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도무지 '박근혜'를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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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3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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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데카르트의 정신을 체득하고, 30년 넘는 세월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적해온 내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 중에는 ‘박근혜’가 있었다. 온갖 가설과 이론과 관점을 뒤집고 다시 뒤집어 생각해도 나는 아직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먼저 나는 그 사람의 진정한 무게, 몸무게가 아닌 사색과 고뇌의 무게를 모르고 잘못 측량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굳이 그녀가 한국의 제1 야당의 대표가 되어야 할 만큼의 무게를 스스로 지닌 것 같지는 않다.

    왜 그가 오늘 이 시점에 거대 야당의 당수이어야 하는가? 삼촌뻘 되는 영남 꼴통 보수 정치인들이 여성에 결혼도 하지 아니한, 물론 아이도 하나 낳아 보지 못한 ‘대표님’을 깍듯이 모시는 그 진풍경이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처자에게 할 행동을 비교, 상상할 때마다 웃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 어색하지 않을까? 결국 그들의 지지 기반이 되는 대중의 박정희 향수에 의지하여 기득권을 유지코자 하는 불쌍한 모습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느끼리라. 민주주의의 모순을, 우중(愚衆)을 왕으로 모시는데 따르는 이 모순을 그들은 뼈저리게 느끼리라. ‘위대한 영도자’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공주님을 내세워야 만이 우중이 따르게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있나, 다소의 불편은 참아야지.

    그러나 그들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또 열린우리당의 철없는 자유주의자들이 ‘독재자의 딸’이라고 소리치면 칠수록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은 박근혜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이 백성들을 가난에서 구해달라는 순수한 염원을 그녀에게 보내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대에 걸친 자유주의자들의 무능은, 흔들림은, 좌충우돌은, 아니 그들의 무지와 만용은 이 땅의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성급하게 OECD에 가입하여 외환위기를 불러오고, 김대중 전대통령은 IMF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한미FTA를 대책없이 체결하고자 한다.

    그 결과 중산층은 붕괴되고 빈부의 격차는 벌어져서 격렬하게 양극화가 진행되고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하위 10퍼센트의 소득의 44배에 이르렀다. 한국은 제2의 멕시코가 되어가고 있다.

    바로 이런 현실이 ‘박근혜’를, 아니 ‘박정희 향수’를 백성의 마음에 되살아나게 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자유주의자의 서투른 개혁 춤 15년을 이제 끝장내자”는 우리 민주노동당의 주장이 백성의 마음에 다가가고자 할 때도 바로 ‘박근혜’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근혜’를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자연인 ‘박근혜’가 아니라 정치적 상징으로서 박근혜 대표에 대해서 더욱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아닌 최순영이, 민주노동당이, 아니 바로 내가 백성들에게 더 믿을만한 친구임을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방 선거 유세장에서 어느 반사회적 심성을 가진 미친 백성 하나가 박근혜의 얼굴에 칼을 휘둘렀다고 한다. 아마 틀림없이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얼굴에만 가해진 테러가 아니고, 정치인 모두에게 가해진 테러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던 야만적 정치 테러 사건이 혹시라도 앞으로 예사로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모두가 도덕적 비난을 가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 기회에 이 땅 가난한 백성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박근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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