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적 상상력'으로 쓴 공상과학소설
    2006년 05월 22일 09:54 오전

Print Friendly

어린 시절 ‘세계공상과학소설선집’에 실려있는 <타임머신>이나 <투명인간>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금 다시 찾아 읽어보면 그리 치밀한 구성으로 보기 어렵지만 20세기가 아닌 19세기에 쓰여진 공상과학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타임머신>과 <투명인간>은 ‘공상과학’이라는 소설장르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들. 1세기전에 나온 이 소설들의 아이디어는 수많은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할리우드의 SF영화들 중에서 이 공상과학소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영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백투더퓨쳐’나 ‘터미네이터’ 등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들은 따지고 보면 1895년에 쓰여진 <타임머신>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고 ‘투명인간의 사랑’이나 ‘할로우맨’과 같은 영화들은 1897년에 쓰여진 <투명인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해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우주전쟁’은 원작을 왜곡시키며 미국 보수층이 중시하는 ‘가족의 가치’와 ‘애국심’을 슬그머니 집어넣기도 했다.

   
 

작가인 H.G.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는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모로박사의 섬> 등의 작품을 통해 <달세계 여행>, <해저 2만마일> 등의 작가 쥴 베른과 함께 공상과학소설을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게 만든 대표적인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안 나는 독자들을 위해 줄거리를 옮기자면 <타임머신>은 19세기말의 영국 런던에서 주인공이 시간여행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끝에 타임머신을 발명하고 그것을 타고 80만년 뒤의 미래세계로 떠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는 서기 80만2071년의 미래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져버린 두 종류의 인간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지상에는 가진 자들만이 살면서 노동은 하지 않고 쾌락이나 미를 추구하며 무위도식을 하는 반면, 인공의 지하세계에서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하루종일 노동에만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현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차이는 일시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간 것”임을 깨닫고 탄식한다.

“내가 꿈꾸고 있던 인류의 위대한 승리란 이러한 형태의 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본 것은… 자연에 대한 승리일 뿐만 아니라 동료인 인간에 대한 승리였어요.”

웰스는 공상과학소설 안에 19세기말 영국의 현실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던 냉철한 계급인식을 슬쩍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 시간여행자가 미래세계를 소개하면서 “지금도 이스트엔드(런던의 빈민가) 노동자들은 지상의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인공적인 장소에서 살고 있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것은 웰스가 영국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이 작품 주인공인 시간여행자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지상’으로부터 단절된 ‘빈민가’

H.G. 웰스는 1866년 템스 강 남쪽 켄트 주의 브롬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프 웰스는 조그마한 도자기점을 경영하는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어느 귀부인의 하녀였다. 웰스는 어릴 적부터 가난에 시달리며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는 기본적인 학교교육만 마치고 14살때 버크셔주 윈저에 있는 한 양복점의 점원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재단보조 일을 싫어하던 그는 얼마 안 있어 그 일을 그만두고 미드허스트 그래머 스쿨의 조수로 일하게 됐다.

웰스는 이곳에서 비로소 학문을 접할 기회를 얻었고, 18세 때 런던의 남부 캔싱턴에 있는 과학학교(School of Science)에서 생물학을 배울 수 있는 장학생 자격을 얻었다.

이 학교에는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한 유명한 생물학자 T.H. 헉슬리가 있었다. 웰스는 헉슬리를 통해서 진화론을 알게 됐다. 그가 나중에 공상과학소설을 쓰게 된 것도 이처럼 과학적인 지식이 바탕을 둔 상상력 때문이었다.

1888년 런던대학을 졸업한 웰스는 과학교사로 지내면서 계속 연구를 진행했다. 과학저널을 창간하고 논문도 발표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 명성을 올리던 웰스는 1895년 첫번째 소설인 <타임머신>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어서 발표한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도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공상과학소설뿐 아니라 정치, 기술, 미래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서를 잇달아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사회비평은 당시 점진적 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활동하던 페이비언 협회의 세 지도자, 즉 조지 버나드 쇼, 시드니 웹, 베아트리스 웹의 주목을 받았다.

세 사람의 권유로 웰스는 1903년 협회에 가입하게 된다. 이 시기 <현대 유토피아>, <구세계를 대신하는 신세계>, <최초의 것과 최후의 것> 등의 저작은 웰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사회주의 조직 가운데 하나였던 페이비언 협회는 웰스가 보기에 심약한 지식인들이 모여앉아 사회주의 개혁을 토론하는 소그룹 정도에 불과했다. 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웰스는 협회가 변혁을 선동하는 실천적인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조지 버나드 쇼 등 협회의 지도부와 자주 마찰을 빚게 되자 웰스는 협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집행위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많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낙선했다.

   
     1920년 레닌과 만난 웰스
 

결국 웰스는 1908년 페이비언 협회를 떠났으나 사회주의를 향한 그의 투쟁은 이후에도 계속 됐다. 1917년 러시아에서 성공한 혁명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웰스는 소련에 들어가 레닌과 트로츠키를 상대로 국가경영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웰스는 진보는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는 민중을 교육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됐다. 그래서 <역사의 개설>, <세계사 개설>, <생명의 과학>, <일류의 노동, 부 그리고 행복> 등의 책을 쓰며 민중을 교육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 작품에서 그는 세계라는 공동 사회가 역사적, 생물학적, 경제학적으로 단일한 것이므로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지질학 등 기타 여러 학문들을 인류 전체가 이룩해낸 성과를 집대성하여 인간중심적인 종합 과학을 이루려고 했다.

특히 1922년에 쓴 <세계사 개관(A Short History of the World)>는 당시 영국 민중들에게 널리 읽혔는데 그는 이 역사책의 집필을 역사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우주 발생으로부터 시작해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시대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는 수많은 생물 종 가운데 하나의 종으로서 인류를 바라보고 인종적인 편견이나 국가주의를 배격해 종합적인 인류사 서술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의 전쟁가능성 예고

1920~1930년대에 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여겨지고 있었으며 유럽과 미국의 언론사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칼럼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웰스가 당시 책이나 칼럼을 통해 주장했던 것은 “세계정부의 필요성”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고통을 지켜본 웰스는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창설을 지지하고 지식인들이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주장으로 인해 웰스는 몇몇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엘리트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웰스의 작품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공상과학소설을 이용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면서, 자본주의가 지속될 경우 계급간의 차이가 더욱더 극명해져 어두운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웰스는 미래 세계에 대한 경고를 계속하다 전쟁이 끝난 뒤 1946년 8월 13일 사망했다.

웰스는 ‘예언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는 탱크나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그것들이 전쟁에 이용될 것임을 얘기했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시험에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를 이용한 폭탄과 가스의 살포를 예언하기도 했다.

진정한 세계인의 관점에서 인류의 과거를 연구하고, 과학적 상상력으로 미래의 세계를 예측한 작가 H.G. 웰스는 현실에서는 인류가 실현해야할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위해 노력해온 진정한 사회주의자였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