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사민당 썩는데 1백년, 민노당은 왜 이리 빠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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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9일 09: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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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선거 운동이 공식으로 시작되자마자 민주노동당 안에서 지뢰가 터졌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무능, 부패가 지긋지긋해서 그나마 민주노동당에 희망을 품어보려던 끈질긴 유권자들은 물론, 그래도 국민으로서 투표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정치 염증 사이에서 갈등하던 수많은 이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만들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을 기권하게 만들 사건

    이번 선거는 본질상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다. 한나라당이 초반부터 전 원내대표 김덕룡의 뇌물사건, 최연희 당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 등 수뇌급 간부가 연루된 초대형 악재를 안고도 지지율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조건 열린우리당을 끌어내리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의 주표적은 열린우리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에서는 아직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민주노동당과 큰 틀 안에서 같은 개혁진보세력이므로 반한나라당 전선을 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어디까지나 집권당에 대한 야당의 심판일 수밖에 없다. 반한나라당 전선론은 미몽이고 환각이다.

    그러나 5월 17일부터 저질러지고 5월 18일 새벽 경찰에 붙잡힌 민주노동당원들의 돈봉투 사건은 민주노동당원의 주전선이 반한나라당도 아니고 반열린우리당도 아닌 바로 민주노동당 내부여야 함을 보여준다.

    민주노동당의 주 전선은 민주노동당 내부

    보도를 보면 경남 거창군의 민주노동당 김상택 위원장은 밤 9시경에 다른 당원 2명에게 500만원을 건넸고, 이들은 이어 자정 무렵까지 이 돈을 돌리고, 또 다음날 새벽에도 돌리다가 붙잡혔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깜깜한 밤중에 마을 골목을 밤도둑처럼 누볐을, 아니 봄 농사 준비에 바쁜 농군들이 해도 채 뜨기 전에 집을 나서는 것을 동구 밖에서 맞이하려 대기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힌 당원들의 몰골을 생각하면, 내가 먼저 부끄러워진다.

    그 몰골들을 생각하면 내가 먼저 부끄러워진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거창군 지역위원회는 작년에야 새로 생겼고, 38살 젊은 나이의 김상택 위원장은 2대 위원장이다. 그는 거창군농민회 회장으로, 거창군 민중연대 대표로, 곳곳의 투쟁현장을 누볐다.

    작년 11월 23일 경남 농민들이 남해고속도로 점거투쟁을 벌일 때 다른 농민이 분신하는 현장도 목격하고 증언한 이다. 이런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일까?

    아아, 그것은 그를 길러낸 전농, 그가 몸담은 민주노동당이 현재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닌 때문이다. 곧게 솟은 은행나무에 굽은 가지가 나온 것을 봤는가? 늘 손에 잡히는 것만 있으면 둥글게 휘감고 도는 한삼덩굴이 언제 멀리 곧은 줄기를 뻗어내던가?

    전농과 민주노동당 현재의 반영…당내 돈 문제 엄정처리 해왔나

    민주노동당은 당내에서 고의적인 당비대납 사건에 대해 진정 엄정하게 처리했던가? 그런 것을 주도한 자들이 지금 혹시 각급 당 조직의 간부, 이번 선거의 후보로 나서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원들의 당비나 후원회비는 과연 공당답게 제대로 쓰고 있는가? 왜 지난해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보다 더 큰 벌을 중앙선관위로부터 받아야했던가? 혹시 이러저러한 개인 용도나 정파의 주머니로 유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든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이미 당내에서 키워지고 훈련되고, 또 그 효용성을 체험으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첫 공직선거에 나서는 신생 정당의 간부가, 그것도 선거운동 첫날부터 수백만 원을 마련해 돌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수십 년 부패로 찌든 어용노조 출신의 모리배 정치인도 생각하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학습되고 또 학습되고 다시금 확신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학습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몸담았던 민주노동당에서였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민주노동당도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인가

    옛날부터 노동운동, 농민운동은 민중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천하고 단련하는 학교였다. 이렇게 민주주의로 단련되기에 민중운동 출신은 자연스레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의 학교라 하기에 너무도 부족하다. 당이 당답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은 매를 맞아야 한다. 깨끗한 진보정당이라고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 죄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를 욕하는 용감한 사회주의 혁명가, 통일혁명가들도 민주노동당 안에는 적지 않을 줄 안다. 하지만 그 우스운 기회주의자들이 모인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속으로는 보수정당과 같이 되도록 썩는데 100년이 걸렸는데, 이 땅의 신생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은 벌써 이렇게 썩었다면, 책임질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 혁명가가 아닌가?

    당신들에게 기대한다. 당신들이 민주노동당부터 진정 혁명해 보라. 제 팔다리를 잘라내고 제 오장육부를 들어내고 제 피와 뇌수까지 다 바꿔 보여라. 당신들의 혁명이 근거 없는 오만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들이 진정 혁명가라는 것부터 증명해 보이라.

    아니면, 민주노동당은 그냥 제3의 보수정당일 뿐이다. 그것도 제일 빠른 속도로 썩어버린. 어쩌면 선거운동은 이미 끝났다. 어쩌면 다음부터는 선거 자체가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흐물흐물한 민주노동당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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