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환시대의 논리
    평화는 어떻게 밥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10월 30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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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지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이다. 자유한국당이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비준한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분야 합의서’의 효력정지가처분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가처분 신청 제목부터 틀렸다. 남북합의서의 비준은 대통령이, 심의는 국무회의가,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나 입법사항에 관한 것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남북합의서는 헌법에 나와 있는 국가 간에 맺어지는 조약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내가 펜을 든 것은 이러한 법률 상식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위함은 아니다.

    당 공식기구의 이름마저 비상대책위원회인 위기의 자유한국당은 그 출로를 여전히 퀘퀘묵은 냉전논리에서 찾고 있다.

    종전, 평화, 통일… 이런 얘기들만 나오면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일갈 했던 박근혜 전대통령의 교지도 무시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정쟁을 일삼는다. 무엇이라도 꼬투리를 잡아 대립각을 세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잘못 짚었다.

    자유한국당의 위기는 단지 자당 출신의 두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냈다는 것도, 지난 총선에서 패배했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본질은 자신을 떠 받쳐 주었던 신화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종미 반북(從美反北)은 70년 넘게 이들을 지탱해 주었던 금과옥조의 이데올로기요 신화였다.이들은 반공, 반북, 안보 논리를 앞세워 국민들을 겁박하고 독재정권을 유지해 왔다. 태극기 집회에는 항상 성조기가 함께 나부꼈고, 성조기는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종미를 하자니 반북이 울고, 반북을 하자니 종미가 우는 시대가 오고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북미회담을 앞두고 ‘미국 입장에서 회담의 성공이 우리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겠다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자유한국당의 솔직한 자기고백이었고, 자칭 보수세력들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속하게도 믿어마지 않았던 미국은 이들의 바람을 뒤로 하고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민족의 철천지 원수 미 제국주의와 세계 악의 축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기의 담판에 들어간 것이다.

    벼랑 끝 전술, 살라미 전술 등으로 유명한,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북한이 몰라보게 유연해졌다. 별다른 급부도 없이 선제적으로 동창리 핵 실험장을 파괴하면서 비핵화의 의지를 세계에 알리더니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시켰다.

    이 모든 일은 북한이 핵무기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실험까지 마친 이른바 핵무력의 완성을 공표한 이후에 급격하게 일어난 일들이다.

    핵무기 전략 용어 중에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istruction-MAD)라는 말이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어느 한 쪽이 선제 핵공격을 받아도 자신의 핵전력을 보존시켜 상대방에게 보복 핵공격을 할 수 있다며,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이 쌍방 모두가 파괴되는, 상호 파괴의 확증 상황이 되므로 이들 두 나라 간에는 핵전쟁이 발생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말하자면 싸워 봤자 너 죽고 나 죽을 일 밖에 없다 것이고,

    그래서 피차 가지고 있는 무기는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남은 것은 서로 싸움이 날 빌미를 만들지 않도록 타협할 수밖에는 없다. 북미 간에 있어 이 타협은 북미 수교로 그 끝을 보게 된다. 현실의 외교에 있어 날선 공방과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길게 보면 결론은 그렇게 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야흐로 한 시대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럴진대, 워싱턴에 가서 태극기 부대를 앞세워 북한과 대화하는 미국을 규탄하는 반미 집회를 할 자신이 없다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자칭 보수세력들은 이참에 은근 슬쩍 숟가락이라도 올려 놓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신념화된 신화가 아무리 공고하다고 하여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로 남 얘기를 하다보면 그것이 자신을 반추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환시대, 과연 평화는 어떻게 밥이 될 수 있을까? 진보의 논리는 무엇일까?

    필자소개
    오만가지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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