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아하고 귀찮아하는 주민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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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0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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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언론은 거대정당의 광역단체장 경쟁만 보도하고, 그래서 국민들은 우리 동네에 누가 나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레디앙>은 화려한 주목을 받지는 못하지만 이번 선거를 의미 있게 해줄, 또는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하는 후보 몇 명을 선정하여 그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동행 취재, 보도한다. <편집자 주>

선거운동 첫날인 5월 18일, 황기룡은 새벽 여섯 시에 눈을 떴다.
어떤 후보에게나 선거는 인생을 건 도전이겠지만, 황기룡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더욱 남다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가 해온 일이 바로 ‘지방자치운동’이기 때문이다.

10년 해온 지방자치 운동, 정치 현장에서 실천

   
 

그는 남들이 노동조합이나 중앙의 시민단체에 들어갈 때, ‘강동송파 시민단체협의회’, ‘위례시민연대’ 같은 지역의 풀뿌리 자치운동단체를 꿋꿋이 지켰다. 시대의 흐름이 지방자치로 향하고 있다는 나름의 판단이 있었고, 자신이 가장 잘 기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거기라고 생각했다.

평소 잘 입지 않던 양복을 차려 입고 ‘동네 한 바퀴’에 나선다. 그가 속한 천호 1,3동 선거구, 1km 남짓한 길거리를 앞으로 열사흘 동안 수 십 번은 되짚을 것이다. 그런데 반응이 별로다. “수고 많으십니다. 꼭 당선 되세요” 하는 체면치레 인사도 예전 선거보다 적은 것 같고, 명함조차 안 받으려 손사래 치는 유권자가 부쩍 눈에 띈다.

“먹고 살기들 힘드니까……” 경제적 곤궁이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안정치세력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만 충족되면 되지만, 민주노동당은 아직 어리고,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비판적 지지’하기로 작정한 듯 하다.

옆집 아저씨가 한나라, 민주노동당에‘만’ 써준 휘호

   
 

다세대주택 3층에 마련한 선거본부에 ‘必勝當選’이라는 붓글씨가 걸려 있어 물어보니, 1대 구의원을 지낸 옆집 아저씨가 써준 것이란다. 얄궂게도 옆집 아저씨는 황기룡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에게 같은 글씨를 선물했다. 아저씨가 보기에도 열린우리당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던 모양이다. 아저씨의 바람대로 황 후보는 열린우리당 후보를 제치고, 한나라당 민주당 후보와 경합하고 있다고 한다.

조직표도 챙겨야지. 출마 인사를 겸하여 노조 사무실을 방문한다. 지역구 안에 있는 전기안전공사, 동성운수, 조일운수, KT, ‘장애여성 공감’을 찾아 지지를 호소한다. 노조와 사회단체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편이다.

간부들이 나서, 조합원들에게 소개시켜 주거나, 후보더러 자신들의 단체 행사에 참석하라고 권한다. 문제는 이런 지지가 얼마나 굳건한가이다. 황기룡 후보 뿐 아니라, 다른 당의 후보들도 이미 노조를 방문하였다 하고, 몇몇 노조는 민주노동당과 다른 당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다.

뉴타운으로 재산 불리자는 열풍 속 유일한 반대 후보

오후 세 시쯤, 아파트 부녀회가 주최한 ‘뉴타운 추진위원회’ 설명회를 찾았다. 아파트 벤치에 모인 50여 명의 아주머니들은 자기네 동네가 뉴타운으로 지정되지 않은 데 비분강개해 한다. 다른 당의 후보들도 아주머니들의 ‘집회(?)’를 찾았지만, 주변을 겉돌기만 할 뿐 주민 사이로 틈입하지는 못한다. 설명하는 이는 뉴타운만 되면 금방 떼돈이나 버는 양 선동하고, “뉴타운으로 재산 불리자!”는 혁명적 구호에 열광하는 주민들에게 지방선거 따위는 하찮다 못해 귀찮을 따름이다.

황기룡은 뉴타운 지정 운동에 찬성하지 않는 유일한 후보다. “강남 따라가기가 강동구의 가장 큰 문제예요. 잘 가꾸어진 도시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야 마다할 일이 아니죠. 그런데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그 혜택을 누가 볼 것인가를 따져 보아야죠. 부자들이 세금 내서 공공재정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서민들 세금이지. 그런데 그 돈으로 땅 가진 부자들 주머니를 더 불려 주고, 그나마 강동구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 내쫓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는 비까번쩍한 새 건물 짓는 일이 아니라, “강동구에서는 장애인이 살기 좋다더라” 같이 서민 복지가 앞선 강동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도시형 보건지소 설립, 다가구 임대주택 보급, 구립 산후조리원 설립, 노약자 장애인 콜택시 운용’ 같은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휴가 낸 당원들이 선거운동 지원하는 정당

사회복지단체에서 활동하는 부인 역시 그와 같은 활동을 해왔다. 부인과 부모가 그의 활동을 찬성하고 지지해준다는 점만 보자면 그는 1만 명 넘는 후보 중 1% 안에 들 것이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달려온 당원이 선거운동을 같이 해주는 당 역시 민주노동당 뿐이라는 점도 황기룡 후보의 장점이다. 오늘 하루 휴가를 낸 김명섭 당원은 선거 말미에는 일주일짜리 휴가를 낼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 선거운동만 챙기면 되는 보수정당의 후보들과는 달리 그는 당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서울시당에서 내려온 16개의 시장 후보 현수막을 달 장소를 정하기 위해 강동구 전체를 현지 답사해야 하고, 현수막을 걸어줄 대행 회사에 줄 돈도 마련해야 한다. 어찌된 노릇인지 중앙당 정책연구원인 그에게는 이번 달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중앙당으로 출근해야겠는데요.”

‘동네 한 바퀴’를 마치고 해질녘에 선본 사무실을 들르니 비보가 기다리고 있다. ‘거창 민주노동당 후보 돈 살포’라니! 욕지거리와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어떻게 만든 당인데 …… 하필이면 이 때 …… 언제가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어 ……” 선거에 대한 이해득실을 떠나 민주노동당의 발본색원적 대처가 필요한 일일테지만, 그것은 강동구 기초의원 후보인 황기룡만의 몫은 아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선거운동 계획을 수정할 잠깐의 구술 회의를 갖는다. 우선은 오늘 저녁과 내일 주민을 만날 계획을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유권자에게 신뢰 못주는 후보들

그와 경합하는 다섯 명의 후보 면면을 살펴보니, 다양한 경력에 모든 정당 후보들이 망라돼 있다. 지방의원 유급제가 시행되는 바람에 입후보자들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보도가 잇따랐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단편적인 정보 몇 가지로 사람의 진면모를 평가하기는 것이 섣부른 짓이겠지만, 자신의 살림살이를 맡겨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믿을만한 후보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몇몇 후보에게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려야 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방자치에 대한 공부와 경험을 따지자면 황기룡은 단연 발군이다. 강동구에 대한 이해와 주민을 대하는 태도에서 황기룡은 독보적이다. 그가 만든 정책으로 활동해온 40여 명의 민주노동당 지방의원들이 주민소환제, 참여예산제, 학교급식, 아토피 예방 같은 정책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밥 값하는 4번 타자”라 찍힌 명함을 돌릴 자격을 가진 이는 역시 황기룡 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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