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생태계, 바뀌고 있다”
    에너지산업의 발자취 그리고 미래는?
    [책소개]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 어디로 가는가?』(신동한(지은이)/ 생각비행)
        2018년 11월 03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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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발자취”

    《왜 에너지가 문제일까?》로 미래 세대를 위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저자가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21세기 에너지 산업을 전망하는 책을 내놓았다.

    우리나라가 장작과 숯, 식물성 기름이라는 오래된 바이오 연료 시대를 지나 석탄과 석유, 전기라는 근대 에너지를 접한 것은 19세기 말 고종 때였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 몸을 의탁한 고종은 1896년 4월 러시아인 니시첸스키에게 함경도 경성과 경원 지방의 석탄 채굴권을 넘겼다. 석유는 이즈음 남포등과 함께 러시아와 미국에서 들어왔다. 조선에 진출한 석유회사는 미국 시장을 장악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었다. 전깃불은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에 도입되었다. 고종은 에디슨전기회사에 발주하여 경복궁 내 향원정 연못가에 석탄화력 발전기를 설치(당시로는 동양 최대였다)하고 1887년 3월 6일 건청궁에 16촉광의 백열등을 밝혔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에너지 산업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고 21세기 변화하는 에너지 생태계의 미래를 전망한다.

    “에너지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석탄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처음 나온다. 영조 때까지만 해도 석탄은 산지 주민들이 간혹 흙에 개어 연료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1880년대에 이르러 채굴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생겨났고, 1885년에 평양감사가 양단탄전 개발권을 빌려주고 임차료를 받아 국고 수입으로 삼았다. 석탄 산업은 이렇게 태동했다.

    석탄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개항기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다. 1905년 을사늑약을 발판으로 조선을 지배하기 시작한 일제는 1907년 평양 무연탄을 개발하여 해군함의 연료로 사용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사실상 조선의 산업을 장악했다. 거칠 것이 없어진 일제는 광업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11년부터 1925년까지 443개의 탄광이 허가되었는데, 그중 조선인이 취득한 건 10퍼센트도 되지 않는 41건에 불과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제는 국내 탄광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생산량을 늘렸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군수품의 필요가 급증하자 조선총독부는 배급 통제 규칙을 제정하고 여기에 석탄을 포함시켰다. 일제의 수탈은 1945년 8월 패전으로 막을 내렸으나 무주공산이 된 광산의 생산은 사실상 중단되고 말았다. 일제에 이어 조선을 접수한 미군정은 일본인이 소유했던 재산을 미 군정청으로 귀속시켰다. 1946년 3월 석탄생산위원회가 설치되었고, 5월에는 광무국에서 직영하는 조선석탄배급회사가 설립되어 석탄 수송과 배급을 담당하게 되었다.

    분단이 고착화하면서 남한은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가 실시되자 북한은 5월 14일 송전을 중단했다. 1948년 8월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는 에너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막대한 탄광 복구비를 투입하여 석탄 증산에 박차를 가했다. 정부는 1950년 11월 대한석탄공사를 출범시키고 석탄공사의 모든 재산을 국유재산으로 지정하고 광업권을 공사가 아닌 ‘국(國)’으로 등록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국가 재정을 증강하고 경영 합리화를 도모한다는 이유로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결정했다. 석탄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는 1966년 11월 주유종탄(主油從炭)으로 에너지 정책을 바꿨다. 무연탄 위주의 난방 연료를 유류(벙커C유)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연료 정책의 변화로 석탄 수요가 감소했다.

