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 보고서 “빈국서 의약품 특허내지 말아야”
        2006년 05월 22일 05: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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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개막된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는 현재의 의약품 특허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에 대한 논의가 벌어질 것이라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가 21일 보도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가 처음으로 특허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총회에서 채택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제약회사, 선진국 주장에 제동

    세계보건기구 2003년 총회에서 만들어진 ‘지적재산권, 혁신, 공공보건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는 특허에 기반한 현재의 신약 개발, 마케팅, 가격책정 시스템을 비판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보고서는 “현재의 연구개발 시스템이 개발도상국 국민들을 위해 기대되는, 더 나아가 예상되는 성과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며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주민들에게 요구되는 의료 공급에 광범위하게 작용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사례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제약회사와 선진국들은 그동안 시급한 의약품 개발을 위해서는 신약에 대한 특허제도가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루트 드라이푸스 전 스위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한 세계보건기구의 ‘지적재산권, 혁신, 공공보건 위원회’는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은 고가의 신약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고 제약사들에게 별로 수지가 맞지 않는 약품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의 특허제도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위원회는 각국 정부가 의약품 개발과 공급에 대한 대안적인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며 더 나아가 가난한 나라에서는 제약회사들이 특허권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권고했다. 의약품 특허제도에 대해 그동안 제약회사들과 비정부기구(NGO) 사이에 대립은 첨예했지만 세계보건기구가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후진국엔 그림의 떡, 신약 사용 가능케 해야

    국경없는 의사회(MSF)의 필수의약품 접근권 캠페인을 담당하는 엘렌 호엔 국장은 이 보고서에 대해 “각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가 그동안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은 분야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라는 강력한 요청”이라며 “세계보건기구가 의약품 접근권과 지적재산권 사이의 연결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의약품 특허를 둘러싼 논란은 10년 전부터 선진국과 후진국, 제약회사와 비정부기구 사이에서 계속돼 왔다. 1년에 1만 달러(약 1천만 원) 이상 드는 에이즈 치료약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에이즈뿐이 아니다. 지난주 미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FDA)는 자궁경부암에 대한 예방 백신을 승인했다. 자궁경부암은 선진국에서는 정기적인 검진을 통해 치료가능한 단계에서 발견돼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약사인 머크사가 세 번 투약에 500 달러(약 50만 원)로 약값을 책정해 정작 백신이 절실히 필요한 가난한 나라의 환자들은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는 제약사들이 가난한 나라에는 가격을 낮춰서 의약품을 공급하거나 통상법 상에 특례조항을 둬 저가의 일반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또한 빌 게이츠 재단과 같은 자선기관들이 고가의 의약품을 구매해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기도 했다.

    총회 채택 여부는 미지수

    하지만 자선기관의 사업에는 한계가 있고 특례조치들은 최근 들어 점점 사라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복제약 생산이 성행했던 인도는 지난해 1월부터 의약품 특허제도를 세계무역기구의 제도에 맞추기 시작했다. 제약회사들은 신약에 대해서 특허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고 인도의 제약회사들은 더 이상 새로 개발된 에이즈 치료용 일반의약품을 생산할 수 없게 됐다.

    HIV 문제가 심각한 브라질과 케냐는 세계보건기구의 이번 총회에서 위원회의 보고서를 필수 의약품 개발을 위한 국제적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기본 원칙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위원회의 보고서가 이번 총회에서 채택될지는 미지수다. 다니엘라 바고치 세계보건기구 대변인은 총회는 25일이나 26일 보고서를 다룰 예정이라며 위원회의 권고가 채택될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몇몇 비정부기구들은 세계보건기구가 보고서를 무시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지적재산권 관련 사항은 이번 총회의 주요 의제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총회를 계기로 의약품 특허제도에 대한 논란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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