한편으로는 집회와 시위로, 한편으로는 민형사 소송으로 정부와 경찰에 책임을 물었다. 때로는 농성장에서 서명을 받으며, 때로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무릎을 꿇으며, 때로는 단식 투쟁으로 그 폭력의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촉구했다.

    그 싸움의 주체로 누구 한 사람이나 조직을 꼽을 수는 없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를 조직한 단체들은 바로 그 집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끼며 백남기 농민 투쟁에 헌신했다. 백남기 농민이 속한 가톨릭농민회(가농)와 전국 최대 농민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백남기 농민의 아내인 박경숙 농민 또한 지켜야 했던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은 조직의 수장부터 지역 회원들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백남기 농민 투쟁을 이끌었다. 전국의 농민들은 농사일도 잠시 손에서 놓고 틈만 나면 서울로 올라가 농성장을 지키고,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에 서서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빌었고, 그가 끝내 영면한 후에는 곳곳에 분향소를 차려 고인의 뜻을 기렸다.

    분노를 넘어 연대로,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

    이 책은 백남기 농민 투쟁의 일선에 선 활동가뿐 아니라 한 농민에게 가해진 무자비한 폭력과 사과조차 하지 않는 공권력에 분노하며 무엇이라도 거들고자 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엄마 아빠들이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강제 집행을 막아내기 위해 운구차 제일 앞에 서서 경찰에 맞섰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세월호 전용석’까지 만들어 백남기 농민을 지켜준 그들을 위해 백남기 농민 대책위 또한 민주당사에서 함께 단식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을 모았다.

    서울대병원 천막 농성장에 찾아와 쓸고 닦는 일이라도 하겠다던 한 수련 수녀는 백남기 농민을 통해 농민이 농사를 지은 것들을 모두가 빵으로 쪼개 먹고 살았다는 걸 배웠다. 방송노동의 현장책임자로서 불안정 노동을 부추기고 힘없는 노동자들의 등을 떠밀어야 했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식의 아버지는 백남기 농민이 농업생태계를 바꾸려 노력했던 것처럼 교육생태계를 바꾸기 위한 운동에 다시 나서려 한다. 민주노총의 성소수자 노동운동가는 서울대병원 농성장에서 만난 농민운동가들을 통해 지역과 부문을 넘어서는 연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저자는 백남기 농민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시민의 다양한 의사표현을 가로막는 물대포와 같은 폭력의 도구가 사용되지 않을 때, 농민들이 서울로 올라가 생존을 보장해달라고 울부짖지 않아도 될 때, 그때가 되어야 이 투쟁이 끝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끝을 향한 시작, 그저 분노와 슬픔을 넘어 연대와 희망의 씨앗을 품고 있다. 이는 우리밀 농사를 지으며 생명공동체운동에 헌신하며, 누구보다 비타협적이었으되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백남기 농민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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