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창당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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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0일 11: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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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에 저항하던 시기에는 자유주의자에서 혁명주의자, 심지어 지배 분파 일부까지 진보 세력이라 칭하였지만, 제도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이후 변혁 세력이 분화되어 온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자주파와의 단절이나 신당 창당 움직임 등 현재의 민주노동당을 둘러 싼 갈등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신당 창당 움직임은 자연스런 일

모든 것이 선거 직후 그 결과를 중심으로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이루어졌다는 점만 다를 뿐, 여느 국가의 운동 역사처럼 자유주의 분파에 이어 민족주의적 지향을 가진 분파와 좌파가 분리 정립되어야 할 시기가 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 분화가 과거에 확고하게 믿었던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교과서적인 단계론적 분화가 아니라는 것이 일부에게는 불행이자, 다른 일부에게는 다행이지만 말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건, 지금의 분화가 지난 세기 초 사민주의, 혁명적 사회주의, 그리고 아나키즘 운동 등 광의의 좌파적 운동이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시기의 분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 즉 다수 노동 대중의 보수화 속에서 매우 낮은 대중 지지율과 극소수의 관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워크숍. 신당파들은 비대위 활동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다할지라도, 자주파가 구조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미래에 지극히 회의적이다.(사진=뉴시스)
 

종종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은, 동원되는 언어들로만 보면 20세기 초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대중의 압도적 지지 속에서 진행된 논쟁으로 착각하게 합니다.현재의 당 건설과 개혁 논의가 극소수의 논객들에 의해 주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어 봅니다.

먼저, 자주파가 주도하는 당과의 분리해야 된다는 입장의 근거이자 좌파들에 의해 이미 그 역할을 다 했다는 선고를 받은 자주파들의 퇴행적 사상은 실제로는 단순히 ‘유럽에서는 우익으로 취급 받는 민족주의’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한 ‘민족주의=파시즘’과 같은 교조적 좌파 원리주의의 수사가 난무하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물론, 자주파(더 정확히는 그 중 주사파)가 근거로 삼고 있는 사상은 스탈린 일국사회주의 이후 정형화된 전형적인 주변부 제3세계형 저항적 좌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지만, 그 근본적 본질은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스탈린주의적 국가 사회주의 북한 관료 집단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의 준제국주의적 모습과 정치, 경제, 문화적 종속의 모습, 여기에 더해 세계 최대 규모의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분단이라는 독특한 상황이 혼재되어 있는 남한에서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한 민족주의적 경향의 운동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지배 계급에 의해 이루어진 집요한 반공 교육, 징병제 등과 결합된 우익 민족주의적/애국주의적 교육이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강대국 사이에서 고통 받아왔으며, 다민족 국가의 경험이 없이 타의에 의한 분단된 국가인 남한 노동 대중의 의식 속에는 민족주의적/국가주의적 의식은 분명 광범위하게 존재했을 것입니다.

자주파 사상의 양면성

하기에, 자주파적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심리는 매우 중요하며, 민족적 과제라고 생각되는 자주적 통일이 운동의 중심이 되고, 그리고 통일과 민족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되는 외세,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로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생성된 우리 운동의 비극은 첫째로는 이러한 대중 심리를 이용한 소수의 종북 주사파들이 자주파적 운동의 내용을 장악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둘째로는 주사파의 대척점에 있는 교조적 원리주의 좌파들은 이러한 운동을 분리시켜 대응하기 보다, 주체 사상의 ‘주’자도 모르는 다수의 좌파 민족주의적 저항 분파들을 북한 지배 집단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거한 운동으로 싸잡아 몰아 넣어 비판하거나, 아예 우익 민족주의자로 몰아 버리는 우를 범한다는 점입니다.

이 둘은 서로 양극단에 서 있지만, 양쪽 모두 ‘모 아니면 도’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거나, 자신이 삼고 있는 이론에 대한 비판 의식이 없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좌파라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언저리에 있는 진보적 대중을 소수의 종북주의적 운동 질서로부터 분리하여 획득하는 작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몰역사적이고 무조건적인 대(對) 민족주의 적대 의식이나 교조적 탈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노동대중 조직 기반없는 좌파 정당은 없다

민주노총에 대한 관계 설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현재의 민주노총이 광의의 주사파-민족주의 진영의 영향 하에 있으며, 당과의 관계 설정이 과도하게 기계적인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타당합니다.

