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돈 ·보수정치에 묶여있는 한국노총 정치방침
    By tathata
        2006년 05월 22일 07: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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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본부 김문수 한나라당 후보, 광주본부 박광태 민주당 후보, 울산본부 박맹우 한나라당 후보, 부산본부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 택시노련 열린우리당, 금속노련 민주노동당.

    한국노총 각급 조직이 5.31지방선거에서 밝힌 지지 후보와 지지 정당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정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산하 연맹과 지역 본부의 자율적 결정에 맡기기로 한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에 따른 결과다. 

    소속 연맹은 열린당, 지역본부는 한나라당이라면?

    광주에 살고 있는 택시노련 소속 조합원은 어떤 표를 선택해야 할까. 택시노련은 열린우리당을, 광주본부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조직의 지침을 따르고자 한다면 이 조합원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콩가루 집안’ 아니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0일 열린 ‘한국노총 창립 60주년’ 행사에서 새롭게 바뀐 한국노총의 상징마크를 선포하고 깃발을 흔들고 있다.ⓒ한국노총
     

    한국노총은 지난 2002년 총선에서 녹색사민당을 창당하고 28명의 후보를 배출시켰으나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하고, 정당득표율은 0.5%에 그쳐 당이 해산되고 말았다.

    녹색사민당의 실패 이후 조직의 통일된 정치방침을 갖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통감한 한국노총은 이번 선거에서 사실상 ‘방임 정책’을 결정한 것인데, 조직 내 정치적 이견만이 더욱 표면화되는 계기가 됐다.

    통제력을 상실한 한국노총 ‘정치방침’

    그렇다면 한국노총은 왜 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을 두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향해 ‘구애’를 하는 것일까. 한국노총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한국노총의 정치활동 전략은 ‘승자편승 전략’이었다.

    박인상 전 위원장인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를 ‘개인적으로’ 지지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노총은 최초로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당시 대의원대회에서 DJ에 대한 공식지지를 결정하기로 하였으나, 영남권의 지역본부 대표자들이 마이크를 뺏고 물리력을 가하려고 해 박 위원장이 회의장에서 도망치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노총 위원장 ‘개인의 자격’으로 DJ 지지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02년 11월 민주사회당을 창당하고 독자정당 노선을 천명하였으나,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고 ‘대선불참’을 결정했다. 하지만 한국노총 소속 자동차노련, 택시노련, 항운노련 등 16개 산별연맹이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해, 조직 내 반발을 샀다. 녹색사민당의 정치실험은 한국노총이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한국노총이 단일한 정치노선을 걷기 힘든 데에는 조직의 이념과 지향에 대한 통일적 입장, 즉 운동 노선의 통일성이 결여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 현장과 각급 조직에 대한 지도, 장악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도 그 이유로 지적될 수 있다.

    중앙조직이 일괄적으로 맹비를 수렴해 지역본부에 배분하는 민주노총과 달리 한국노총은 지역본부가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한국노총 중앙은 지역본부에 통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단을 갖지 못한 것이다. 물론 정치방침의 결정이 재정이라는 무기를 통해서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현실 속에서는 이런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한다.   

    지역본부 기댈 곳은 노총 중앙보다 지역을 장악한 정치세력

    재정이 취약한 한국노총 지역본부가 기댈 수밖에 없는 곳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지역본부와 (지역감정에 기반한) 지역당은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 놓여있다”며 “지역본부는 지자체의 예산지원을 벗어날 수 없고, 단체장과 의원들은 해외투자유치 활동 등 대외활동에서 한국노총이라는 노동계의 지원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노총 지역본부장 회의에 기초단체장이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지역특산물을 판매하거나, 해외순방 행사에 함께 동행하는 일은 흔한 사례에 속한다.

    이 관계자는 “이용득 위원장이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를 찾아가 지지를 약속했을 때 지역본부들의 반발이 거셌다”고 전했다. 이들이 반발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기초의원이 지자체가 한국노총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노총의 한 연맹위원장도 민주노동당 인사에게 “군산에서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자체가 한국노총 지역본부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을 자주 반대해 곤혹스럽다”며 협조를 요청한 일도 있었다. 경기도가 최근 한국노총 경기도본부가 운영하는 1백억원 규모의 ‘경기종합노동복지관’을 건립공사에 들어간 것이나, 울산시가 근로자복지센터를 건립한 것 등도 모두 지자체의 한국노총 지역본부 지원사업에 속한다.

    한국노총 울산본부 소속 사업장 민주노동당 지지 예정

    이처럼 지방권력과 밀착된 한국노총으로서는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입장발표를 ‘강요’받게 되고, 한국노총 또한 지속적인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될 만한 곳에 줄을 서야 한다”는 게 한국노총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노총의 이같은 방침에 민주노동당은 ‘대략 난감’이긴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실제 선거에서 받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김성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한국노총 경기도본부가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김 후보가 갑자기 노동자후보가 되는 것은 아니”라며 “조직력과 현장력이 취약한 한국노총의 지역 지도부의 정략적 판단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응순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정책실장도 한국노총 울산본부가 박맹우 한나라당 울산시장 후보를 지지선언한 것에 대해 “선거운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24일 울산본부의 일방적인 지지결정에 반발해 한국노총 울산본부 소속 10개 사업장의 위원장이 민주노동당 지지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로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한편, 신진규 한국노총 울산본부장은 지난 2002년 총선 당시 녹색사민당 후보 출마를 앞두고 소속 사업장의 노조위원장 다수로부터 선거자금 명목으로 8,500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협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실장은 “불법정치자금으로 돈정치를 한 한국노총 지역본부장이 한나라당 지지선언을 했다”고 말했다.

    5.31 지방선거 한국노총 출신 출마자 현황 (총 56명)

    ▲지역별
    강원 4, 경기 20, 경남 3, 경북 4, 광주 4, 대구 1, 대전 2, 부산 2, 서울 6, 전북 4, 제주 3, 충남 3, 충북 2

    ▲정당별
    열린우리당 17, 한나라 20, 민주당 7, 민주노동당 2, 국민중심당 2, 무소속 8
    [민주노동당 -박창완 서울 성북구청장 후보(금융노조), 이용신 서울 종로구 기초의원(금융노조) ]

    ▲출마내용별
    기초단체장 4, 광역비례대표 4, 광역의원 19, 기초비례대표 2, 기초의원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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