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 삶과 직결된 주택문제 대안 반드시 만든다
        2006년 05월 21일 04: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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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의원실 손낙구 보좌관은 생활인의 감성을 갖춘 운동가다. 그에게 운동이란,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과,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의 시각에 입각해, 생활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다. 생활인의 감성을 갖추려면 스스로 생활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생활인으로 내려오지 않은 ‘직업적 운동가’들의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의 전문 분야인 부동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애들 데리고 이집 저집 전전하면서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고는" 집 없는 설움을 모른다.

    생활인으로 내려오지 않은 ‘직업 운동가’ 신뢰 안하는 편

    그는 올해로 보좌관 경력 3년차다. 그런데 그는 이미 진보 진영의 부동산 문제 전문가로 통한다. 앞서 말한 운동 원칙이 좌표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특유의 ‘집중력’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독한 사람’, ‘무서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끝장’을 보고야 만다는 것이다.

       
     

    "심상정 의원실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부동산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어요. 서민의 처지에서 부동산 문제를 보자고 생각했어요. 대한민국에 있는 관련 자료를 다 보자고 마음 먹고 1년 내내 읽었죠.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우리 당의 부동산 정책은 아직 깊이가 얕고 보완할 부분이 많아요. 깊게 들어가다 보니 파야할 게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는 ‘주택문제’가 민주노동당에게는 서민들의 마음을 얻을 ‘노다지’라고 말한다. 서민의 삶과 고통이 집약되어 있는 주택문제는 오직 민주노동당에서만 참다운 해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나와도 민주노동당이 가장 잘 알아야 하고 민주노동당의 정책이 서민의 마음에 가장 와닿아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아직은 당위에 그치고 있다. 많은 인적, 물적 투자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노다지를 못 캐고 있다"

    "주택정책 핵심은 모든 국민에게 안정적 주거 마련해주는 것"

    그의 ‘노다지론’과 관련해 이번 지방선거는 흥미롭다. 이번처럼 주택문제가 선거의 전면적 이슈로 등장한 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92년 대선에서 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아파트 반값 공약을 내걸고 나온 이래 처음이지 싶다. "시류를 반영하는 거지요. 92년에도 집 때문에 사람들이 자살하고 그랬잖습니까. 지금 주택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거예요."

    역대 정권 가운데 부동산 값을 잡겠다고 말하지 않는 정권은 없다. 그런데도 죄다 실패했다. 이유가 뭘까.

    "정책의 실패입니다. 국민들이 저마다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갖도록 하는 것을 정책의 중심에 놓았어야 하는데,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만 부동산 정책에 접근했어요. 그러다 보니 주택이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자연히 빈부격차도 심해질 수밖에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으니 그의 말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다른 나라들은 둘 중 하나의 정책을 써요. 국민들이 자기 집을 갖도록 하거나, 아니면 집을 가질 사람은 갖도록 하되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거죠. 둘 다 목표는 하나예요. 사람들이 안정적인 주거여건을 갖도록 하자는 거죠. 싱기폴은 전자의 경우인데 자기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92%예요. 서유럽은 후자의 경우로 국가별로 전체 주택의 20~40%가 공공 임대 주택이죠. 지금껏 우리나라는 이런 목표 자체가 없었어요."

    "버블논쟁에 ‘버블’이 끼어 있다"

    참여정부는, 정책당국자의 ‘말’만 듣고 판단한다면,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목숨을 건 것 같기도 하다. 말 따로 정책 따로라는 비판이 좌우 양쪽에서 들리지만 암튼 그렇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아직까지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지나 4년간 여러 ‘대책’을 내놨는데도 그렇다.

    그래선지 최근 정부가 불붙이고 있인 버블논쟁에서는 어떤 초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품이 곧 꺼질거다’는 말은 정책당국이 시장 참여자들에게 보내는 신호이면서 ‘이제 그만 거품이 꺼져야하는데’ 하는, 자신의 정책에 대한 애타는 기대 같기도 하다. 게다가 선거가 목전이다. 보수언론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최근의 버블논쟁에는 ‘버블’이 끼어 있다.

    "정략적인 싸움이 되어버렸어요. 정부도 조급해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만하고요. 보수언론도 현 정부를 공격하는 소재로 버블논쟁을 활용하는 것 같아요. 양쪽 다 잿밥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할까요. 암튼 서민경제의 안정화를 위한 진지한 논의와 모색은 안 보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투기가 국지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예요. 그러나 정부 말대로 ‘버블세븐’에 한정되어 있는 건 아니고요. 지방까지 꽤 넓게 거품이 끼어 있어요. 정부의 각종 ‘도시’자 붙은 사업들이 이걸 부채질하기도 했고요. 거품이 꺼지는 속도는 지금 예측하기 힘들고요.

    다만 거품이 꺼지면 그 충격이 정부 기대처럼 간단치만은 않을 거예요. 특히 부동산 폭락이 금융권의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지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되돌아오게 되거든요.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예요. 이제라도 위험 관리를 잘 해야죠."

