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 1백만채 남는데 국민절반 셋방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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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1일 11: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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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6월 <프레시안>에 ‘통계로 본 부동산 투기’를 연재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손낙구 심상정의원 보좌관이 그의 부동산 문제 연구 3부작 가운데 두번째인 ‘통계로 본 부동산 격차와 생활 격차’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부동산 거품논쟁이 한창인 요즘, 거품이 걷혀진다해도 내집을 마련하거나,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 땅의 수많은 서민들은 그 논쟁과 무관하다. 주택이 삶의 공간이라는 의미보다, 돈을 버는 유력한 투기/투자 수단으로 변질된 자본주의적 상황에서 ‘시장 논리’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이 보고서는 보여준다.

    공급을 늘려야 가격이 안정된다는 수급론자들의 논리가 사실은 투기 대상의 확대를 의미할 뿐 주택 가격 안정과 안정적 주거 공간 확보라는 정책목표와는 무관하다는 사실도 폭로된다. 투기성 자본과 건설 경기, 정부의 철학 없는 정책이 어우러진 ‘시장판’이 근본적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주택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내년이면 주택이 가구수 대비 1백만 채 이상 남아도는데도 주택가격은 오르고, 지금 집없는 사람들의 집 마련 기회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고발한다. 수급론자들의 논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집 안심율’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정부의 주택 정책의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 방향이 어디를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레디앙>은 앞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보고서 내용을 소개한다.

    필자는 내년에 세번째 보고서로 ‘주택 부동산 문제의 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주택보급률 100% 시대 … 5년 째 집이 남아돌고 있다

    정확히 2002년부터 5년째 집이 남아돌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가구별로 빠짐없이 내 집을 갖고 산다 해도 집이 남아돈다는 뜻이다.

    2001년까지는 보급률이 98.3%에 머물러 20만 채 이상이 부족했으나, 2002년에는 100.6%로 총주택수가 총가구수에 비해 7만2천 채가 더 많아 집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15만4천 채가, 2004년에는 27만4천 채가 각각 가구 수 보다 많았다.

    아직 2005년 통계는 공식 발표되지 않았으나 정부 추계로는 51만8천 채가 남았고, 올해에는 모든 사람이 다 내집을 장만한다 해도 77만 채가 남아돈다는 계산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주택종합계획>대로 매년 48~52만 채의 주택공급이 예정대로 이뤄진다면 내년에는 무려 100만 채가 남게 되고, 주택보급률이 116.7%에 이를 2012년에는 229만 채가 남아돌 예정이다.

    과거에는 집이 부족해서 문제였다면 지금 우리는 ‘집이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 추세까지 맞물려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짓고 짓고 또 짓고 … 40년 동안 1천3백만 채를 공급

    이렇게 ‘집이 넘치는 시대’가 된 것은 역대정부가 공급 중심의 주택정책을 앞세운 개발정책을 펴면서 인구와 가구가 증가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집은 얼마나 늘었을까.

    처음으로 주택센서스 조사가 실시된 1960년 현재 우리나라 총 주택수는 358만 호였는데, 2004년에는 1,298만 호로 40여년 만에 3.6배로 늘어났다. 1965년부터 통계를 내기 시작한 주택건설실적을 보면 2004년까지 40년 동안 새로 지은 집은 1,300만 채가 넘는다. 재건축 재개발 등으로 끊임없이 철거하는 가운데서도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집을 지었으며, 주택수 증가 속도는 가구수 증가 속도를 능가했다. 1970년부터 2004년까지 34년 동안 가구 수는 2.28배로 는 데 비해, 주택수는 2.98배로 늘었다.

    1988년부터 전세값 폭등과 집 없는 서민들의 잇단 자살로 조성된 정치사회적 위기를 모면하려 추진한 주택 200만호 공급정책 이후 주택은 대량으로 집중 공급됐다. 1965년부터 1987년까지는 한 해 평균 17만 채씩 398만 채를 공급하는 데 그쳐 주택보급률이 정체 하향추세였으나, 200만호 공급정책(1988~1992)이 시작된 뒤에는 2002년까지 한 해 평균 55만 채씩 15년 동안 총 826만 채를 새로 지었다.

    짓고 짓고 또 지은 끝에 1970년 78.2%로 처음 집계되기 시작한 주택보급률 통계는 32년 만인 2002년부터 100%를 넘어선 것이다.

       
     

    집만 지으면 무엇하나 내집은 없는데

    그러나 주택보급률 100%를 넘긴 지 5년이 지나도록 우리사회는 서민들의 절박한 집 걱정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돈 있는 사람이나 경제뉴스에서는 아파트나 부동산이 황금알을 낳는 재테크 수단일지 몰라도 대다수 서민에게는 별천지 얘기일 뿐, 집은 가족이 함께 잠자고 밥 먹고 오순도순 생활하는 삶의 보금자리이다. 이런 서민들이 집 걱정을 하지 않고 안심하고 먹고 살려면 사회가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해결해야 한다.

    첫째, 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몇 년 안에 내집을 장만해서 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내집을 장만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비싸지 않은 임대료를 내고 쫓겨나지 않으면서 안정되게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역대정부의 개발정책도 ‘중산층과 서민의 내집마련’ ‘무주택자의 주거마련’ 지원을 명분으로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집이 넘치기 시작한 지 5년이 된 지금까지도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주기적인 부동산 투기와 가격 폭등으로 내집마련의 길은 갈수록 멀어지고 전세 월세값이 크게 올라 셋방사는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게 한국 주택문제의 현실이다.

    먼저 주택보급률과 함께 주택문제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양적 기준인 내집을 갖고 자기집에 사는 비율(자가율)을 보면, 주택이 늘어날수록 거꾸로 자가율이 떨어지고 셋방살이가 늘어나는 길을 걸어왔다.

