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경제 위기 시대와
    마르크스의 경제학과 공황론
    [책소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공황론』 (김성구(지은이)/ 나름북스)
        2018년 10월 20일 02: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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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과 『자본』, ‘플랜 논쟁’의 의의

    150여 년 전 출간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논쟁적인 책이다. 『자본』을 둘러싼 전선은 대체로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따르는 쪽과, 이를 넘어선 대안 체제를 찾는 이들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내부에서도 『자본』은 여러 해석과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자본』을 두고 벌어진 ‘플랜 논쟁’과 공황론 논쟁은 대표적이다.

    현존하는 『자본』은 마르크스가 처음 의도한 정치경제학 비판 구상 중 일부를 반영한 책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 담긴 내용보다 더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자본주의 분석을 목표로 정치경제학 비판 계획(플랜)을 세웠으나, 『자본』의 집필 과정에서 변화가 생긴다.

    김성구 교수에 따르면, 애초 마르크스는 자신의 정치경제학 비판 저작을 6개 부(제1부 자본, 제2부 토지 소유, 제3부 임노동, 제4부 국가, 제5부 외국무역, 제6부 세계시장)로 구성하려 했다. 또 제1부 자본을 총 4개 편[제1편 자본 일반(Ⅰ자본의 생산과정, Ⅱ자본의 유통 과정, Ⅲ 양자의 통일 또는 자본과 이윤), 제2편 자본들의 경쟁, 제3편 신용, 제4편 주식자본]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1860년대 중반 마르크스는 6부작 저술을 실현할 계획을 접고, 『자본』을 전 3권 4부(제1부 자본의 생산과정, 제2부 자본의 유통 과정, 제3부 총과정의 자태, 제4부 이론의 역사) 구성으로 발간할 것임을 밝힌다. 그나마 마르크스 생전엔 이 중 제1권만이 출간된다.

    현재 우리가 접하는 『자본』은 외견상 마르크스가 처음 수립한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의 제1부(자본) 제1편(자본 일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본』이 실제 포괄하는 내용은 애초 플랜의 제1부 제1편 ‘자본 일반’의 범위를 넘어 다른 편(2~4편)과 부(2~3부)의 내용을 이른바 ‘이념적 평균’의 수준에서 포괄한다. 이처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으로부터 『자본』의 성립을 둘러싸고, 그 변화의 의의가 무엇인지, 『자본』의 내용은 플랜의 어떤 범위를 포괄하는지, 마르크스는 왜 ‘자본 일반’을 넘어 『자본』에서 서술의 범위를 확대했는지, 『자본』의 성립으로 원래의 플랜은 어떻게 변경되었는지 등의 논쟁이 역사적으로 전개됐다. 이른바 ‘플랜 논쟁’이다.

    이 ‘플랜 논쟁’에 대해 김성구 교수는 “『자본』의 성립사에 관한 논쟁은 그 자체로 『자본』에 대한 이해를 질적으로 높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본』이 비록 (플랜의) 전반 3부의 내용을 이념적 평균에서 포괄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적 편성’을 서술하고 ‘근대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폭로한다고 하였지만,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과 단절해서는 『자본』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자본』은 그 자체로 완결된 저작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6부작 플랜의 한 단계를 보여주는 저작이기 때문이다.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의 체계하에서 마르크스의 방법과 『자본』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만이 『자본』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이다”라고 그 의의를 설명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공황론》에서 김성구 교수는 로만 로스돌스키(R. Rosdolsky)를 비롯해 역사적으로 전개된 플랜 논쟁의 다양한 논의들을 검토한다. 김성구 교수는 결론적으로 “『그룬트리세』와 『자본』 간에는 분석 수준과 서술 대상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나, 그 변화로 정치경제학 비판 플랜의 구성이 변경되고 6부 과제가 포기되는 방향으로 『자본』을 구성하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플랜 논쟁’의 두 흐름과 공황론

    ‘플랜 논쟁’은 마르크스 경제학 중에서 특히 공황론 연구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마르크스의 애초 플랜이 변경돼 현재의 『자본』이 플랜의 전반 3부를 온전히 포괄한 것으로 파악하면(‘플랜 변경설’), 『자본』은 경쟁론과 신용론을 포괄하므로 『자본』의 틀 내에서 현실의 산업 순환과 공황의 직접적 분석을 시도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입장의 연장에서 『자본』에 서술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현실 세계의 공황을 직접 분석하는 논자들도 등장한다.