    석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나라에서 1973년 10월 발생한 1차 석유 파동, 1978년 말에 발생한 2차 석유 파동은 천연가스 도입의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인식시켰다.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은 민심에도 큰 영향을 끼쳐 경기 침체와 맞물린 정치 위기가 10.26 사태로 귀결되었다. 대한석유공사의 50퍼센트 지분을 갖고 운영권을 행사하던 걸프사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신군부 체제가 들어서자 1980년 8월 지분을 정부에 양도하고 철수하겠다고 선언했다. 1980년 8월 21일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대한석유공사의 민영화를 독단적으로 단행하여 이후 석유 산업을 민간기업이 주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석유 수입과 정유, 그리고 유통 및 판매는 모두 민간 시장에 맡겨진 상태다. 에너지 체제의 전환을 통해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에 세우고 화석연료 의존 체제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인 공급이 에너지 안보의 핵심 과제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정부는 공공 부문 민영화를 정책 과제로 내세웠으며 에너지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기조를 박근혜 정부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성급한 자원외교로 아직까지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은 실로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촛불시민의 힘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권과 달리 환경권 강화와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의 요구를 받고 있다.

    “21세기 에너지 산업, 어디로 가는가?”

    대한민국은 에너지의 95퍼센트를 수입하고 있다. 그러므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여 에너지 체제를 전환하는 것은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취약한 에너지 안보를 강화할 뿐 아니라 화석연료 연소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미세먼지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전기나 열에너지로 변환하고 소비하는 과정은 국내에서 이뤄지므로 수입 에너지원보다 국내 경제와 고용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에너지원 가격에 비해 신재생에너지는 발전 비용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지원이 무척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FIT 제도(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게 고정된 가격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보장하는 제도)를 2003년 도입하여 실시하다 2012년부터 RPS 제도(지정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자가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혹은 일정량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 할당하는 제도)로 바꾸었다. 하지만 RPS 제도란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발전한 전기를 모두 사주는 것이 아니고 생산자 스스로 수지를 맞춰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증가로 한전의 전력 구매 가격이 크게 떨어진 데다 REC(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 가격마저 불안정하게 등락하니 소규모 태양광발전을 하는 개인이나 협동조합이 수지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현재 20대 국회에는 손금주, 고용진, 우원식 등 71명의 의원이 발의한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100킬로와트 이하 소규모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사업자들을 FIT 제도로 지원하자는 내용이다. 19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정부의 반대로 깊이 있는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폐기된 바 있다.

    바이오 연료와 달리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는 산업혁명을 이끈 에너지원이다. 화석연료 삼형제의 채굴과 수송, 공급에는 막대한 자금과 장비, 인력이 필요하다. 2017년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10위 기업 중 5개 기업이 석유가스회사인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현대 산업사회는 에너지의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구조적 특징에 갇혀 있다. 하지만 에너지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기업이 아닌 지역 주민이 생산 주체가 되는 에너지 전환의 길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가능에너지와 정보통신 산업의 융합으로 진행되는 3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모든 전기 소비 건물이 발전소가 되는 것이다. 전력을 소비하고 있는 수많은 주택과 건물, 공장이 태양광발전소가 되고, 더 필요한 산업용 전기를 위해 유휴지나 임야 등에 해상풍력발전단지나 대규모 태양광발전단지 등이 추진되어야 한다.

    2016년 9월 12일 경주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온 국민이 불안한 밤을 보내야 했다. 한반도 남동부는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7개월 앞당겨진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주요당 후보들은 모두 노후 원전 가동 중단과 신규 원전 건설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를 목표로 탈원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자 새 정부는 ‘탈원전 에너지 전환’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화석연료와 핵에너지에 중독된 나라는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독일 에너지 전환 정책의 기틀이 된 2000년 재생가능에너지법 제정은 1997년 구성된 적록연정(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으로 가능했다. 덴마크 역시 현재 생태사회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는 적록연맹 의원이 179석 중 14석을 차지하며 좌파 연정 시 정부 구성에 참여한다. 녹색당과 진보정당 같이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 등에 관심이 많은 정치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기 어려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국회는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중시하는 자유한국당이 제2당이며 이에 동조하는 바른미래당 다수까지 합하면 과반을 차지한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이 국회에서 논의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선거개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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