    자기집에 사는지 남의 집에서 셋방을 사는지에 대해 처음 통계를 냈던 1970년에는 전체 가구의 71.66%가 자기 집에서 살았고 셋방살이는 26%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뒤 자기집에서 사는 비율은 계속 떨어지기 시작해 1975년 64.08%를 거쳐 1980년대에는 50%대로, 다시 1990년에는 40%대로 곤두박질했으며, 가장 최근 통계인 2000년 현재 54.17%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전세와 월세를 포함해 남의 집에서 셋방을 사는 가구의 비율은 1970년 26.13%이었으나 1980년 39.35%를 거쳐 1990년 46.93%까지 올라갔으며 2000년 현재 43%의 가구가 셋방살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역대정권의 개발정책이 진행되는 과정은 가구수 보다 더 많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택보급률을 100% 위로 높이는 과정이었을지 몰라도, 집없는 서민들에게는 포크레인과 불도저를 앞세운 강제철거, 10년 주기로 되풀이돼온 부동산 투기와 세계최고의 부동산 가격에 따른 주거비 폭등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기집에서 사는 가구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고, 전세와 월세 등 셋방살이를 전전하는 가구의 비율은 더 늘어나는 기이한 모양이 돼 버린 것이다.

       
     

    ‘집은 남는 데 왜 국민 절반이 셋방살이를 해야 하는가?’ 주택문제는 이 소박한 의문점을 푸는 데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무주택 서민 위한 공공임대주택 겨우 2.5%

    집없는 서민 중에는 부동산 투기만 없었어도 내집을 장만할 수 있을 정도의 중산층이 포함돼 있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소득은 제자리걸음인 데다 일자리도 불안해 중산층조차 내집마련의 길이 멀고멀기만 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벌이가 시원찮아서 자신의 소득을 모아 집을 장만할 수 없는 빈곤층들이기 때문에 내집마련 지원정책과는 별도로 정부가 부동산 빈곤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 그래서 굳이 집을 사지 않아도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도 내집을 갖고 자기집에서 사는 비율이 모두 높지는 않다. 그러나 자기집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부가 마련한 값싼 임대주택에서 최소 30년 이상 ‘방 빼’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자기 집이나 다름없이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무주택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한다’던 역대정부는 40년간 1,300만 채, 15년간 8백만 채이라는 경이로운 주택공급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무주택 서민에게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은 아예 짓지 않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65년 이후 새로 지은 주택은 1,321만2천 채에 이르며 민간건설업체가 공급한 주택은 866만6천 채, 대한주택공사 등 정부차원에서 공급한 주택은 455만2천 채이다. 그런데 전체공급주택 중 공공임대주택은 2.5%에 불과한 33만 채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은 민간이니 그렇다 치고 정부가 지은 주택의 92.85%도 모두 분양주택 즉 판매용 주택이었으며, 무주택 서민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7.25%로 열 채에 한 채 꼴도 안 되는 것이다.

       
     

       
     

    물론 통계상으로는 ‘임대’자가 붙은 주택은 2004년말 현재 영구임대주택, 50년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33만 채를 포함해 전체 주택의 8.9%인 115만채가 된다. 이 중 대부분은 이름만 ‘임대’ 즉 입주 후 2년 6개월이 지나면 분양되는 무늬만 임대주택인 분양주택일 뿐, 10년 이상 안심하고 임대할 수 있는 실제 임대주택은 영구․50년․국민임대주택 33만채가 전부이다.

    그 결과 2004년 현재 보유한 주택 중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2.5%로 턱없이 적어 무주택 서민을 위해 의미 있는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집 안심율’ 높여 부동산 서민 집 걱정 덜어야

    주택사정과 주택정책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에서 모든 국민에게 내집을 갖게 하겠다는 자세로 정부가 직접 공공주택을 지어서 값싸게 대량공급해 자기집에 사는 비율이 92%에 달한다. 반면 서유럽 나라들은 자기집 비율이 높아봐야 60%대이고 심지어 40%인 나라도 여럿이다. 대신 서유럽은 대부분 전체 주택의 20% 이상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00년 한국의 자가점유율은 54%로 2002년 네덜란드 자가점유율 54%와 같다. 그러나 2000년 현재 한국은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전체의 2%에 불과해 자가와 공공임대에 거주하는 56%를 제외한 40% 이상이 집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공공임대 비중이 36%에 달해 자가를 포함 국민의 86%(2000년 기준 자가율은 50%였음)가 집 걱정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주택정책을 국민들 사정과 상식에 맞게 제대로 펼쳐온 나라에서는 집을 살 경제력이 있는 계층은 집을 사지만, 사정이 어려운 빈곤층 서민들이 굳이 내집을 갖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조건을 정부가 마련함으로써 자가+공공임대 비중을 높여 집 걱정을 덜어주고 있는 것이다.

    내집을 마련해 자기집에 사는 사람과 30년 이상 ‘방 빼’ 소리 듣지 않고 공공임대주택에서 사는 사람을 합쳐서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 진정한 주거선진국의 잣대라 하겠다. ‘자가+공공임대’의 비중은 ‘집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비율’ 즉 굳이 이름을 짓는다면 ‘집 안심율’ 통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가율이 54%로 낮은 수준인 데다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2%대로 터무니없이 적어 ‘집 안심율’이 매우 뒤처진다. 거꾸로 없는 사람들이 집 걱정이 태산이어서 비슷한 경제수준 국가와 비교해볼 때 ‘집 걱정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집은 많이 지었으되 서민들의 ‘집 안심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주택정책을 펼치지 못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집 걱정율’을 낮춰 서민의 집 걱정을 덜어줄 정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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