    반면, 『자본』이 직접적으로는 플랜의 1부 1편에 해당하는 ‘(확장된) 자본 일반’ 또는 ‘자본의 일반적 분석’을 반영하고, 전반 3부를 ‘이념적 평균’의 수준에서 다룬 것으로 본다면, 산업 순환과 공황 등은 『자본』의 서술 대상을 넘어간다. 이 같은 ‘플랜 불변설’을 따르면, 산업 순환과 공황론은 『자본』으로부터 직접 전개할 수 없다. 김성구 교수에 따르면, ‘이념적 평균’의 수준에서 파악한 자본주의 축적 법칙은 현실 경쟁을 매개로 하여 산업 순환과 공황의 현실적 운동으로 전개된다. 이 경우 현실 경쟁과 공황은 ‘가치(또는 생산가격)=가격’을 전제해서 분석한 법칙의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즉, 현실의 구체적 경쟁과 공황은 『자본』의 분석 수준으로는 직접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공황론》에서 김성구 교수는 “공황론의 방법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방법과 플랜 체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방법론에 입각해 투간 바라노프스키(Tugan-Baranovski),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바우어(O, Bauer), 그로스만(H. Grossmann) 등의 재생산표식론, 이윤율 저하설, 공황론의 오류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논증한다.

    “공황론 논쟁의 착종과 가치법칙의 동태적 관철에 대한 몰이해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방법론적 문제에 대한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컨대 재생산표식을 둘러싼 공황론 논쟁사는 전자의 대표적 오류라 한다면, 과잉생산 공황을 부정하는 이윤율 저하설은 후자의 대표적 오류라 할 수 있다. … 재생산표식은 자본의 일반적 분석 수준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의 연관을 규명한 것으로서, 이 분석 수준에서는 가치 실현과 부문 간 균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과잉생산을 논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표식의 조작을 통해 과잉생산을 논증하려는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논자들과, 다른 한편에서는 표식의 조작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모순을 부정하려는 투간 바라노프스키같은 논자들의 잘못된 논쟁이 있었다. 반면 이윤율 저하설은 자본의 일반적 분석에서 과잉생산이 추상되고 있다는 방법론적 한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로부터 과잉생산 공황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과잉생산을 단순히 공황의 결과로만 파악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한다.”_p.84

    ‘자본주의 붕괴론’·‘이윤율 저하설’ 비판

    특히 김성구 교수는 책 4장과 5장에서 이른바 ‘자본주의 붕괴론’의 이론사적 배경이 되는 바우어와 그로스만의 재생산표식론과 공황론의 오류를 집중 비판한다. 책에서 김성구 교수는 통상적인 이해와 달리 바우어가 작성한 재생산표식이 ‘균형’ 표식이 아니라 ‘불균형’ 표식임을 자세하게 논증한 뒤 “바우어 표식을 계승한 그로스만은 바우어 표식의 이런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고, 단순히 표식을 연장함으로써 조화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그로스만은 바우어 표식의 붕괴, 즉 완전고용 축적의 붕괴를 어이없게도 자본주의의 붕괴와 종말로 해석함으로써 붕괴론 논쟁을 극적으로 희화화하였다”고 지적한다.

    “바우어 표식이 마르크스 표식의 전제를 훼손하고, 명백히 구성상의 근본 오류를 안고 있으며, 이 표식이 균형 표식이 아니라 불균형 표식임이 분명해진 이상, 문제는 가정들의 현실성 문제가 아니라 이 표식에 입각한 일체의 토론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바우어 표식의 구성상의 오류 여하는 이론적 또는 정치적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바우어의 작성 논리를 따라 명쾌하게 규명할 수 있는 것이어서 사실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도 없다. 따라서 바우어의 조화론도, 그로스만의 붕괴론도 모두 오류이다. 마찬가지로 이들의 이론에 입각해 자본주의의 발전이나 붕괴를 논하는 것도 모두 오류라 할 것이다.” _p.226~227

