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FTA 정부 초안을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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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7일 05: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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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순 선생의 뜬금없는 한미 FTA 반대는?

    한미 FTA에 대해서 경제학적으로 그 장점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양국의 관세율 차이 때문에 그렇다. 평균 2.5% 정도의 미국 관세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8% 정도의 관세를 없애는 것은 아무리 계산을 해도 1:4의 이익 차이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고도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 나기 위해서는 뭔지 정의할 수는 없어도 시스템 전체의 효율성이 그 이상으로 높아질 경우인데, 이런 것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 어떻게 계산을 해도 한미 FTA가 좋다고 설득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여기에 FTA 협약 체결로 인해 비관세무역장벽(Non-tariff measure) 내용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데, 이미 스크린쿼터제를 비롯한 4개의 주요 정책을 풀어버린다고 했으니까 아무리 계산해도 견적서를 뽑기가 어렵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한 번쯤은 조순 선생의 책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이 시점에 조순 선생이 한미 FTA의 조급한 추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나름대로는 결정타인 셈이다.

    게다가 이 자리가 한국경제학회 발표장이었다는 것은 한미 FTA가 경제학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장치가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그런 장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손익발생을 예측하는 모델을 돌려볼 수는 있을 텐데, CGE(일반연산균형모델) 결과만을 가지고 이런 중요한 결정이 무조건 맞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CGE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식적 대답을 내어주는 장점 때문에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모델인데, 이런 상식에 입각한다면 결과는 정부가 원하는 답과는 다를 것 같다.

    물론 이 모델 내에도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보면 부문별 거래와 혁신과 관련된 약간은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이 들어가 있기는 하다. 점점 더 격론이 붙으면 CGE 무역모델의 엄밀성 같은 것들이 더 얘기가 될 것이므로 정부에서 새롭게 내세울 ‘멋진 카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2. 정부 협상의 원칙들

    정부는 지난 15일 협상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포지션 페이퍼를 제출했다. 가장 앞부분의 ‘전반적 협상 목표’는 이렇다.

    1. 전반적 협상목표

    ◇ 양국 모두 수용 가능한 이익의 균형 도출
    ㅇ 반드시 지킬 부분과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전략적 개방이 필요한 분야를 조화시킨 균형된 협상결과 도출

    ◇ 공산품 등 대미 경쟁 우위 분야의 시장접근 조기 확대

    ◇ 경쟁력 취약 분야는 피해 최소화 및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협상결과 도출

    ◇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서비스 분야의 개방과 기초적 서비스의 공공적 성격 유지

    ◇ 실질적으로 소비자의 혜택이 증진되는 협상결과 도출

    수사학적으로 보자면 지금까지 약간 제시된 정부의 약점에 해당하는 것들이 약간 보완이 되어있다. 각 표현의 이면을 분석해본다.

    ㅇ 양국 모두 수용 가능한 이익의 균형도출

    경쟁력 취약 분야에 대해서는 피해 최소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쌀 시장 정도에 해당할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 정도는 해볼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정부의 희망사항이기는 한데, 전체적으로는 쌀 시장을 막을 테니까 나머지 부분을 여는 것은 양해해달라는 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ㅇ 공산품 등 대미 경쟁 우위 분야의 시장접근 조기 확대

    이 얘기는 예컨대 선박에 대한 미국의 비관세무역장벽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거 좀 요원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도 나름대로는 수출이 늘어날 부분이 있기는 한데, 사실 미국 시장은 이러한 비관세무역장벽을 우리나라보다 많이 준비해놓고 있다.

