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대용 멘트'는 없다, 채찍 같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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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1일 1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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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다’라는 자동사 앞에서 나는 숙연해진다. 그것은 달린다 나 질주한다 와는 달리 오직 인간의 신체에만 부여된 속도의 동사이다. ‘걷는다’에 부여된 시간은 자연의 혹은 자연스러움의 시간이다.

    걷기와 자연의 속도

    걷다가 지치면 발걸음은 무겁고 느려지지만 신이나면 가볍고 경쾌해진다. 걷다가 만나는 우연한 풍경들(그 풍경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풀이고 나무이고 사람이고 건물이고 기계이고 동물이다)도 걷기의 다른 속도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걷는다는 것은 나의 신체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하나의 리듬으로 운동의 호흡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균질적으로 구획하는 기계의 속도와는 다르다.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오랫동안 내 안에 숨어 있던 기계의 속도, 문명의 속도를 털어내고 조금 더 빠르게 혹은 조금 더 천천히 자연의 속도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점점 개별적인 나의 속도에서 벗어나 집합적인 신체의 속도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행진 10일째.

       
     

    대추리에서 나와 매향리로 향한다. 옆에 있던 누군가가 농담처럼 던진 말. “대추리엔 정태춘, 매향리엔 안치환…그들 때문에 투쟁하는 마을이 된 건가, 아니면 마을의 정기가 그들을 민중가수로 키운 건가” 두 마을은 아무래도 닮아 있다.

    대추리엔 정태춘, 매향리엔 안치환 “두 마을은 닮아 있다”

    이곳에서 일어난 미군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서 미국 혹은 미군이 갖는 성격과 위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미국은 안하무인이었고, 한국정부는 비굴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매향리는 이겼고, 대추리는 지금 이기기 위해 싸우고 있다.

    매향리 주민대책위 사무실(이 장소는 곧 후세들에게 투쟁의 역사를 가르칠 생생한 교육적 공간으로 바뀔 것이다) 측벽에 결려있는 ‘경축, 54년 만에 미국국제사격훈련장폐쇄’라는 현수막을 보자 다시 대추리 들판에 가로질러 쳐진 철조망이 눈앞에 겹쳐졌다.

       
     

    매향리 주민들은 50년 넘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미군의 포성을 참아왔고, 20여년 넘게 마을에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싸워왔다. 그리고 이겼다. 미군사격장 폐쇄를 위한 주민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전만규님의 말을 빌자면, 미국과 싸워서 이긴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 단 두 곳뿐이다. 베트남과 매향리. 대추리 투쟁이 승리한다면, 그 장소는 곧 세 군데가 될 것이다.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책위 사무실에서 우리는 또 현장의 투사들과 만났다. 전만규님과 매향리 어촌계장님, 그리고 강성찬님을 비롯한 화성호 살리기 시민연대 회원들. 그들은 모두 백전노장이다.

    새만금과 비슷한 화성호 이야기

    “배우러 왔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날 같은 말들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접대용 멘트’라고는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직설적이고도 투명한 말의 채찍이 방안의 공기를 긴장시킨다.

    화성호 이야기는 새만금과 비슷하다. 멀쩡한 바다를 메워서 어민들의 생존권의 위협하고 갯벌에서 살던 생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간척사업에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화성호 살리기 운동은, 이미 간척이 진행되어 방조제가 설치되고 지역의 생활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구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운동의 성패가 이후로 진행될 새만금 운동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향리에서도 간척사업은 중요한 문제였다. 마을 사람들 절반 이상이 어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다. 방조제가 생기면서 당장 먹고 살 일이 막연해졌다. 그들의 유일한 생활근거인 바다가 막혀버렸으므로.

    막은 바다는 2012년에나 농지로 만들어서 나눠준단다. 알량하지만 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살다보니 이리저리 흩어졌다. 몇 대에 걸쳐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어부들이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유민이 되었다.

    “희망이 없어.”
    “법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공평해야하는 거잖어. 그런데, 그게 아니야. 우리가 싸우다보니까 알겠더라고. 법이라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불공평하고 가혹한지.”

    “희망이 없어. 그 따위 정치나 하고 지랄들이여”

    “바다를 못나가니 어째. 어디 가서 날품이나 팔든가 하는 거지. 정부가 어민들을 모두 거지로 만들어. 국민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 거지.”
    “아니, 정책을 만들라고 국회로도 보내고, 세금도 내고 하는 것인데 왜 정책은 안 내놓고 정치나 하고 지랄들이여”

    사격장 투쟁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매향리 사람들(어디 매향리 뿐이랴. ‘없이 사는’ 사람들은 모두)은 언제나 국가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법의 보호를 받는 ‘국민’은 ‘가진 자들’일 뿐이라는 걸 그들은 싸움의 과정 속에서 몸으로 깨달았다.

    ‘까짓 거, 해준 것도 없는 국가? 나 국민 안한다.’ 매향리 주민들은 사격장 투쟁 때 이미 한 번 주민등록증을 반납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를 “어민들은 본래 거지근성이 있어서…”라고 낮추며 ‘국민 안 하겠다’는 태도를 보일 때, 그것은 대단히 근본적이고 비타협적인 투쟁의 의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나, 이 나라 국민 안 한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들에게 ‘국민’은 부자연스러운 칭호였는지도 모른다. 부락을 이루고 대대로 고기를 잡든 농사를 짓든 자연스럽게 그저 살아갈 뿐인 사람들 앞에 국익, 개발, 사업, 보상 등의 말은 전혀 현실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았다.

    대체,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사업이란 말인가. 혹은 누구의 행복을 위한 일이란 말인가. 흔히, 국가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말하기 좋아하는 도표나 수치로는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지극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무덤을 뒤에 두고 물댄 논 위로 낡은 전신주가 달린다. 더 이상 포성이 들리지 않는 마을에서 또 하루를 시작하며 나는 안심한다. 짧고 경쾌한 새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매향리의 아침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매향리의 평화로움은 목가적인 풍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매향리의 평화는, 사격장을 폐쇄한 자리에 해양리조트를 만들려는 자본과 권력의 음모, ‘누군가’를 위한 사업을 ‘모두’를 위한 사업인 양 사기 치는 간척사업에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의 음모와 싸우지 않는 한, 싸워서 다시 그들의 권리를 돌려받지 않는 한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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