    또 김성구 교수는 ‘이윤율 저하설’(『자본』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주기적 공황을 설명하는 이론적 경향)에 대해서도 “축적의 일반적 법칙과 재생산의 법칙 그리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현실 경쟁을 추상한 자본의 일반적 분석(=이념적 평균)에서 파악한 법칙이며, 현실 경쟁의 매개 없이 직접 주기적 공황의 설명에 적용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주기적 공황의 분석은 현실 경쟁론의 매개를 필요로 하고, 따라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현실 경쟁 속에서 어떻게 전개하는가 하는 분석 수준으로까지 구체화하지 않고서는 이 관련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이 분석 수준으로까지 올라가면, 일반적 이윤율이 아니라 산업 순환에 따른 시장에서의 수급 변화와 시장가격의 변동을 반영하는 구체적인 이윤율, 즉 시장가격 이윤율이 문제이며, 이 시장가격 이윤율의 갑작스러운 하락을 해명하는 것이 바로 주기적 공황론의 핵심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파악하면, 이제 시장가격 이윤율의 갑작스러운 하락은 일반적 이윤율의 변동 요인과는 다른 것이며, 따라서 일반적 이윤율을 결정하는(하락시키는)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나 또는 (자본의 일반적 분석 수준에서 일반적 이윤율의 하락을 상쇄하는) 상쇄 요인들, 예컨대 잉여가치율의 증가나 불변자본의 저렴화는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를 설명할 뿐이고, 시장 이윤율의 급락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통상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공황을 설명할 때의 방법론적 오류는 바로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윤율의 저하와 공황을 가치 또는 생산가격으로 파악한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나 또는 상쇄 요인들의 작용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 _p.390~391

    21세기 경제 위기 시대에 읽는 마르크스의 공황론

    그나마 마르크스의 『자본』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공황론은 대중에게 생소하다. 사회적으로도 “불황”이나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은 자주 사용되는 반면, “공황”이란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현대의 주류 경제학에선 공황을 분석 대상으로 삼지 않고, 공황이 일어난다 해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해주며, 공황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아닌 예외적(외부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류 경제학의 문법이 일반 세계에도 그대로 통용되기에 ‘공황’은 생소하다.

    그런데, 사실 공황은 가깝게는 지난 2008~09년(세계 금융 위기)에도 있었고, 1990년대(한국에선 IMF 위기)에도 있었고, 조금 멀게는 ‘오일 쇼크’로 알려진 1970년대에도 있었다. 200여 년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공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만일 공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대중의 저항도 거세겠지만, 호황과 공황을 반복하기에 시간이 지나면 대중은 망각하고 또 자본주의는 그 생명을 연장한다. 당연히도,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반복되는 공황과 경제 위기를 분석하고 향후 변화를 예측하는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오랜 화두다.

    그래서 『자본』 성립 이후 주요한 이론가들이 마르크스의 『자본』과 이론을 토대로 위기론과 공황론을 전개해왔다. 그 주요 인물들이 이 책에 등장하는 투간-바라노프스키, 로자 룩셈부르크, 바우어, 그로스만 등이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공황론》은 ‘플랜 논쟁’의 성과를 종합하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방법론에 따라 이 같은 이론가들의 오류를 밝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이를 기반으로 현실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산업 순환과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공황 분석의 이론적 토대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김성구 교수의 40여 년 마르크스 경제학·공황론 연구 집대성

    이 책의 저자인 김성구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다. 김 교수는 오랜 기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관점에서 현대자본주의와 공황을 연구해왔다. 마르크스주의 정통파의 현대자본주의론이었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과거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전 세계적 공산당의 퇴조 속에 그 힘을 잃었다. 김성구 교수는 구소련 붕괴 이후에도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입장에서 장기파동론, 네오마르크스주의 이론, 조절 이론, 세계체제론, 포스트 케인스주의론 등 유행처럼 시대를 풍미한 이론들과 날카롭게 대립하며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적 타당성을 논증해왔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주류 경제학이 지배하는 기울어진 학문 현실 속에서 김성구 교수는 지난 40여 년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탐구해왔다. 올해 정년퇴임을 기념해 출간하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공황론》은 마르크스 경제학과 공항론에 관한 김성구 교수의 그간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특히 이 책 4장과 5장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서 큰 영향을 미친 바우어-그로스만의 재생산표식과 공황론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논증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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