    막상 2% 관세만으로 무조건 수출이 늘 거라고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별도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기는 할 것인데, 미국 시장에 대한 관행과 제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미국은 USTR(미국무역대표부)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협상 정문가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미국 시장의 관행을 비롯한 현실을 이용하는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협상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다고 지적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부터라도 미국 시장의 관행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주어진 시간 내에 제도적이고 관행적으로 발생하는 미국의 비관세 무역장벽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하고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ㅇ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서비스 분야의 개방과 기초적 서비스의 공공성 유지

    의료와 교육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수도, 전기 등 공공 서비스를 어느 정도 개방할 것인가가 한 가지 드러난 쟁점이다. 대체적으로 의료와 교육은 개방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고, 가스와 수도는 국민과의 협상에서 정부가 가지고 있는 조커에 해당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는 아무래도 가스와 수도 사이에서 정부가 장난을 칠 것 같다. 의료와 교육은 숨기고, 국민들의 말이 없고 찬성 분위기가 높아 가면 이미 환경부에서 그렇게 속내를 한 번 보였던 것처럼 수도까지 민영화하는 것에 미국 기업의 인수까지 허용하는 정도로 확 가버릴 수도 있고, 만약 공공성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좀 심하게 나오면, 이미 민영화에 대한 기왕의 논의가 있던 가스 정도를 넘기는 정도에서 설 것 같다.

    말은 멋지지만 수도와 가스 정도에서 접점을 형성하게 되고, 만약 국민들의 반대가 참을 수 없게 심해진다면 의약산업의 일부가 ‘공공성 유지’의 틀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현재의 정부 입장이라면 희박해 보인다.

    또 다른 메시지 한 가지는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일반 서비스 업종의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여기에 대한 정부의 최대치는 ‘단계적 개방’이다. 그러니까 작은 식당과 특수 유통업까지 전부 개방되기는 하는데, 만약 업종별로 문제제기가 있다면 그 분야는 단계적 개방으로 갈 것이고, 별 말 없이 지금처럼 가만히 있는 업종은 바로 개방해서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카드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ㅇ 기타분야, 노동과 환경

    노동과 환경 분야에 대한 국내법규에 대해서는 약간의 ‘국내법규 준수’와 관련된 조항들을 삽입하는 정도의 양보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3. 협상초안을 읽고나서

    한미 FTA에 대한 국민의 반대가 60%를 넘은 상태에서 나온 정부의 입장치고는 좀 “짜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의료와 교육 정도는 이미 스크린쿼터까지 내주겠다고 한 상태에서 조금 더 논의를 해보고 입장을 정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미 전면개방으로 기조를 잡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쌀 개방을 반대할 테니까 더 이상 개방반대에 대한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다는 뉘앙스가 강해서, 지나치게 고압적이라는 느낌을 감추기가 어렵다.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 우리나라의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제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어떻게 이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잡고 대책을 세울 것인가에 대해서 방침도 안 서있는데, 일단 개방부터 하겠다는 것이 조금 황당하기는 하다.

    가장 어려운 것이 대형유통개방 이후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94년 개방 이후에 어렵게 버텨낸 동네 미장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실제로 지역 공무원의 고용 숫자보다 미장원에서의 고용 숫자가 더 크다고 한다 – 그리고 재래시장 활성화라는 추상적 제목만 달아놓고 지난 5년 동안 답을 못 찾은 소형 유통상들에 대한 정부 대책이 실질적으로 전무한 상태에서 별 다른 연구 없이 ‘단계적 개방’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하는 지금의 방침은 조금은 안이해 보인다.

    한미 FTA처럼 대규모의 경제 충격이 발생할 분야에 대한 협상에서 필요한 정보는 상대편 시장에 대한 조금 더 체계적인 연구와 우리나라 시장에 현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할 것 같은데, 미국의 비관세장벽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고급서비스가 아닌 서민들이 종사하는 자영업이 주로 종사하는 소위 서민형 서비스업종에 대한 장기 계획 같은 것들이 제시되고, 이 안에서 협상 전략이 나오는 것이 정상적이다.

    급하게 반대진영에서 반대논리로 몇 가지 제안한 것 정도에 대한 레토릭의 추가로 정부가 노력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여전히 정부는 별 입장도, 철학도 없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미 FTA를 할 것인가와 안 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과는 별도로 한다면 어떻게 내용을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역시 필요하기는 할 것인데, 정부는 아직도 무조건 한다는 입장에서 전면적으로 뭔가를 수정한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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