    "집없는 설움 벗어나니, 이제 박봉에 대출금 갚느라 죽을 지경"

    그는 부인과 중학교 1학년 딸 하나를 두고 있는 40대 중반의 가장이다. 월급은 은행 대출금을 갚기에도 빠듯하다. 그는 작년말 은행 빚을 내 마장동에 작은 아파트를 한 채 구입했다. 아이는 크는데 계속 이집 저집 단칸방만 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을 사고 나니 은행 빚을 갚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 없을 때는 그것대로 못 견디겠더니 집이 생기고 나니까 은행 빚 갚느라 힘들어 죽겠더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 조건에 정직하다. 다른 노동자들처럼 좀 더 많은 급여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보좌관으로 들어온 후 그는 당 지도부를 상대로 두 번의 ‘임투’를 벌였다. 재작년에는 임금인상을 위해, 작년에는 임금인하를 막기 위해 싸웠다.

    특히 작년 싸움 때는 "본인의 동의 없는 임금 삭감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는 논리를 폈다. 그가 노동현장에서 사업주들에 맞설 때 숱하게 했던 말이다. 그런 싸움 끝에 그가 지금 받는 급여는 상여금 없이 월 172만원이다.

    "활동가들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돌이켜보면 경제적 기반이 조금만 뒷받침되었어도 남았을 유능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앞으로도 사람이 별로 남아나지 않을 거예요."

    "술 좀 마시면 그만 둬야지 하다가도, 술 깨면 차마 못 떠난 운동"

    그는 나이 40을 넘기면서 경제적인 문제로 심적 갈등을 많이 겪었다. 단병호 위원장 시절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으로 일할 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 했다고 한다. "술 먹으면 도망가야지 하다가도 술 깨면 도망 못가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는 결국 ‘도망’가지 못했다. "단병호 위원장이 감방에 있어 도저히 그냥 도망갈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 2004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을 마치고는 이제 정말 운동판을 떠나야 하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5년간 민주노총의 ‘입’으로 여한없이 일했다. 또 86년 노동운동에 투신한 이래 열심히 살았고, 보람도 참 많이 느꼈다. 그러나 민주노총 일을 마치고 나니 앞길이 막막했다. 노동운동을 계속 하자니 "자식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경제적인 문제가 조금만 해결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일이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다.

    "30대 초반까지는 인생이 운동의 한 부분이었어요. 사고 방식도 그랬고 실제 생활도 그랬어요. 그런데 실제 살림도 해보고 아이도 키우고 하다보니까 ‘운동’과 ‘인생’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대한 인생의 바다에 운동이라는 배 한 척이 떠 있는 게 아닐까, 운동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서민과 삶의 고통을 나누고 개선해서 모두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자는 거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보좌관 생활과 부동산 정책 연구는 그가 그 즈음에 도달한 성찰의 지점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국회는 진짜 전쟁터"

    "주거와 교육이 서민의 삶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예요. 어찌보면 의료 문제는 좀 덜 할 수가 있어요. 아플 때만 고통스러우니까. 그러나 주거와 교육 문제는 24시간 내내 고통스러운 문제 아닙니까."

    "사업장에서 싸워 승리하면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런데 국회에서 싸워 제도를 바꾸면 전체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죠. 회사의 사장이 해줄 수 없는 것, 전체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주거 문제도 그런 문제예요. 국회야말로 정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방심해서도, 몰라서도, 실수해서도 안 되는, 적당히 넘어가거나 봐주는 것이 없는, 냉정한, 그러나 정말 중요한, 그런 전쟁터 말이예요."

    그는 81년에 대학을 들어갔다. 지금으로부터 만 20년 전,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던 중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역사학은 삶과 사회를 다루는 학문이다. 공부를 할수록 "부끄러워지더라"고 했다. 결론은 "뛰쳐나가야 한다"는 거였다. 처음으로 취업한 곳은 안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 공장이었다.

    87년 4월 부산으로 내려간 그는 사상공단을 근거지로 활동했고, 87년 대투쟁 이후에는 부산지역 국민운동본부 산하 부산노동자연합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당시 부산국민운동본부를 이끌던 이 가운데 한 사람이 노무현 변호사다.

    이후 ‘전국조선업종노동조합협의회(조선노협)’-민주금속연맹-금속산업연맹-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그의 활동 궤적은 87년 이후 우리 노동운동의 주된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특히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으로 있던 지난 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 동안 그는 노동계의 입장을 언론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지금도 기자들 중에는 그를 민주노총 교선실장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부동산 3부작 가운데 두번째, 나머지는 내년 이맘 때쯤"

    노동운동에서 ‘국회’라는 권역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지금 새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민들이 저마다 보금자리를 갖고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지난해 중순 ‘부동산 문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하는 장문의 글을 <프레시안>에 여섯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만 1년 동안 보좌관 활동을 하며 부동산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한 결과였다.

    오늘부터 그는 <레디앙>에 ‘통계로 본 부동산 빈부격차’라는 글을 장기 연재한다. 보좌관 활동 만 2년의 노고가 담긴 노작이다. 그리고 역작이다. 그는 내년 이맘 때 쯤에는 ‘부동산 문제 대안은 무엇인가’라는 글을 실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3년에 걸친 ‘부동산 3부작’인 셈이다. 그의 소망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게 기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저는 전북 정읍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9살 때 이불보따리 싸들고 서울로 올라 와 변두리 판자촌에 있는 6만원에 방 두개짜리 집에서 서울생활을 시작했죠. 70년대에 재개발이 시작되고 판자촌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고, 지하 셋방으로 내몰리며 살아온 것이 서민들의 인생입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것이 제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중요한 동기가 됐어요. 제게 운동의 문제는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이 글들은 아무래도 당원이나 활동하는 분들이 주로 보겠죠. 서민의 삶과 부동산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다수의 서민이 주택문제로 고통받고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뭔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함께 답을 찾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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