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외부를 만드는 생태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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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7일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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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령에서 홍성까지 총 36km를 걸었다. 45km를 이동한 어제에 비하면 그나마 짧은 일정이었던 셈이지만, 하루하루 쌓여가는 피로와 유난히 더운 날씨 탓에 걷는 것이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들판에서 간간이 마주친 농민들이 우리를 향해 보내주는 격려는 피곤한 와중에도 큰 힘이 되었다.

오늘 묵은 곳은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생태마을. 이 곳은 몇 년 전부터 오리를 이용해 총 900가구 이상이 순수 유기농 쌀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유기농 쌀 재배단지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 이런 성과가 관 주도가 아닌 농민들 스스로의 자발성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다. 물론 이런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풀무학교(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와 정공부(농업전문대학과정), 풀무생협과 느티나무 헌책방 등 다양한 기관이 오랫동안 크고 작은 실험들을 통해 마을을 가꿔왔던 것이다. 특히 40년의 전통을 가진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낸다는 기치 아래 수많은 지역 일꾼들을 배출해왔다. 그리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더불어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넉넉한 마을, 함께 나누는 오순도순한 마을, 건강한 자연을 가꾸는 마을을 일구기 노력해왔다.

경쟁을 넘어서는 게 생태농업의 근본

지금이야 웰빙 바람으로 유기농산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정도 커졌지만 이분들이 유기농을 시작할 때만 해도 관에서 요구하는 농사법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한다. 또 지금 역시 유기농산물 소비량이 생산량을 따르지 못해 유기농 생산자들끼리 경쟁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쟁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생태농업의 근본이 아니겠냐는 한 마을 분의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그렇기에 유기농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무엇보다 정신을 농사짓는 것이라는. 이분들이 학교 급식에 유기농 쌀을 지원하기로 한 것도 이런 정신의 일환이었다.

   
 

유기농이 단순히 질 좋은 농산물을 비싼 값에 팔아 더 큰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함이라면, 무엇보다 지역의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부터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윤보다는 생명을 키우기 위해 수십 년간 올곧이 유기농에 헌신해 온 생태농업 활동가들, 개발독재의 시대에서 사회주의의 몰락까지 어떤 척박한 현실에서도 희망의 불꽃을 키워온 풀무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자본주의에 의해 끊어져버린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의 끈을 되살려가고 있는 마을공동체분들. 이분들은 그간 우리가 책을 통해 배워왔던 여러 지식들을 이미 자신들의 삶을 통해 자연스레 체득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을 경제적 수치로 환산하고 추상적 양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 환상을 너머 생명의 순환, 선물의 순환을 되살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곳곳에 외부를 만들자

갯벌에서 살아가는 무수한 생명들의 값어치는 새만금 방조제로 얻게 되리라는 경제적 이익과 결코 ‘교환’될 수 없다. 한미 FTA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될 무수한 농민들의 생존권은 그 희생을 바탕으로 늘어난다는 국민총생산량과 결코 ‘교환’될 수 없다. 그리고 이곳 생태마을 분들 역시 땅과 땅에 기대 살아가는 우리들 생명의 귀중함이 농약을 뿌려 얻게 될 당장의 이익과 결코 ‘교환’될 수 없음을 온 몸으로 실천해온 것이다.

물이 대지를 적시고 대지가 풀과 나무와 곡식을 살찌우고 이를 먹어 뭇짐승들이 살아가며 이들이 죽어 다시 대지를 비옥케 하는 자연 속에서 우리는 준다는 의도도 없이 주는 ‘완전한 선물’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자연의 모든 부분이 서로에 대한 선물이 되어 생명의 거대한 순환을 완성시킨다는 경이로운 진리. 인간 역시 이 거대한 생명의 순환에 속해있음은 물론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선물을 순환시켜야하는 의무는 법적이거나 윤리적인 의무 이전에 생명의 요구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그 진리에 눈멀어버렸다. 경제적 이익만을 가치판단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경제주의, 맹목적으로 경제 규모의 확대만을 추구하는 발전주의, 자연을 인간 경제활동의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인간중심주의에 가려져 선물의 순환 고리는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움켜쥐기만 할 뿐 생명의 순환으로 되돌려 주지 않게 되었으며, 사람과 사람을 선물로 맺어주었던 상호부조의 삶은 겅제적 이익을 두고 다투는 생존경쟁의 싸움터로 바뀌어버렸다.

새만금의 조개를, 대추리의 주민들을, 수십 만, 수백만의 이주노동자들과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교환’의 논리다. 그렇기에 새만금 간척사업을,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농민들에게 강요되는 희생을 반대하는 우리들은 이 모든 싸움이 ‘교환’의 논리에 반대하는 하나의 싸움임을 느낀다.

그리고 여기 홍성군 문당리 생태마을에서 우리는 교환의 논리에 맞선 싸움이 단지 반대를 위한 싸움, 대안 없는 절망적 싸움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싸움임을 보았다. 교환이 지배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도 선물이 여전히 낮지만 깊은 울림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선물과 생명이 순환하는 세상이란 단지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의 꿈이 아니라, 항상-이미 자본주의 곳곳에 외부를 만들고 있는 현실이자 바로 지금-여기서 우리가 일궈가야 하는 현실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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