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구역에서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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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8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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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바이러스다
    ‘신대륙 발견’이라고 외치면서부터 끊임없이
    포도주 운반을 선박으로 동부에 상륙하면서
    한 도시로도 모자라, 한 주로도 모자라
    남으로 치닫고 서로 진격하며
    남서로 서남으로 정복해가며
    ‘개척정신’을 외치던 너희는
    나무와 숲과 공기와 바람과
    부드러운 흙과 맑은 물
    들소와 너구리와 온갖 동물들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한가지로
    그 빛깔로 살던 우리 조상들의 칠할 이상을
    독감과 매독 바이러스로 살해했다
    대포와 총으로 무장한 화약 바이러스가
    이할 목숨을 또 앗아갔다

    우리의 생업은
    향기로운 숲과 보드라운 대지의 정령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의 행복은
    신선한 공기와 바람 거울처럼 맑은 호수와 그곳에 거하는
    온갖 동식물과의 조화에서 연유한다
    아량을 베풀 듯 철조망 치고 보호한다는
    이 보호구역이 우리 목숨의 기거처가 아니다
    은혜를 베풀 듯 높이 세운 학교 병원 교회가
    우리 행복의 조건이 아니다
    그 어떤 악령보다 무서운 바이러스를 내장한 채
    석탄과 석유를 빌미로
    황금과 목재와 농장을 빌미로
    한편으로 회유하며 한편으로 학살하고 말살하며
    우리의 신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자연을
    너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오래기 들소 털의 양심과 가책도 없이
    우리에게서 앗아갔고 신으로부터 격리시켰다

    너희는 바이러스다
    지구상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곳이 없고
    가고자함을 저어할 성역도 없는 죽음의 바이러스다
    닿고자 하는 세계의 어느 지역이라도
    너희 주변인은 인디언이고
    가고자 하는 곳 어디라도 너희의 보호구역은 존재한다
    끝없는 모래 폭풍의 바이러스
    울울창창 정글을 잿더미로 불태우는 화염의 바이러스
    분열과 분단의 바이러스
    회유와 책동의 바이러스
    술수와 모략의 바이러스
    괴뢰의 건설과 자유 파괴의 바이러스
    학살과 압살의 바이러스
    인디언이면서 인디언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인종차별 바이러스

    악령의 저주보다 음흉하고 가차없는
    백색의 공포 앞에 실오라기로 노출된 지상의 인디언들아
    양키 고우 홈은 무모하다
    그들이 돌아갈 집은 아메리카가 아니다
    바이러스가 돌아갈 곳은
    소멸과 박멸의 화장터다 재생되거나
    소생되지 않는 완전 소진의 화장터다
    양키 고우 홈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정기복_충북 단양 출생. 1994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어떤 청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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