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헝가리와 영국과 칠레를 이어주는 노래의 기억
        2006년 05월 22일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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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ueva cancion chilena"
    19??
    .
    1 Chile herido INTI-ILLIMANI    
    2 Las últimas palabras APARCOA    
    3 Manifiesto VICTOR JARA    
    4 Vientos del pueblo ISABEL PARRA    
    5 Canción al partido APARCOA    
    6 Compañero presidente QUILAPAYUN    
    7 La segunda independencia INTI-ILLIMANI    
    8 Ya no es tiempo de esperar ISABEL PARRA    
    9 Aquí me quedo VICTOR JARA    
    10 El rojo gota a gota irá creciendo QUILAPAYUN    
    11 Cuando amanece el día ANGEL PARRA    
    12 Alerta pueblos del mundo HECTOR PAVEZ    
    13 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 QUILAPAYUN 
     

    레코드 커버 앞면에 적혀있는 <칠레의 새로운 노래nueva cancion chilena>라는 앨범 제목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커버의 뒷면은 그냥 하얀 백지다. 하다못해 수록곡의 목록조차 적혀있지 않다.

    수록곡은 레코드를 꺼내 가운데에 붙어있는 라벨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라벨에 붙어있는 앨범 제목은 또 커버의 그것과 다르다. 라벨에는 <칠레 투사들Chile Combatiente>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이 제목을 단서로 수소문해 본 결과 1975년에 프랑스에서 발매된 레코드 <칠레 저항의 노래들Chansons De La Resistance Chilienne>과 내용이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프랑스에서 발매됐던 음반을 누군가가 다시 찍어낸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 ‘누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하얀 백지인 앨범의 커버 뒷면 구석에 보면 깨알보다 작은 글씨로 “Zrinyi Nyomda, Budapest"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마지막 단어는 쉽게 해독이 된다. ‘부다페스트’ 이 레코드가 헝가리와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앞의 두 단어는 또 한참동안 수소문한 끝에 헝가리 사회주의 정권시절부터 존재한 출판사의 이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때 아닌 탐정놀이 끝에 헝가리의 출판사가 프랑스에서 발매된 앨범을 자국에서 다시 찍어낸 레코드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다만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프랑스 원본이 1975년에 나왔으니 그 이후라는 것만 짐작이 된다. 발매한 목적도 알 길이 없다. 당시 헝가리의 국영레코드회사에서 제작하지 않고 왜 ‘출판사’가 이런 레코드를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레코드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레코드가 품고 있는 노래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따로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 노래를 통해 민중의 계몽과 연대, 사회변혁을 꿈꿨던 칠레의 ‘누에바 깐시온’운동은 해외에서도 유명했고, 또 1973년 칠레 쿠데타 이후 해외로 망명한 누에바 깐시온 가수들이 꾸준히 음악활동을 했기 때문에 제3세계 음악 답지 않게 잘 알려져 있다.

    또 ‘문화운동’이 발달해 있던 칠레답게, 쿠데타 이후 칠레의 반독재운동과 망명객들을 지원하기 위해 각 나라에서 설립된 ‘칠레연대기구’들이 이 노래들을 음반으로 제작해 재정사업을 벌였던 것도 칠레의 노래와 가수들이 널리 알려지는데 한몫을 했다.

    비록 프랑스에서 원본을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이 헝가리의 레코드는 칠레의 ‘누에바 깐씨온’ 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들만을 담고 있다. 쿠데타 이후 칠레 바깥에서 복각된 레코드들이 대부분 한 가수의 노래를 모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처럼 누에바 깐씨온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경우는 보기가 드물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빅토르 하라와 누에바 깐씨온의 대모 역할을 했던 비올레타 파라의 딸과 아들인 이사벨 파라와 앙헬 파라, 그리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민중가요 노래패인 인티 일리마니와 퀼라파윤의 노래들이 한 장의 레코드에 들어있다. 선곡은 누에바 깐씨온의 서정적인 면보다는 ‘투쟁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 실려 있는 대부분의 곡들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에 칠레 민중연합의 집회나 모임에서 자주 불려지던 노래들이다.

    그중에서도 칠레 민중들이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담아 불렀던 “대통령 동지compañero presidente”, 민중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사회당과 공산당에 대한 찬가인 “당을 위한 노래canción al partido”, 그리고 칠레 민중운동의 주제가였던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El pueblo unido jamás será vencido”는 쿠데타로 인해 좌절된 희망과 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노래들이다. 다만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후보를 지지하는 좌파 정당 연합체인 “민중연합”의 상징곡으로 사용됐던 "승리venceremos"가 빠져 있는 것이 아쉽다.

