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렉시트 문구 하나에
    영국과 보수당 들썩거려
    메이 총리, 당내 강경파 쿠데타 직면
        2018년 10월 25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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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며칠 만에 영국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지난 주말 영국 런던에서는 70만 명이 모여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재투표를 요구하는 시위가 개최됐다. 15년 전, 이라크 반전투쟁 이후 최대 규모다. 시위 직후 테레사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진행사항을 공개적으로 당내에서 브리핑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에 메이 총리 측에서 흘린 것이 확실한 내용에 따르면 브렉시트 합의가 9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의 비율을 언급한 것도 수상하지만 유럽연합(EU)과의 협상과정을 모두 공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일까. 메이 총리가 주장하는 문구 하나에 따라 유럽연합과 해석투쟁이 난무할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규모 시위에 놀란 메이 총리의 행보는 더욱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2016년 6월, 영국이 유럽연합과 결별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했을 때, 여론조사를 포함해 유권자들은 부결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별걸 다하는 영국의 도박회사들은 12대 1로 혹은 그 이상으로 예측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이기는 확률과 마찬가지다.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52%의 찬성으로 확정되자 탈퇴에 찬성한 유권자들조차 “지금 내가 뭘 한 거지?”하는 말이 영국에서 한동안 유행했다. 심지어 노동당을 지지하는 러스트벨트 노동자들도 상당수 찬성했다는 통계가 속속 등장했다.

    브렉시트와 당내 쿠데타

    시간을 약간 뒤로 되돌려 보자. 2005년 총선에 보수당이 다시 패배하자 마이클 하워드 당수가 사퇴했다. 뒤를 이어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당수에 오른 인물이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39살의 젊은 나이로 당수에 오른 것만 보더라도 당이 거는 기대는 대단히 높았다. 캐머런은 보수당을 유권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시에 노동당의 장기집권(?)으로 피로도가 높아진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면서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2010년 총선은 개표를 하기도 전에 보수당의 승리가 확정적이었다.

    200년 만에 최연소 총리에 오른 캐머런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게다가 블레어주의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당은 참패에도 불구하고 의미 없는 새도우 캐비넷의 자리만 연연하며 당의 이미지를 탈피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온 것은 제조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시작됐다. 쇠락한 제조업 지대 실업자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고, 동유럽 등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모든 원인을 돌렸다. 다른 가입국과 달리 영국이 유럽연합 내에서도 노동체류 가이드라인이 가장 까다로운데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서비스 업종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노동자들이 광장으로 나서면서 상황이 악화되자 보수당 내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목소리들이 커져갔다. 강경파를 이끈 인물은 캐머런의 숙적인 보리스 존슨 당시 외무장관이었다. 불과 1년 전에 재집권에 성공한 캐머런은 사실상 당내 반대파들의 주장에 넌덜머리를 내면서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노동당의 다수파들도 적극적으로 브렉시트를 주장하면서 결과는 찬성으로 나타났다.

    찬성이라는 결과는 캐머런의 정계 은퇴를 의미했다. 젊은 총리가 은퇴를 하게 된 상황에서 강경파들이 총리를 맡는 것은 정치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보리스 존슨이 일찌감치 총리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면서 강경파들은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테레사 메이를 경선 없이(단 한 명이라도 후보가 등록하면 경선을 해야 함) 총리 자리에 올랐다. 메이 총리의 역할은 내년 3월까지 하드 브렉시트(완전한 유럽연합 탈퇴)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총리를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 강경파들이 암묵적인 합의였다.

    백스톱과 체커스 프로젝트

    식민지 시대의 비극이 메이 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슁겐조약이 무효화되면 국경이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영국을 여행할 때 비자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쉥겐조약 때문이었다. 만약 내년에 하드 브렉시트가 확정되면 우리도 비자가 필요해지고 영국 여행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협상의 난항을 보이는 것이 아일랜드다.

