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독도 문제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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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3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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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호 편집장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요즈음 동경에 비 오는 날이 많아, 축축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오늘은 5월의 상쾌한 날씨여서 기분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지난 회에 쓴 독도(일본명 : 다케시마) 문제에, ‘한일 공동 관리’라는 말을 사용하여, 몇 분의 독자로부터, 엄격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한 번 더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대응과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지난주 시사문제를 다루는 대학 강의에서 독도와 관련된 신문기사 등을 참고로,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쓰게 했습니다. 41명의 학생들 중에, 가장 많았던 내용 (20여명)은 "잘 모르겠다" "이러한 문제로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느 쪽이라도 좋다"라고 하는 뉘앙스였고, "다케시마(竹島)를 한국이 점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인정 할 수 없다" "일본정부는 한국에 대해 더욱 의연한 대응을 취해야 한다"는 등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한 학생은 3명이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역사인식 등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 "한국에 양보하면 어떠한가"라고 말한 학생도 4~5명 있었습니다. 또 "국제사법재판소에 판단을 맡기자" "대화를 거듭하면서, 공동으로 관리하자"라는 의견도 몇 명 있었습니다.

    이 수업에는 3명의 한국 유학생도 있었는데, 그들은 "한국과 비교해 일본인의 독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다. 일본의 영토라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의식이 왜 이렇게 낮은지 이해할 수 없다."  "독도가 한국 영토인 것은 양보할 수 없지만, 일본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는 등의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이 수업은 모두 중국어, 한국어, 영어 등을 전공하는 외국어학부의 학생들로, 비교적 국제문제에도 관심이 높다고 생각됩니다만, 리포트의 결과는 일본의 일반 대학생의 의식과 거의 같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현저한 경향을 얘기하자면, 우선 그들은 독도문제의 역사적인 경위를 전혀 모릅니다. 대부분 학교에서 다케시마에 대해 배운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유권’에 대해서 논의할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지난주, 텔레비전 프로에 출연한 아소 다로 외무장관은 "외무성의 홈페이지에,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는 설명이 정확히 씌어져 있다"라고 했습니다만, 이 사람도 아마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라고 하는 역사적인 근거를 정확히 가리킬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외무성의 홈페이지에는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또한 국제법상도 분명히 일본의 고유의 영토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헌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일본은 옛날부터 다케시마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많은 문헌, 지도 등에 의해 명백하다"라고 쓰여 있으며, 구체적인 고문서로서는 18세기 후반의 지도 이름 하나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매우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외무장관은 아마 외무성의 홈페이지를 읽은 적이 없을 겁니다. "창씨개명은 조선 사람들이 원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치가이기 때문에 그의 이런 태도가 놀랍지는 않지만 어쨌든, 외무장관(차기 수상 후보의 한명이기도 함)이 이 정도의 인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영유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고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본에서 무서운 것은 역사적 기억의 말소가 굉장한 기세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지내는 동경대학의 교수가 "한국전쟁은 끝났을까"하는 질문을 30명의 학생에게 해보니, "휴전 상태다"라고 정확하게 대답한 것은 불과 한 명뿐이라며 한탄 했습니다. 학생에 한하지 않고, 전쟁 포기,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의 개정에 반대하는 헌법 수호파의 시민조차, 한국전쟁은 이미 끝난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초순,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역사적 기억의 왜곡과 말소가 일본인에게 어떤 의식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패전 직후 연합국이 A급 전범을 재판한 도쿄재판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70%에 이르렀습니다. 20대는 90%가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도쿄재판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의해 일본은 독립을 회복해 국제사회에 복귀한 것입니다. 전후 일본 재출발의 원점이 된 도쿄재판조차 많은 일본인이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 사실은 충격적인 것입니다.

    또한 같은 조사에 의하면, "도쿄재판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하여 저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역사에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보다 보수적이고 배외(排外)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에의 무지’가 퍼지는 가운데, 일본의 ‘우경화’는 이미 걱정의 단계를 넘고, 위험한 수역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편지가 조금 길어졌으므로, 이것으로 펜을 놓습니다만, 다음에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고자 합니다.

    노나카 대표는 원고 이외에 최근 마이니찌 신문이 발행하는 <선데이 마이니찌>라는 주간지에 독도 문제에 대해 기고한 것을 보내왔다. 이 글은 독도 주변의 해저 조사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쓴 것이다. 노나카 대표는 이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의견이 듣고 싶다고 전해왔다. <편집자 주>

    지금의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지난달, 해상보안청에 의한 다케시마(한국명·독도) 주변의 해저조사를 둘러싸고, 당분간 조사를 중지하는 것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간신히 회피했지만, 상호불신에 의한 균열은 깊어질 뿐이다.

    한국측과 정치적인 핫라인을 가지지 않는 고이즈미 정권은, 이러한 사태가 되어도, 전혀 문제해결에 유효한 손을 댈 수 없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아도, 자신의 학설만 되풀이하는, 능력 없는 고이즈미 수상의 ‘아시아 경시’는 부채가 되어 돌아왔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관해서 몽매한 발언을 해온 아소 다로 외무장관 등은 한국측의 빈축을 사는 것 말고는, 외교능력은 제로와 다름없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방치하고, 외교를 기능 부전에 빠지게 한 고이즈미 정권의 책임은 지극히 무겁다.

    한편, 한국 노무현 정권의 대일자세는, 가열(苛烈)함을 더하고 있다. 얼마 전에 발표 한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로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라며, 독도 주변의 일본측 움직임을 저지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선박의 나포 등 충돌도 불사한다고 하는 결의를 내보였다.

    담화의 중요한 포인트는, 노무현 대통령이 독도 문제를 한국의 주권회복의 상징이라고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된 우리 땅이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이다…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러일전쟁은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과 남쪽만주(중국 동북)의 지배를 둘러싸고 싸운 전쟁"(일본대백과전서)이며, 전승한 일본은 조선에 있어서의 우월권을 획득한 후, 차차 한국의 주권을 빼앗고, 1910년에 합병했다. 담화 안에 있는 "독도가 병탄 되었다"라는 지적은, 이러한 식민지화의 프로세스에서, 1905년, 일본측이 내각회의 결정 및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한 조치를 가리킨다.

    일본의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이 편입 조치는 일본정부가 근대 국가로서 다케시마를 영유하는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며, 그 이전에 일본이 다케시마를 영유하지 않고 있었던 것, 더구나 타국이 다케시마를 영유하고 있었던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는 크다.

    영유권에 관한 사적인 견해를 말하면, 근거로서 한일 쌍방이 내거는 고문서나 지도 등의 평가는 전문가의 사이에서도 구구해서, 영유를 주장하는 결정적 수단이 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원래 다케시마는 바위만의 무인도이며, 주변해역에서는 어느 쪽의 어민도 고기잡이를 행하고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방적으로 ‘영토’라고 의식하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

    한국에서는 이번달 말, 지방선거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강경자세는, 그 선거를 상당히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독도문제를 계기로, 한시라도 빨리 한일간 역사인식의 도랑을 채우는 대화를 시작하고 싶다.

    <선데이 마이니치> 5월28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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