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사짓는 얘기가 나오지 않는 농촌
    By
        2006년 05월 18일 11:07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일곱째날인 5월 16일. 날은 화창했고, 우리는 또 다른 농촌 현장을 만나기 위해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에서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의 ‘더불어 살기 생명농업 운동본부’까지 28킬로미터를 걸었다.

    그곳은 친환경 농법과 귀농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모내기를 앞둔 농번기라 길을 걸으며 논밭에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이 들려주시는 응원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한 걸음 더 힘차게 내딛게 했다.

    신생아 드물어 산부인과 찾기가 힘들다

    “잘 하는 일이여. 근데 걷는다고? 그 먼 길을? 대단하네…” 그 때 우리가 그분들께 돌려 드려야 하는 말은 일행 중 누군가가 혼잣말했던 한 마디였다. “어르신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농촌의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땅을 지키는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 길을 나섰던 것이다.

       
     

    길에서 만난 무수한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바에 따르면 농촌은 미래가 없는 곳이었다. 오늘 가기로 된 곳도 폐교에 세워져 있다. 운동장을 밟고 뛰어 놀 아이들이 적어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농촌의 학교는, 이제 세 읍면을 통틀어 한 개의 학교만이 남을 예정이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없기에 산부인과 병원을 찾으려면 차로 한 시간을 내리 가야 한다. 농약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는 분들이 한 해 1천에서 2천여 명이라는 무거운 숫자가 있다. 그리고 60세 미만의 분들로 구성된 ‘청년회’는 한 마을 회원수가 대여섯이라는, 지나치게 가벼워 오히려 무거운 숫자가 있다.

    또 다른 한편에는 초국적 기업들의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그것들이 강요하는 환경 파괴적 농경방식의 압도적인 규모, 대국이 행사하는 시장개방 압력의 엄청난 무게가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귀농’이라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각별했다. 농촌의 삶은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기에 사람들이 농촌으로 가는가? 몇 년 전 담담한 어조로 귀농의 뜻을 밝히시는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귀농에 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땅을 지키고 환경을 지키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며 자신의 삶을 자립적인 것으로 꾸려 간다는 이념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나는 오늘의 목적지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길 기대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날의 여정에서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거나 도시의 삶이 지나치게 힘들기에 귀농했던, ‘생각하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친환경농법 왜 하냐고? 가격이 비싸잖아”

    배 이상 힘든 친환경 농법을 굳이 쓰는 분들 역시 그러할 터였다. 전날 밤 만나 뵈었던 문당리 분들, 그리고 그보다 며칠 일찍 만나 뵈었던 접산마을 분들의 열정이 수많은 이야기와 생각거리를 던져 주셨던 까닭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만날 수 있었던 분은 마을 대표 한분뿐이었다. 그것도 20분이나 될까 싶은 짧은 시간 동안이었다. 그 분은 마을과 운동본부의 역사를 적은 글을 낭독하여 들려주시고, 따뜻하게 불 들어오는 방 권해 주시며 편히 쉬었다 가라는 넉넉한 말씀을 끝으로 일어서셨다.

    나는 난감해졌다. 밖으로 따라 나가 못 다한 이야기를 여쭙고 있는 일행에 끼어 귀를 기울였고, 대표님을 따라 잠시 본부 사무실로 갔다. 나는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친환경 농법을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귀농하는 분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 시장 개방 압력은 어떻게 체감하시는지, 그리고 ‘같은’ 농민인 대추리 주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등등.

    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계속 걸려오는 중에 핸드폰에 저장된 예쁜 손녀 사진을 구경했고 당신이 높게 평가하시는 한 청년의 중매를 의뢰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듣고 싶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애썼다. 직접적인 질문은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주의사항을 염두에 두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좋은 인터뷰어는 못 되었다. ^^)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가? 그분은 솔직담백하게 말씀하셨다. 굳이 친환경 농법을 쓰시는 이유는 경쟁력과 높게 보장된 가격 때문이라고. 또, 조합 전체의 한 해 매출은 얼마이며 납품업체는 어디인지를 들려 주셨다. 아파트와 도시생활은 답답해서 싫고 귀농한 사람들은 일이 익지 않아 곧 떠난다고 하셨다,

    도시에서 귀농한 사람들 곧 떠나는 경우 많아

       
     

    대추리에 대해서는 딱하게 되었다는 말씀 이상은 하지 않으셨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마을대표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셨고, 늦게까지 일하시던 사무국장님 역시 퇴근하셨다. 나는 남겨진 사무실에서 책장과 게시판에 꽂혀져 있는 자료들을 둘러보았다.

    ‘친환경 농업 활성화를 통한 농촌살리기 세미나’ 자료집과 친환경 재배 인증 절차에 대한 자료집, 친환경 농법을 위한 대체 농약/비료에 대한 안내선전물, 농작물 품질 개량에 대한 자료집과 같은 책들, 농업과 환경문제의 정기간행물들로 책장이 빼곡했다.

    그러나 공백은 컸다. 나는 그 공백을 통해 마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접산마을에서처럼 FTA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 분이나 인증 없이 신념만으로 저농약 재배를 하시면서 그 힘든 일을 해낸다는 자부심으로 젊게 사시는 70대 노인은 만나지 못했다.

    문당리에서처럼 자신들이 실천하는 농법의 의미에 대해 잘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만나지 못했다. 귀곡리 주민들도 농업이라는 활동을 기반으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겠지만, 즐거이 이야기하신 부분은 자식이나 중매에 대한 화제들이었다.

    그곳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농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없었다. 농업은 즐거운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던 셈이다. 오리와 우렁이를 사용하는 친환경 농법 역시 그곳에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을 가진 듯 보이지 않았다.

    농촌은 ‘건강한’ 먹거리를 욕망하는 도시 소비자들의 삶이라는 이야기에 부속된 하위 플롯인 것처럼 보였다. 나는 대추리를 떠올렸다. 그곳에서는 농사짓는 행위가 군사제국의 위협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따라서 나는 귀곡리에서 이런 질문을 가져간다. 영농이라는 삶의 큰 부분이 이야기의 주축이 될 수 없는 것이야말로 그분들이 진정으로 박탈당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지 않는가?

    ‘같은’ 친환경 농업이라도 더 큰 경제적 여유라는 자본의 권리에 의해 추동된 것이 아닌, 더 풍부한 삶이라는 삶의 권리, 생명의 권리에 의해 추동된 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생명의 능력은, 그리고 삶의 권리는, 수많은 인연들을 섬세한 그물망으로 연결하는 이야기 구성에 있으므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