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 돈 버는 것과 서민 지갑은 무관, 반비례 현상도
        2006년 05월 22일 04: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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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대로 세금 내겠다.” 신세계가 1조 원의 상속․증여세를 내겠다고 선언하자, 삼성과 현대자동차도 그 뒤를 이어 “정당한 세금을 당당하게 내겠다”고 밝혔다. 콩밥 좀 먹어보니 ‘앗, 뜨거워’ 하는 생각이 든 모양인데, 아무래도 괘씸하다. 갑근세 부가가치세 꼬박꼬박 바치는 서민 앞에서 너무 생색내는 거 아닌가 말이다.

    뒤늦게 예쁜 짓 해봐야 소용없다는 서민들 감정을 참여연대의 논평이 잘 대변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과는 별개로 상속세 탈루에 따른 조세범처벌법 등도 적용해야 한다. …… 만약 검찰이 이를 포기한다면 이 역시 재벌총수 봐주기일 뿐이다.”

    “시장경제와 공정 경쟁을 거부하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도 없이 국가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집단의 경영권을 맡길 때 이것은 그 기업(집단)과 국민경제에게는 물론 재벌 3세 개인에게도 IMF 경제환란 이상의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다(최한수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참여연대가 펼치는 재벌규제운동은 대단히 정력적이기는 하지만, 반기업적인 것이 아니고 반자본주의는 더더구나 아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반독점법에서 체계화된 재벌 규제책은 2차대전 후 일본에서 시행되고, 1970년대에 한국 정부와 운동권에게 주요 경제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 참여연대는 현대자본주의의 상식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시민사회진영의 모든 구성원이 이 같은 재벌규제책을 일관되게 지켜오지는 않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정책연구위원장을 지냈던 강철규 교수는 공정거래위원장 재직시 “경쟁제한적 규제법령은 좀더 적극적으로 검토해 개선해 나가야 시장경제 선진화가 가능하다 …… 규제수요자 입장에서 눈높이를 맞춰 규제개선 노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피력하기도 하였고, 같은 단체 출신으로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박세일 교수는 조금 더 과감하게 “한국경제의 동력은 분명히 재벌에게 있다 …… 재벌체제의 부작용을 줄이되, 외국자본과 싸워야 하는 재벌체제를 위해 그 효율성과 강점을 인정해주며 개방체제에 걸맞는 재벌정책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개혁적인 지식인들의 모임인 대안연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한 교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진다면 재벌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여야 한다. 그래야 재벌이 재투자 비용을 마련할 수 있고, 외국 투기자본과의 경쟁에서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라는 지론을 과감히 펼친다. 이런 문제의식은 재벌그룹 산하의 제조업, 금융, 사무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운동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져 보자. 과연 재벌은 한국 경제의 근간인가? 10대 기업의 매출액이 GDP의 30%나 차지하니, 근간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벌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한국 경제가 나아졌나? 지난 몇 년 동안 재벌의 총매출, 수출액, 순이익은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경제가 좀 풀렸다는 이야기가 안 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규제 완화로 인한 재벌의 확대가 시장 경쟁자인 중소기업의 경영난으로 이어졌고,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한국 총고용의 80%에게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재벌의 자본, 기술, 생산, 소비, 고용의 대부분은 한국 시민사회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조세로 인해 재벌의 경제행위가 위축되는가? 조세는 분명히 재벌의 총투자 규모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들딸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감행되는 주식소각이나 감자에 낭비되는 돈, 천문학적 액수의 불법정치자금과 뇌물에 비하면 세금은 말 그대로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즉, 재벌의 경영 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조세를 회피하는 것보다는 경영관행을 합리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클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벌 돈이 원래 누구 돈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 국민은 90년대까지 20여 년 동안이나 세계 최고의 저축율을 자랑했는데, 그 돈의 60%를 우대금리 조건으로 5대 재벌이 가져갔다. 말이 좋아 우대금리지 인플레이션율보다도 낮은 공짜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재벌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이만큼 돈벌게 해준 종자돈의 분할 이자일 뿐이다.

    재벌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자는 의견의 밑바탕에는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과 민간자본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자리에서, 자본을 사회적으로 이용하는 것과 민간에서 이용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인지를 따지지는 않겠다. 한 가지만 확인해두자. OECD 30개국의 GDP 중 공공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에서 한국이 최하위이고, 이로 인해 경기변동에 대한 한국 경제의 대응력이 가장 취약하다는 사실 말이다. 

    이 글은 시민의 신문(ngotimes.net)에도 함께 실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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