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시민사회·법조계 등으로 반발 확산
    과로사 OUT 공대위, 노동법률가 단체들도 규탄 회견
        2018년 11월 14일 0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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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와 정부가 ‘장시간 노동 합법화’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노동계는 물론 법조계와 시민사회계까지 반발하고 있다. 고용 없이 장시간 노동으로만 생산성을 유지하려는 재벌 대기업의 ‘살인 행위’를 문재인 정부가 용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안이 유예된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주 64시간에 주말 근무 16시간을 포함해 최대 주당 80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단위기간이 6개월로 늘어날 경우 6개월(26주) 동안에는 최대 13주까지 주당 64시간, 13주는 주 40시간씩 일하게 된다. 정부는 과로사 판단 기준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주당 평균 60시간을 초과했을 경우’로 보고 있다.

    노동자들의 일터를 장시간 저임금 노동지옥의 나락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기업의 ‘살인 행위’라고 규정하는 데는 그간의 통계나 여러 기관의 조사결과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13일 발표한 이슈페이퍼를 보면, 하루 10시간 이상 월 9일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 우울, 불안장애 등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이슈페이퍼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간에서 발행하는 제4차 근로환경조사를 토대로 조사한 것으로 대상 50,007명 중 임금노동자(30,751명) 가운데 현재 노동시간 만족도, 주관적 건강상태, 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지난 1년간 손상·우울·피로·불면증 항목에 응답한 29,113명을 뽑아 분석한 자료다.

    이에 따르면 ‘근무시간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질문에 월 9일(주2회) 초과자는 2.449배, ‘내가 하는 일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1.516배, ‘지난 12개월 동안 우울 또는 불안장애’를 겪은 비율은 2.427배, ‘지난 12개월 동안 전신피로 건강상의 문제’를 겪은 비율은 1.292배, ‘지난 12개월 동안 불명증 또는 수면장애’를 겪은 비율은 2.065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1년간 산업재해보상 통계만 봐도 매년 370명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로 사망했다. 산재보상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과로자살 등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은 “과로사가 높은 직군인 공무원, 병원 의료인, 교사 등이 사학연금, 공무원 연금 보상으로 산재보상 통계에서 제외되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 과로사 발생은 현저히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로자살의 경우 산재신청 자체가 미미해 그 규모 파악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보건복지부 발간 자살백서에 따르면 업무상 이유로 자살하는 노동자는 매년 600명 내외”라고 짚었다.

    산업안전공단이 2011년에 발표한 ‘근로시간이 근로자의 건강 및 사고에 미치는 영향 연구’자료를 봐도 하루 8시간 일할 때보다 12시간 일할 때 산재 사고의 발생 비율이 2배 더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루 11시간 이상 일할 경우엔 8시간 일할 때보다 심근경색이 3배 이상, 당뇨병은 4배 이상 증가했다.

    공단의 3차 근로환경실태 조사를 봐도 40시간 이하 노동자 대비 52시간 초과 노동자가 우울 등을 겪는 경우가 2.13배 높고, 불면증과 수면장애는 1.86배 높았다. 결근도 40시간 이하 노동자 보다 52시간 초과 노동자가 2.24배 높았다.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4일 오전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근로환경실태조사를 이용한 장시간 노동에 의한 건강영향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청와대 앞에서 개최했다.

    과로사 OUT 공대위엔 민주노총, 참여연대, 과로사예방센터,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변, 반올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 23개 종교·노동·법조·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공대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대해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현실에서 법전 상에만 존재하는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로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의 일터를 장시간 저임금의 노동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인력 충원 없이 오로지 장시간 노동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재벌 대기업의 살인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며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탄력근로시간제 확대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의 확대는 과로사회를 되레 부추기는 행태

    노동법률가 단체들도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합법적으로 노동자에게 과로를 강제하면서도, 과로노동에 대한 대가인 초과근로수당은 지급을 면할 수 있는 제도”라고 규정했다.

    민변 노동위원회,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률원(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서비스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는 이날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시간 단축 역행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시도 즉각 중단하라”고 이같이 요구했다.

    법률가 단체들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제는 예측가능하고 정기적인 노동을 통해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라며 “이제 막 과로사회를 벗어나려고 하는 현 상태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의 확대는 과로사회를 되레 부추기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동조합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한다는 것은 사용자 마음대로 제도를 악용해 수당지급 없이 대기시간, 휴게시간, 출퇴근시간 등을 변동해 사용할 여지가 높다”며 “이미 파견노동,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제조업 현장에서는 호출노동과 진배없이 악용될 것이 자명하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낮아지는 지지율에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지율이 낮아지고 있는 이유는 지나치게 진보적이어서가 아니라 노동존중이라는 초심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률가 단체들은 “일자리 확대를 시간제나 비정규직으로 메꾸려는 지난 정부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며 “실질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함으로써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동시에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하루 8시간, 한주 40시간 노동제와 한 주 1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하며, 무분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논의는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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