또 비정규직은 물론 정규직 노동자 조직률도 크게 떨어져 민주노총이 조직화하지 못 하고 있는 다양한 노동 계급을 대표할 수 있기 위해서도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다시 설정한다는 문제 의식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민주노총을 과도하게 비판하거나 마치 관계나 영향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분위기는 반드시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좌파 대중정당 중 노동 대중 조직을 기반으로 하지 않거나 이와 연결 없이 살아남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름만 당이지 극소수의 지지만을 받는 정당은 물론 수두룩합니다. 이들 정당의 특징은 좌파 논객들의 모임일 뿐, 대중 조직과의 연결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성공적인 관계 설정의 전제 조건은 산별노조와 높은 조직률이지만, 국가에 따라서는 조직률이 상당히 낮은 경우도 적지 않으며, 복수 이상의 중앙 노조가 있어서 각각의 좌파 정당이 기반으로 하는 노조는 소수 직업집단이나 노동자만들 대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조직 자체에 대한 것을 상기하지 말고,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대표적 노동조합 중앙 조직, 노동대중 조직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궁극적으로는 한국 노총(정확하게는 조합원들)과의 관계 없이는 모든 좌파 정당 실험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자영업 인구가 노동 인구 서구 평균 10%의 3배를 훨씬 넘는 36%에 이르는 한국의 현실, 비정규직과 더불어 자영업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토대인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전 노동자의 90%를 차지하며, 비정규직이 전 노동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적 현실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현재 전체 노동자의 일부만 대변하는 조직이라 할지라도, 어느 국가든 노동조합의 전국적 조직의 역할과 국가/자본과의 관계 설정이 전 노동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 것이며, 좌파 정당에 있어 이들과의 밀접한 관계는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데모정당 비판의 문제점

데모정당 이미지에 대한 비판 역시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 터지고 난 후 데모하는 것에 대한 노동대중의 염증이 있을 뿐, 즉 단순히 과격해서가 아니라 대안과 정책 부재 속에서 데모만 하는 것처럼 비추어져 노동대중이 외면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따라서 의회 질서 틀에서만 투쟁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과도한 비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종북주의자들의 정책과 대안 부재,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당내의 평등파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각종 복지 정책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을 향한 정책이 추구될 때, ‘자본주의 체제 온존 정책’, ‘비노동 계급적 정책’으로 폄하한 것은 정책이 민중들에게 선전되는 것을 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데모정당이라는 비판은 정책 없는 반대 운동 집단으로 비쳐졌기 때문인데, 이를 두고 데모 정당이라 비판하는 논리가 민중과의 직접 정치를 거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늘 타협만 한다는 얼토당토 않는 욕을 먹는 서구 사민주의 정당들도 파업 때나 반전 운동, 반파시즘 운동 시에는 우리보다 훨씬 대규모의 인원이 ‘데모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온다는 것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혹자는 의회주의와 결별하고 민중 속으로 들어 가자고 이야기하는데, 민중 속으로 다시 들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참으로 추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의회주의의 죄를 씌우는 일부 좌파의 모습도 부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의회 만능주의는 거부해야 하지만, 만일 소수의 지지율이든 뭐든 상관없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노동자계급 독자정당 혹은 사회주의 혁명정당을 건설하려는 이들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실패의 원인과 분당의 정당성의 근거를 ‘3% 지지율’에다가도 두는 이들이라면 그 자체로 현재의 정당 정치 질서와 의회 질서 속 사회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모순을 보여 주는 의회주의에 대한 과도한 비판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주아들과 신자유주의자들과 우익과 협력하거나 타협하는 모습이 보기 역겹고, 투쟁의 현장에 늘 있지 못 하는 진보정당 의원들의 모습을 욕하면서 이를 두고 의회주의라고 비판하려거든 아예 부르주아 국가의 일체의 선거 일정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야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당이 대다수 동지들이 지향하는 당의 목표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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