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렉시트 협상안 나와
    임박한 파국? 합의 통과?
    [세계는 지금] 영국과 유럽의 길은?
        2018년 11월 16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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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렉시트 합의안이 알려지면서 영국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내민 브렉시트 합의안이 14일(현지 시간) 열린 보수당 내각 특별회의에서 통과됐다. 눈여겨볼 대목은 기자회견에서 메이 총리가 내각의 결정이 ‘공동 결정(collective decision)’이라고 한 것이다. 내각에서조차 만장일치가 아닌 반대의견이 있었다는 뜻다.

    일각에서는 반대를 표명한 강경파 장관들이 줄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도미니크 랍 영국 브렉시트 장관이 합의안에 반대하며 사퇴를 표명했다. 랍 장관은 합의안이 “국민(국민투표)에 대한 배신‘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담당장관의 전격적인 사퇴로 브렉시트는 논의를 하기도 전에 좌초하기 직전이다. 첫발을 뗐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인데다 메이 총리의 정치생명까지 불투명해지고 있다.

    뉴스 한 줄에 다른 나라 환율이 출렁이는 브렉시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요점을 정리해보자.

    메이 총리와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

    체커스 프로젝트

    유럽연합과 영국의 협상이 길어진 것은 협상할 내용이 많은 탓도 있지만 북아일랜드와 지브롤터가 발목을 잡았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독립국인 아일랜드가 하나의 나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고 동일한 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유럽연합에 가입해 있다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는 국경이 생기게 된다. 북아일랜드가 하루아침에 섬이 되는 셈이다. 스페인 최남단에 위치한 영국령 지브롤터 역시 마찬가지다. 지브롤터는 이 기회에 영국에서 독립해 유럽연합에 가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코틀랜드도 들썩이고 있다.

    고립무원의 섬으로 전락하게 되는 두 개의 영국령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메이 총리는 측근들과 논의를 거쳐 체커스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 첫 번째 실책이었다. 북아일랜드와 지브롤터만 예외로 기간 설정 없이 유럽연합에 놔둔다는 계획은 당내에서 십자포화를 맞았다.

    강경파들은 체커스 프로젝트는 하드 브렉시트(완전한 유럽연합 탈퇴)가 아니라고 강력히 반발했고, 소프트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의원들도 거세게 반대했다. 브렉시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당내 논의를 거치지도 않고 측근들과 논의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도 문고리들과 논의해 당에 내놓은 것은 누구나 반발하기 마련이었다.

    언론에서는 체커스 프로젝트가 협상테이블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메이 총리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두 번째 실책이었다. 보수당 의원들은 메이 총리가 자신들을 기만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보수당 의원들은 브렉시트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총리 자리에만 연연한다는 의구심을 가지기 충분했다. 체커스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에 의해 단번에 거부됐다. 예외도 문제지만 페이퍼컴퍼니가 난무하는 지브롤터가 더 문제였다. 조세 도피의 주범들이 그대로 활개를 치는 것은 유럽연합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하원

    체커스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가자 메이 총리는 마지막 카드로 유럽연합을 탈퇴하지만 관세동맹에는 잔류하는 안을 제시했다. 유럽연합이 애초의 취지와 다른 이 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였다. 내년 3월까지 협상이 완료되지 않는 이른바 노딜(No Deal)이 일어나면 그야말로 파국이기 때문이었다. 일정기간 여유를 두고 관세동맹을 처리하는 방안이 차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관세동맹 추후 논의는 2020년에,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배상금은 57조원으로 정해졌다.

    내각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불러 온 합의안을 보수당 의원들이 찬성할리 없었다.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합의안이 하드 브렉시트를 의미하는 국민투표의 결정에 위배된다면서 즉각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57조원의 배상금도 재협상하라며 의회에서 반대투표를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650석 중에 보수당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은 315석으로 과반에 미달한다. 메이 총리가 한창 인기가 오르자 의석수를 늘리자는 욕심으로 조기선거를 치렀지만 결과는 노동당의 약진으로 나타났다. 총리 자리가 위태로운 메이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당과 연정을 구성하면서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민주연합당이 협상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내각에 파견된 의원들에게 사퇴하고 복귀하라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보수당 내의 강경파와 민주연합당이 반대한다면 하원에서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노동당 내에 메이 총리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공공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제러미 코빈을 노동당 당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보수당 내에서 반대표가 얼마일지 노동당내의 반란표가 얼마일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922위원회

    보수당의 독특한 기구 중 하나가 1922위원회이다. 1922년에 설치된 이 위원회는 일종의 중앙선거관리기구에 해당한다. 독특한 점은 보수당 하원의원 15%가 위원회에 문서를 보내면 자동으로 당내 경선이 실시된다는 것이다. 현재 필요한 숫자는 48명이다. 강경파들은 벌써 1922위원회 가동을 위한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당내 강경파들의 모임인 ‘유럽연구단체(ERG)’는 합의안이 하원에서 통과되거나 부결되거나 상관없이 메이 총리를 끌어내리고 하드 브렉시트를 결정하면 간단한 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난민 문제가 영국을 휩쓸자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승부를 띄웠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로 결정되면서 캐머런 총리가 실각했다. 총리 자리를 둘러싼 경선이 실시되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그런데 브렉시트를 강경하게 주장하던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총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내에서는 경선보다는 협상을 원만하게 진행할 인물을 합의 추대하자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메이 총리는 대주주는커녕 바지사장에 불과해 경선은 곧 정치생명의 마감을 의미한다. 메이 총리는 합의안을 하원으로 가져가기 전에 1922위원회가 가동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위치에 빠졌다.

