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국제영화제, 화려함 이면엔
    최저임금 위반,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영화제 측, 초과수당 지급 않은 걸 당연하게 생각"
        2018년 10월 19일 06:5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가 된 후 시간외 근무수당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영화제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기획팀장은 저와 같은 요구를 한 사람이 부산국제영화제 23년 동안 처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 혹은 ‘영화를 전공한 것’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열정 페이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정말로 정상화되는 때는, 영화제를 만드는 스태프들의 임금과 권리를 존중해주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로젝션 오퍼레이터(상영작 검수, 영화 상영)로 일했던 A씨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미술대학을 다니다가 영화가 좋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지원서를 넣어 합격했으나, 개막식 하루 전날에 일을 그만뒀다. 청년 노동자에 대한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 시간외수당 미지급 등 영화제의 ‘열정 페이’ 문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년유니온은 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화제 스태프 노동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국내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기간 열흘간 스태프의 체불임금 추산액은 무려 1억2천4백만원에 달했다. 특별근로감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영화제 체불임금 지급 촉구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이번 조사는 청년유니온이 9월 1일부터 이달 18일까지 구글독스를 통한 온라인 제보, 전화 및 대면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했다. 제보자는 총 34명으로 20대 14명, 30대가 19명, 40대가 1명으로 청년층 중심이었다. 영화제 스태프 근로계약 292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평균연령은 28.1세로 더 낮아졌다.

    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유니온에 제보한 영화제 스태프 34명 중 32명의 평균 계약기간은 4.4개월로 대부분 임시직 노동자였다. 평균경력 기간은 2년으로 이 기간에 3개의 영화제를 옮겨다니며 근로계약을 맺고 일했다. 특히 전체 제보자 중 19명은 영화제 경력이 1년 이상이었는데 상용직 노동자는 고작 2명에 불과했고 경력이 쌓여도 대부분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쪼개기 계약도 만연하다. 영화제에서 5년간 일한 스태프 B씨는 상시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20.5개월을 일하는 동안 3차례 쪼개기 계약을 했다. 또 다른 스태프들 역시 4개월, 1개월,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했다.

    6대 국제영화제 중 5곳, 시간외수당 미지급
    “영화제 측,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 당연하게 생각”

    영화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근로계약 기간을 최소한으로 잡는다. 단기고용 등으로 인한 인력유출도 심해서 업무강도도 상당하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영화제 개최 한 달 전 스태프들은 하루 평균 13.5시간 동안 일한다. 주당 90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제보도 5건이나 나왔다. 법정 최대 노동시간은 주 68시간이다.

    문제는 연장·야간·휴일 근무에도 시간외수당이 거의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유니온 등도 영화제 개최가 가까워져 불가피하게 야근을 하는 것보단 이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공짜노동’을 강요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모 영화제 스태프인 C씨는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영화제 측의 입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영화제, DMZ다큐멘터리영화제 등 6대 국제영화제 중 DMZ다큐멘터리영화제를 제외하곤 모든 영화제가 스태프에게 시간외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감독·배우·영화제 간부들만의 축제?
    영화제 개최 기간 체불임금만 1억 2천 4백만원…
    감독·배우·영화제 간부 참석 행사 예산은 1억 8천 7백만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안에 따르면, 영화제 개최기간 열흘 동안 감독, 배우, 영화제 간부만 참석하는 행사에 1억 8천7백만원을 편성했다. 이 기간 영화제 스태프 149명이 받지 못한 시간외수당은 1억 2천4백만 여원에 달한다. 청년노동자들을 착취한 돈으로 감독, 배우, 영화제 간부들만의 축제를 벌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청년유니온은 “이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임금체불과 대비되어 화려한 영화제 이면에 자리 잡은 영화제 스태프에 대한 노동착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 일부는 시간외수당은커녕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 A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달간 영사자막팀 업무를 맡기로 하고, 주 40시간 근무를 조건으로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A씨는 영화제에서 근무하는 17일 중 시간외 노동을 하지 않은 날은 입사 첫 3일뿐이었다. 그가 영화제에서 근무한 17일간 총 노동시간은 163.5시간이었으며, 이중 시간외 근로는 총55.5시간이었다. 근로계약서상 기본급도 135만원으로 올해 최저임금인 157만 3770원에 22만원 가량 미달하는 금액이었고, 영화제 측은 시간 외 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영화제 측은 A씨 외에도 영화제 스태프 전원에게 시간 외 수당을 미지급했다.

    칸, 베를린 영화제 등 유럽도 단기인력을 활용하고 있지만 30여개 국가의 250여개 영화제가 회원으로 가입한 유럽영화제를 구성, 스태프 교류 프로그램 운영하고 스태프에 대한 교통비와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다. 스태프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영화제 산업 발전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차원이다.

    청년유니온 등은 영화제 스태프의 불안정노동 문제와 임금체불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시직 스태프 고용기간 7~8개월 수준까지 확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현장의 임금체불 근절 ▲지방자치단체, 영화제들 관리감독하고, 개선을 위한 가이드라인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용득 의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최저임금 위반, 연장수당 미지급이 있었고 규모가 작은 영화제 역시 장시간 노동과 쪼개기 계약 등 다양한 노동법 위반 사례가 확인된 이상 조속한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이 필요하다”면서 “고용노동부, 문체부 등 관계부처가 힘을 모아서 노동조건 개선하고 나아가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종합적 대책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