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추리 평화 파괴한 '외부세력'은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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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20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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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식회사 대한민국’

    오늘은 부안의 새만금을 떠나 ‘걸으면서 질문하기’ 시작한 지 9일째가 되는 5월 18일이다. 광주민중항쟁 16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충남 아산을 출발해 평택 대추리에 도착했다.

    아산시청에 집결한 30명가량의 대원들은 “생명 권리 쟁취 투쟁”이라는 구호와 함께 대추리를 향했다. 선거철이다 보니 거리에서는 유세차량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출마자들의 캐치프레이즈는 천편일률이었다.

       
     

    “주식회사 아산!” 아산이라는 지역은 이제 하나의 기업이 된다. 물질적 풍요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지역 주민들의 뜻을 정확히 대변한 캐치프레이즈일까? 아닐 것이다. 인간들의 욕망이 어찌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삭막할 수 있으랴. 한 주민은 이런 말을 했다. “아산과 천안이 통합돼 광역시가 될 것”이라고. “광역시가 된다고 과연 행복할까요?” 하는 나의 질문에 그분은 “그래도 도시가 커져야 먹고 살 게 많아지지 않겠냐”고 한다.

    선거는 시민의 뜻을 민주적으로 대변하는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기제가 아니라 주민들의 다양한 욕망을 오로지 경제적 풍요로만 환원하고 고정하는 저열한 폭력의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더 강해지는 대한민국, 더 부자가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환상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 환상 아래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용불안, 저임금, 양극화 등에 대한 인식은 없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세계 일류기업 안에는 노동착취와 1,000만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 인간적 권리를 박탈당한 이주노동자, 저임금으로 허덕이는 여성노동자들이 없는가보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라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무능력하고 불필요한 인간으로 규정하며 당장 하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한민국이 주식회사가 될 때 소수자들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돼버린다. 인간에 대한 야만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2. “소수자에 대한 학살을 당장 중단하라”

    평택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지 이제 알겠다. 쉴 때마다 약상자를 찾는 대원들이 늘어갔다. 평택 입구에 들어설 때 가장 눈에 선명했던 것은 “미군철수 주장하는 빨갱이들 물러가라”는 현수막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던 광경이었다.

    치열한 이념대결의 현장에 들어설 때 우리들은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것이 지역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라는 추상적인 부(富)를 갉아먹는 것일 때 사람들은 무턱대고 ‘빨갱이’라는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그 ‘국가적 이익’이 자신한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없으리라는, 국가경제의 성장이 소수 대자본과 그 직원들에게만 엄청난 풍요를 선사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우리는 평택역에 도착해서 침묵시위를 준비했다. 마스크를 쓰고 대추리에 대한 폭력적 진압을 보여주는 사진을 들고 평택시청으로 향했다. “소수자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는 대형현수막을 들고서. 시민의 삶을 보호해야 할 시청이 시민들에 대한 군·경의 참혹한 진압을 묵인한 사태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는 차원에서 시청으로 향한 것이다.

    시청 앞에서 약 3분간의 침묵과 묵념의 시위를 벌인 우리들은 시청을 돌아 다시 평택역으로 향했다. 우리는 침묵했다. 그렇지만 그 침묵 속에는 평택시청에 대한, 나아가 국가에 대한 엄청난 분노와 항의가 담겨 있었다. 침묵이 가장 큰 울림임을 우리는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대추리에 대한 진압은 ‘학살’이었다. 5․18의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농민들에 대한 군사작전, 체포, 폭력은 엄연한 ‘학살’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농민들은 이제 ‘소수자’다. 내 땅에 농사짓고 살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조차 군대와 경찰에 의해 짓밟힐 때 그 농민들이 어찌 소수자가 아니랴. 우리는 대추리 농민에게서 소수자의 현재와 미래를 직시했고 예감했고 분노했다. 그러므로 “소수자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

    3. “김치 맛이 똑같은 동네”

    대추리로 들어간 우리들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무려 625일째 계속되는 집회였다. 2년 가까이 어떤 일이 지속되고 있을 때 우리들은 거기에 담긴 열망의 강도와 진정성을 느껴야 한다.

    외부세력의 사주라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촛불집회가 계속될 수 있겠는가. 한 80여 명 정도 되는 인원 중에 대다수는 늙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이분들의 삶의 감각이 어디 남에게 속아서 집회를 할 성격의 것이란 말인가.

    집회가 끝난 뒤 우리는 대추리에 농토를 가진 37세의 신대리 주민에게서 대추리의 상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대추리 주민이 아니다. 그러나 땅은 대추리에도 있다. 일종의 ‘외부세력(?)’이다. 정말 농지를 ‘부동산’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분이야말로 정부에 땅을 매각하고 떠날 수 있는 조건에 있었다.

    그러나 농부들에게 땅은 ‘목숨’이라고 한다. 그래서 떠날 수 없단다. 대추리는 김장 맛이 똑같다고 한다. 같은 회사에서 사서 먹어서 그러나? 아니! 김장을 할 때 서로 도와서 하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운 공동체다. 누가 그 고상한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대추리 농민들은 협력적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마을에 초상이 나도 찾아가지 않는 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 간에, 형제지간에 지울 수 없는 적대의 균열이 생겼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파괴했는가?

       
     

    군대와 경찰, 언론과 정부, 그리고 이 국가야말로 최대의 폭력세력이고 ‘외부세력’이 아닌가. 국가는 평화롭고 협력적이고 민주적인 아름다운 공동체 대추리를 파괴한 외부세력이다.

    280만평의 땅 중에서 국가의 집행을 거부하고 아직 동네에 남아 있는 땅이 70만평 정도 된다고 한다. 37세의 신대리 주민은 지금부터 어떻게 싸워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다. 불안하다고 한다.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군 비행장을 짓기 위해, 해방 후에는 캠프 험프리라는 미군 기지를 짓기 위해, 2003년부터는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자신의 힘으로 직접 간척한 농토를 내주어야 하는 대추리 주민들. 모두 국가의 전쟁 때문에 힘없는 농민들은 계속 땅을 빼앗기고 있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농민들은 소수자다.

    대추리 농민과 함께 하는 싸움이야말로 평화를 위한 싸움이며, 억압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싸움이며,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면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폭력적인 야만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의견이든 군사독재자든 독재는 마찬가지다. 소수 의견의 존중과 다수 의견의 집행은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소수는 늘 말살당하고 학살당한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서로 아름답게 합창을 이룰 수 있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다.

    파괴되어 잿더미가 된 대추분교에는 높다란 깃대 위에 하나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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