    * * *

       
    Victor Jara
    "Manifesto"
    1974년 발표
    .
    1. Te Recuerdo Amanda
    2. Canto Libre
    3. Aqui Me Quedo
    4. Angelita Huenuman
    5. Ni Chicha Ni Limona
    6. La Plegaria A Un Labrador
    7. Cuando Voy Al Trabajo
    8. El Derecho De Vivir En Paz
    9. Vientos Del Pueblo
    10. Manifesto
    11. La Partida
    12. Chile Stadium
     

    누에바 깐씨온을 대표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빅토르 하라였다. 그와 함께 노래 운동을 펼쳤던 동료들이 이유야 어찌됐건 살아남았던데 비해 그만이 쿠데타 세력이 민중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을 학살한 칠레 스타디엄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는 음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누에바 깐씨온이라는 하나의 문화운동이 예술과 정치와 민중이라는 요소들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고 또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꿰뚫고 있던 지도자였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쿠데타 정권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빅토르 하라 만큼은 살려둘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 하라의 부인인 조안 하라는 영국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성을 하라로 바꾸면서 이미 자신을 칠레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취급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조안 하라는 추방이나 다름없는 형태로 출국이 허용됐다.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타면서 그는 남편의 녹음 원본 일부를 짐 속에 숨겨 반출했다.

    빅토르 하라의 오리지널 녹음 테이프들은 당시 군사정권의 제거대상 1호였다. 빅토르 하라는 생전에 3곳의 레코드 회사에서 앨범을 제작했는데 그중 외국자본인 칠레EMI는 쿠데타 세력이 요구하기도 전에 빅토르 하라의 녹음을 파기해버리는 기민성을 보였다.

    이대로 놔두어서는 남편의 분신과도 같은 노래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려한 조안 하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녹음 테이프들을 반출한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다큐멘터리 <칠레 전투>를 제작한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도 쿠데타 정권의 눈을 피해 칠레에서 촬영한 필름을 조금씩 해외로 반출해 영화를 완성시켰다.

    이렇게 어렵게 반출된 녹음을 가지고 1974년에 영국에서 제작된 음반이 <선언Manifesto>이다. 쿠데타로 칠레에서 빅토르 하라의 녹음들이 파기된 이후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의 레코드가 꾸준히 제작됐지만 대부분 레코드 자체를 복각하거나 라이센스를 통해 제공된 녹음 복사본에 기초하고 있다. 빅토르 하라의 오리지널 녹음으로 제작된 앨범은 이 <선언> 뿐이었다.

    물론 이 레코드의 가치는 오리지널 녹음으로 제작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녹음을 반출한 조안 하라와 칠레의 민중 투쟁을 잊지 않고 현지의 반독재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영국의 진보세력들의 존재가 이 앨범을 소중하게 만든 것이다.

    또 빅토르 하라가 쿠데타군이 수용소로 사용한 칠레 경기장에 갇혀 있는 동안 감시의 눈을 피해 쓴 마지막 유고시 “칠레 스테디엄”이 수록돼 세계에 알려진 것도 이 레코드를 통해서다. 물론 고인이 된 빅토르 하라의 육성이 아니라 부인인 조안 하라의 목소리로 녹음돼 있다.

    앨범 커버 뒷면에는 영국의 좌파 시인이며 극작가인 애드리언 미첼이 빅토르 하라에게 바치는 송시가 적혀있다. 2년 뒤인 1976년에는 미국 민중가요의 전설인 우디 거스리의 아들인 알로 거스리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남미의 위대한 영혼의 죽음을 추모하기도 했다.

    <선언>에는 앞서 이야기한 유고시 “칠레 스타디엄”을 제외하고 11곡의 노래가 들어있다. 이중 “선언Manifesto”,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인 “내가 머무는 이곳Aqui Me Quedo” 두곡은 헝가리 레코드에도 들어있다. “민중의 바람Vientos Del Pueblo”은 헝가리 레코드에서는 이사벨 파라의 녹음으로 들어있다.

    이외에도 빅토르 하라를 대표하는 곡인 “아만다를 기억하며Te Recuerdo Amanda”가 역시 앨범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공장으로 향하는 두 젊은 노동자 마누엘과 아만다를 통해 칠레의 노동계급을 전체를 노래하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줬다. “평화롭게 살 권리El Derecho De Vivir En Paz”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시각을 칠레와 라틴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세계로 돌렸던 노래다.

    * * *

    칠레가 민주화 되면서 외국을 떠돌던 망명 정치인들과 예술인들은 대부분 칠레로 돌아갔다. 조안 하라도 칠레도 돌아가 “빅토르 하라 재단”을 건립했다. 빅토르 하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사들이 목숨을 잃었던 칠레 스타디엄도 2003년 빅토르 하라 경기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민주화의 성과였다.

    조안 하라가 재단을 건립한 것은 죽은 남편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 유산을 칠레의 민중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녹음을 복원하는 게 급선무였다. 재단의 노력으로 쿠데타 후 파기됐던 그의 녹음들은 대부분 복원돼 지난 2001년 8장의 CD로 재구성됐다. 다국적 거대기업인 원뮤직 인터내셔널이 제작과 배급을 맡았다는 것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 CD들을 통해 그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녹음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방송에 출연해 부른 녹음이나 쿠바에서의 공연 실황들이 새롭게 발굴되기도 했다.

    이 복원작업에는 빅토르 하라가 칠레의 EMI를 통해 발표한 녹음은 포함돼지 않았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자 먼저 녹음을 파기했던 이 대자본은 재단이 복원한 CD들이 시장에 선보이자 즉각 EMI시절의 빅토르 하라의 녹음들을 <Victor Jara 1959-1969>라는 제목의 CD 두장짜리 앨범으로 복원해 내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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