    극우정당의 반격(?)

    형식적으로는 미셸 바르니에 유럽연합 브렉시트 협상 수석대표가 영국 브렉시트장관과 협상을 진행해 합의안을 도출한다. 이 합의안이 영국 하원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 브렉시트가 1차적으로 완료된다. 1차적이라는 의미는 이후 관세동맹을 둘러싸고 또다시 파국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르니에 수석대표는 유럽연합 가입국에게 협상을 위임받은 것이지 최종결정할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27개국(영국 제외) 모두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우정당들이 집권한 나라들이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폴란드의 집권 법과정의당(PiS)이 대표적이다. 법과정의당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대표는 그동안 유럽연합을 탈퇴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다. 헝가리의 집권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역시 폴란드와 마찬가지 입장이다. 2/3가 넘는 의석을 차지한 청년민주동맹은 발칸에서 넘어오는 국경을 인위적으로 차단해 유럽연합의 자격정지 경고를 받을 정도였다. 이들은 편법적인 탈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유럽연합 정상회의 27개국 대표들의 협상이 고비다. 단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협상안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우정당의 반대로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 유럽연합은 이를 설득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그사이 1922위원회가 가동되면 협상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리고 만다.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오르반 총리는 판사의 임명권을 의회에 두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들은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기 때문에 사법부가 오르반 총리의 손가락 하나에 달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법부를 장악한 오르반 총리는 언론마저 무력화시켰다. 페미니즘이 학문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며 대학에서 과목을 없애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이런 오르반 총리의 결정이 유럽연합 가입조건을 위배하고 있다고 경고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합법적으로 헝가리에서 히틀러 정치를 자행하고 있는 오르반 총리는 반쯤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해 있는 셈이다. 그런 오르반 총리가 편법을 이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극우정당의 집권이 유럽 전역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시나리오

    조기총선의 실패에도 살아남았고 체커스 프로젝트가 등장했을 때는 1922위원회가 가동되는 것을 막았던 메이 총리의 행운의 시나리오는 뭘까. 이달 말에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 27개국 대표들의 협상에 앞서 1922위원회가 가동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연판장 48개 돌고나면 모든 것이 만사휴의이기 때문이다. 연판장을 막고 나면 하원에서 과반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당의 강경파들이 반대하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메이 총리가 기댈 언덕은 노동당 내의 반란표라는 사실이다. 노동당 내의 대주주인 우파들은 좌파인 코빈 당수를 실각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한줌도 안 되는 좌파의원들을 놔두고 집단 탈당해 제3지대에서 새롭게 당을 건설하자는 주장을 하는 의원들이 있을 정도다.

    1922위원회가 가동되고 메이 총리가 실각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드 브렉시트 협상으로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북아일랜드가 하나의 섬으로 고립되는 것은 차치하고 지브롤터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지브롤터 주민들은 하드 브렉시트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 난제다. 스페인 남단의 작은 땅덩어리로 고립된 지브롤터는 자신의 국가인 영국을 가더라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브롤터 주민들이 영국령에서 탈퇴를 주장하는 이유다.

    스코틀랜드도 남아있다. 그동안 스코틀랜드의 영국 탈퇴 주민투표가 가까스로 무산된 것은 유럽연합이라는 큰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간단히 북유럽이나 서유럽을 자기나라처럼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비자를 신청해야 하고 방문 목적을 설명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부족한 의약품 등은 잉글랜드를 통해 전달받아야 한다. 스코틀랜드가 하루아침에 배급을 받는 땅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영국 탈퇴를 배수진으로 강력한 자치권(자치내각)을 얻었던 스코틀랜드가 과거의 시절로 돌아갈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파국은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파국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국민투표를 다시 실시하는 것이다. 2년 전,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의 많은 지방에서 찬성하는 일이 벌어졌다. 러스트벨트(쇠락한 산업지구)의 노동자들이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실업률이 내리지 않는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브렉시트의 정체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시나리오인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메이 총리가 보수당과 노동당의 협조를 얻어서 과반 찬성으로 다시 실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에 잔류하는 안이 통과된다면 그것은 메이 총리의 정치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는 말에 올라탄 메이 총리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처럼 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현실은 낙마를 가리키고 있다. 보수당의 정치도박 하나로 유럽 전역이 2년 동안 몸살을 앓고 있다. 메이 총리는 세 번째 위기도 탈출할 수가 있을까.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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