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행복을 선택하기를
    [그림책]『아무것도 아닌 단추』(캐리스 메리클 하퍼. 모 윌렘스/북극곰)
        2018년 10월 30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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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 잘 하려는 병에 걸린 나라

    저는 그림책을 주제로 강연을 다닙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그림책과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그림책 사이에는 적어도 3차선 도로가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1차선에는 입시교육이라는 차들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2차선에는 권위주의라는 차들이, 3차선에는 자본주의라는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3차선 도로에는 사람을 위한 횡단보도가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림책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림책의 행복을 전하려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그림책을 읽어야 우리 아이가 똑똑해질까요? 그림책을 어떻게 읽어 주어야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 하게 될까요? 그림책에 글이 없으면 어떻게 글을 배울 수 있나요?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언제까지 봐야하나요?

    이분들에게 그림책은 입시교육을 위한 예비교육 또는 교양 같은 것입니다. 물론 이분들이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어떤 그림책을 읽어야 우리 아이가 행복해지나요?’라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은 공부만 잘 하면 아이가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불행한 이유가 공부를 잘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단추

    빨강이와 파랑이가 놀고 있는데 노랑이가 나타납니다! 노랑이는 손에 뭔가를 가져와서 보여줍니다. 빨간 단추입니다. 고맙게도 빨강이와 파랑이는 일단 놀라워합니다. 그리고 그 단추는 뭐하는 단추냐고 묻습니다.

    노랑이는 이 단추가 아무것도 안 하는 단추라고 합니다. 실제로 단추를 아무리 눌러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단추는 아무것도 아닌 단추가 맞습니다.

    그런데 파랑이도 단추를 눌러보고 싶습니다. 파랑이는 단추를 꾹 누르더니 정말 누르기 쉬운 단추라며 깜짝 놀랍니다. 빨강이는 단추가 파랑이를 놀라게 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제 단추는 놀라운 단추가 되었습니다.

    빨강이도 단추를 눌러보고 싶습니다. 빨강이가 단추를 꾹 누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놀랍지도 않습니다. 노랑이는 그러니까 이 단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파랑이가 빨강이에게 묻습니다. 놀랍지 않아서 슬프냐고. 빨강이가 그렇다고 하자 파랑이는 슬픈 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고 합니다. 이제 단추는 슬픈 단추가 되었습니다.

    빨강이와 파랑이의 대화를 듣고 노랑이는 화가 납니다. 어떻게 단추가 슬프게 만들 수 있냐고, 이 단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화를 냅니다. 이제 단추는 화나게 만드는 단추가 되었습니다.

    그냥 아주 웃기는 그림책

    사실 그림책 『아무것도 아닌 단추』는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 윌렘스의 책이 주로 그랬던 것처럼, 모 윌렘스가 기획하고 캐리스 메리클 하퍼가 만든 이 책 역시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화가 만담 또는 개그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모 윌렘스는 대화로만 된 만화 그림책을 만드는 걸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 윌렘스의 그림책은 개그 만화 그림책입니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그림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 개그 만화 그림책을 그는 왜 고집스럽게 만들고 있을까요?

    한국 독자들이 보기에 모 윌렘스는 그저 우스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모 윌렘스는 서양 어린이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모 윌렘스가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식은 바로 유머입니다. 모 윌렘스는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책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모 윌렘스의 그림책에서 책의 즐거움과 인생의 행복을 맛 본 어린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고 스스로 성장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단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단추가 누군가에게는 뭐든지 할 수 있는 단추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것을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 것은, 빨강이와 파랑이와 노랑이의 우정과 상상력과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친구와 상상력과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우리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명예를 얻기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한국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어른들 모두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성적이나 돈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대신 행복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림책으로 교육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함께 즐겁게 보고 행복해지면 됩니다. 좋아하는 책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잘 하게 됩니다. 누구나 장인이 되고 누구나 대가가 됩니다. 부디 세상 사람들 모두 행복을 선택하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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