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기관 경영평가는 '신자유주의 관리지침'
    By tathata
        2006년 05월 18일 08: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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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 사무실이 작을수록, 민간위탁 많을수록, 퇴직 연금 빨리 도입할수록 점수를 많이 받는다. 노조 배제적이고,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정부 스스로의 방침을 지키는 곳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공공기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공공 기관 경영평가는 공공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고, 공공부문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산하기관과 투자기관을 중심으로 정부의 경영평가 실태를 살펴본다. 

    기획예산처는 매년 경영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평과결과에 따라 정부산하기관을 9개 등급으로 나눠 순위를 매기고 인센티브를 차등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들 등급에 따라 정부산하기관은 최고 200%까지 인센티브를 부여받는다. 한국철도공사와 같은 14개 정부투자기관은 경영평가를 통해 순위가 매겨져 200~500%까지의 인센티브를 지급받고 있다.

    경영평가는 기획예산처가 제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혁신 지침’에 근거하여 실시되는데, 이 지침은 ▲인사노무 관리 ▲예산적정 운용 ▲반부패 윤리경영 ▲성과중심 경영 정착 ▲경영 투명성 등의 항목으로 나눠 평가된다.

    주요 내용 가운데 공공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경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외부위탁을 추진하고, 이미 실시된 외부위탁 사업은 효율화를 위해 개선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또 노사간 자율협의를 통해 퇴직연금, 임금피크제 등을 ‘선도적으로’ 도입하여 정착시키도록 했으며, 임금 · 복지체계는 기관의 불합리한 경영부담으로 작용되지 않도록 설계하도록 하고 있다.

    퇴직연금 도입하면 ’10점’

    이에 따라 정부투자기관은 올해부터 퇴직연금제를 도입하게 되면 전체 100점 만점에서 10점이 경영평가에서 가산된다. 정투기관은 대부분 경영평가가 1~2점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가 많아 퇴직연금제의 10점 가산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사실상 노사간 자율협의로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도입을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직 퇴직연금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정부가 나서서 퇴직연금제의 확산을 부추기는 셈인데, 불만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동욱 공공노련 홍보실장은 “퇴직금을 적립해 민간기업에 주식투자하는 것이 퇴직연금인데, 공기업에서 왜 민간투자를 해야 하는지 노동자들은 이해하지도 못한 채 퇴직연금을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서비스 외부위탁 할수록 가산점

    외부용역 위탁사업을 실시하게 되면 평가점수가 가산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영평가는 ‘조직 인사관리의 합리화’를 명목으로 외부위탁, 팀제를 적극 활용하여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인건비 비중을 줄이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공공서비스의 일부를 민간기업이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민간위탁의 대표적인 사례가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넉 달 째 싸우고 있는 KTX승무원으로, 철도공사는 KTX승무서비스를 외부에 위탁함으로써 인건비 비중을 줄이고, 사업비 명목으로 비용을 지출할 수 있게 했다. 박용석 공공연맹 부위원장은 “효율성은 투입인원 대비 수익성으로 결정되는데, 투입인원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규직 채용이 아닌 위탁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활동 위축하는 독소조항 수두룩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항목들도 눈에 띈다. 경영평가 세부항목 체크리스트에는 노조 전임자의 수, 노조간부의 대우, 노조 사무실의 공간평수 등을 ‘노사관리의 합리화’라는 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노사협의회 고충처리 현황과 노사만족도, 소속연맹 · 가입범위 · 조합비 징수 등도 ‘노사관계의 건전성을 위한 노력’이라는 점수로 배정돼 있다.

       
     

    노사간 자율에 의해 결정돼야 할 노조 활동 등이 정부에 의해 규제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업장의 개선사항을 토론해야 할 노사협의회마저 경영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불만이 있더라도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덮고 가자”는 분위기마저 퍼지고 있다고 한다. 정투기관 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경영에 불만이 있더라도 경영평가에 걸리게 되면 고충건수가 늘어나 노사문화 점수와 윤리경영 점수가 떨어져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모두들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실제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사회연대연금노조는 올 해 경영평가 점수가 지난해보다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돼 있다. 노조는 지난해 민간보험과 같이 연금가입자 수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려 하는 회사의 일방적인 방침에 반발해 노사공동기구를 통해 제도를 개선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이 과정에서 회사 측과의 잦은 마찰이 경영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박내선 사회연대연금노조 정책실장은 “노조로서는 당연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요구이지만, 경영평가의 잣대에서는 감점의 대상이 되어 노조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액의 인센티브 함정에 정부정책에 쉬쉬

    인센티브를 통한 성과급제 또한 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투자기관은 경영평가에서 1순위를 받게 되면 최고 500%의 인센티브를 지급받게 되는데, 고액의 성과급을 타내기 위한 경쟁으로 인해 정부투자기관끼리는 물론 사업장 내에서는 경쟁력이 치열해져서 노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공공연맹 소속 사업장의 한 관계자는 주택공사노조의 사례를 들며 “노조라고 왜 주택공공성을 얘기하지 않고 싶겠냐”며, “정부정책에 반하는 얘기를 하게 되면 경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되고 그러면 500%에 이르는 인센티브가 날아가는데 조합원들이 좋아하겠냐”고 물었다.

    노동자간 경쟁 심화, 단체교섭 가로막혀

    공기업 내부의 경쟁이 가속화되는 것도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자의 업무실적에 따라 인센티브가 차등 지급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단결보다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박용석 부위원장은 “연봉제, 성과급제 도입으로 노동자들 간의 개별경쟁이 격화되고 있어 집단적 노사교섭이 깨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심각성을 토로했다.

    정부가 미리 공기업의 임금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또한 노조의 임금교섭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투자기관운영회의의 의결을 통해 확정된 ‘2006년도 정부투자기관 예산편성 지침’은 인건비 인상률을 2%로 제한하고, 잉여인건비의 임금인상 재원 활용을 금지하며, 급여성 복리후생비의 타 경비항목 계상을 금지하도록 했다. 노조가 임금단체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대부분의 안이 사실상 이 예산지침에 의해 처음부터 가로막히게 돼 노사교섭이 성립될 수 없는 구조를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경영평가는 노동자가 정부정책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함정’인 동시에 집단적 노사관계를 무력화시키는 ‘덫’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경영평가는 정부가 ‘혁신’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으로 공공부문의 노동자를 통제하고, 공공성을 약화시켜 민영화를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관리지침’인 것이다.

    한편, 공공연맹은 지난 17일 사회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정부 협약안을 제출하며 △사회공공성 강화 △고용안정 및 인력확충 △민간 저지 및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했다. 공공연맹은 또 국무총리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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