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에 적힌 우리구호는 점점 구체화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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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9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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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물으면서 여러 날이 흘렀다. 대장정을 시작할 때, 우리는 비극성을 보고 무거워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대신 만물 속에서 지혜를 보고자 했다. 사실, 난 조금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무거워도 비극성은 타자와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비극성조차 얼마만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부안으로 향하던 첫날 차창 밖의 변산반도에서 바다냄새를 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둑 안에 갇힌 새만금 갯벌의 뭇 생명들이 썩는 냄새였다. 이렇듯 나는 삶의 냄새와 죽음의 냄새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짓눌리지 말고, 아름답고 강한 질문을 던지자.

시골형 구호에서 도시형 구호로 바꾸다

5월 17일, 예산군 귀곡초등학교를 빠져나가 아산시청으로 향한다. 금강을 건너자 말을 거는 사람이 늘었다. 동료들은 인심이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는 우리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라고 맞받아쳤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좋겠다.

   
 

경직된 지식인의 얼굴을 지우고 싶다. 대중에 ‘대해서’ 말하는 지식인이 아니라, 스스로 ‘대중인’ 지식인이 되는 징후라 믿고 싶다. 그만큼 우리의 말도 가벼워졌으면. 대로변의 민들레 홀씨처럼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는 강렬한 말이 되었으면.

아산시에 진입해서야 우리가 행진을 시작하며 들르는 첫 도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복 입은 학생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인파에 당황했다. 서둘러 시골형 구호를 도시형 구호로 변경했다. “맹장 수술 천만원, 의료개방 반대한다.”, “비정규직 양산하는 FTA 반대한다.”

교육, 의료, 노동과 같은 이슈들을 중점적으로 제기하며, 시청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러나 금강을 건너며 만났던 농촌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응은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졸지에 시시한 퍼포먼스를 하는 그룹이 되었다.

전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미군기지, 평택

농촌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다. 그러나 FTA의 재앙을 정면으로 감당할 사람은 이곳 도시의 서민들이다. 조야하기 짝이 없는 인공분수대에서조차 아이들은 물을 끼얹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도시의 냉소를 돌파할 수 있는 말이란 어떤 모습일까. 소통할 의지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겐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서교리에 있는 민주노총 노동자 문화센터에서 평화네크워크(peacekorea.org) 정욱식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는 평화라는 단어를 통해서 소박하고 정적인 느낌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운동진영의 평화에 대한 요구가 정서적이고 감성적이라는 것, 몇 가지 구호가 똑같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평화는 통일, 외교, 안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이다. 평화네트워크와 정욱식 선생님은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정책적 문제들을 민간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평택 문제는 평택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용산 기지 이전사업이란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이지 한국의 요구가 아니다. 대북억제에 기반한 붙박이형 군대가 신속기동형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주한미군은 한반도가 아닌 전 세계를 향하고 있다.

평택에 2사단이 재배치되면, 주한미군은 평택항과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96시간 이내에 투입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이미 광주, 군산, 평택, 수원에 PAC-3를 탑재한 MD벨트를 구축 중에 있다. 제주도에는 이지스함이 들어설 설비가 건설 중이다.

경제는 먹고사는 문제지만 평화는 죽고사는 문제

물론, 전쟁의 가능성이 몇 %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는 없다. 그러나 0.1%라 쳐도 그것이 온 국민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따라서 평택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다. 정욱식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지만 평화는 죽고 사는 문제다.”

정부는 용산 기지 이전이 한국의 자주국방을 위한 길이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정욱식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자주국방 제안은 오히려 미국이 더 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이 북한을 알아서 상대해줘야 미군은 세계를 상대로 딴 일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의 권한 상당부분이 한국군에게 이전되었고 이를 노무현 정부는 얼마나 선전했던가. 하지만 그 자주국방이라는 것이 미국에게 북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자주국방일까.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수도 주둔시킬 수도 없는 이 딜레마야 말로 우리가 풀기 힘든 고차방정식이다.

결국 이 말은 평택을 미군에게 넘겨주는 것이 곧 세계의 질서를 또 한 번의 냉전체제로 되돌리는 악몽의 시작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평택주민들의 싸움은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모든 이들을 대표한 싸움이 아닌가.

우리는 피켓에 적혀있는 몇 가지 감성적인 구호를 보다 구체적으로 수정했다. “미군기지이전을 재협상하라!” “대추리를 평화마을로.” 이제 아산을 떠나 바로 그 평택 대추리로 향한다. 그동안 인터넷은커녕,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숙소를 전전하면서 평택 소식을 거의 접하지 못하였다.

접산리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크게 호통 쳤다. “왜 걸어 다니면서 이곳까지 왔어? 당장 차타고 대추리로 가야지!” 5월 14일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대추리에 못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시가 수놓아져 있던 담벼락은 아직도 있을까? 평화예술공원의 파랑새 소녀는 무사할까? 5월 18일, 우리는 대추리로 간다. “학살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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