    그동안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는 자유로운 이동이 당연히 가능했다. 영국과 아일랜드 모두 유럽연합과 슁겐조약 가입국이기 때문이었다. 하드 브렉시트가 확정되면 하나의 땅덩어리인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가 국경이 생기게 된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주민 모든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관세가 새로 생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유럽연합의 입장은 완전한 탈퇴이지만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외무장관과 브렉시트장관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차선을 선택했다. 관세동맹 안에 남지만 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백스톱(안전장치)을 제안한 것이다. 메이 총리가 아일랜드 총리와 백스톱에 잠정합의했다는 주장과 메이 총리가 확답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엇갈리면서 당내 강경파들은 아일랜드 협상을 중단하고 즉각적인 하드 브렉시트를 추진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지브롤터도 문제다. 스페인 지중해 최남단에 위치한 지브롤터 역시 영국령이기 때문이다. 하드 브렉시트가 확정되면 지브롤터도 마찬가지로 스페인과 하루아침에 국경과 관세 등이 생긴다. 고립무원의 섬으로 전락하는 지브롤터 주민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은 아일랜드와 지브롤터는 조건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은 그동안 지브롤터가 낮은 법인세로 조세도피의 주범인 페이퍼컴퍼니가 난무하고 있어 백스톱의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브롤터 주민들은 영국에서 독립해 유럽연합에 재가입하는 방법으로 섬에서 탈출하자는 주장이 다수 의견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하드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의견은 95%로 나타났다.

    의회에서 메이 총리가 노딜, 즉 3월까지 협상이 완료되지 않아 자동으로 국경 폐쇄와 관세 탈퇴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차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프인 하프아웃(half-in, half-out). 체조에서 첫 공중제비를 하면서 반만 비틀고 나서, 두 번째 공중제비를 할 때 남은 반을 비트는 기술을 뜻한다. 잉글랜드(영국 본토)와 유럽연합도 하드 브렉시트가 아닌 제3의 방안, 즉 하프인 하프아웃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진위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체커스프로젝트라고 명명된 이 계획은 하드 브렉시트에 합의하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새로운 방법으로 시장에 남는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나름 묘안이었다.

    메이 총리가 장기집권에 욕심을 내고 있는 걸까. 10년 집권을 열어준 보수당의 대주주인 캐머린 총리도 당내 쿠데타에 실각했다. 메이 총리는 대주주이기는커녕, 바지 사장이나 마찬가지다. 체커스프로젝트 소문이 흘러나오자 당내 대주주들은 격분했다. 메이 총리의 역할은 하드 브렉시트를 순조롭게 추진하는 것인데 총리 자리 욕심이 커지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강경파들의 생각이었다.

    1922위원회와 2차 당내 쿠데타?

    문고리 정치가 파국을 불러오고 있다. 강경파의 분노를 키운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계획을 추진하면서 당내 대주주는 물론 브렉시트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그 정체를 몰랐다는 것이다. 바지 사장이 새로운 사업계획을 추진하면서 대주주들이 까맣게 모른다면 사업이 장밋빛이라고 해도 격분할 수밖에 없다. 비밀리에 계획을 입안한 것은 올리버 로빈스와 같은 메이 총리의 측근들이었다.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엄호하는 강경파들은 1922위원회를 가동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1922위원라회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가 메이 총리의 숨통을 죄고 있다. 보수당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하는 1922위원회는 하원의원 15%(48명)가 서명하면 자동으로 당수 경선이 실시되는 제도다. 비공식적으로 서명에 동의한 하원의원은 15%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들이 모두 연판장에 서명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서명 숫자만 제출하면 자동으로 당내 경선이 실시된다면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메이 총리는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위원장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1922위원회가 개최될 것이라는 소문은 끝이지 않자 메이 총리는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며 사태 진압에 나섰다. 주요하게 논의된 내용은 북아일랜드 문제, 즉 백스톱에 관한 것이었다. 메이 총리와 측근들은 기한을 설정하지 않은 백스톱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강경파들은 기한을 설정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브렉시트가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총리 자리를 지키겠다는 승부수지만 강경파들은 설명이 아니라 계획대로 하드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내용이 아니면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너에 몰린 메이 총리의 선택지가 급격히 좁아졌다. 1922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메이 총리가 자리를 보전하는 방법은 하나다. 설득이나 설명이 아니라 백기투항을 하고 일시적으로 총리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메이 총리가 새로운 카드를 내놓으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보수당이 흔들리는 틈을 이용해 스코틀랜드도 영국에서 독립해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브렉시트 문구 하나에 따라 영국 전역이 들썩이고 파운드화가 춤을 추고 있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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