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법 개정안
    박상인 “재벌개혁 포기선언”
    "삼성 앞에선 작아지고 나머지에 단호하겠다면 국민 수긍 어려워"
        2018년 10월 12일 1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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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추진 중인 가운데, 경제력 집중, 사익편취, 불공정한 경쟁구조 해소 등 재벌문제의 핵심을 빗겨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민사회·학계 등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포기 선언”이라고 반발하며 대폭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의 쟁점은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와 지주회사 규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형벌 조항 등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컸던 부분이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 여부였다. 전속고발제란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불공정거래의 피해자가 아닌 공정거래위만 검찰에 고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 제도의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가 8월 24일 입법예고한 개정안엔 전속고발제 전면 폐지가 빠졌다. 대신 심각한 경성담합(가격담합, 공급제한담합, 시장분할담합, 입찰담합)에 한해서만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액수를 올리면서도 기존에 각종 감경사유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와 사익편취 방지를 위한 핵심적인 제도들을 규정하고 기업집단 법제 역시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된다. 특히 지주회사 지분율을 올리는 것과 관련해, 신규 지주회사뿐 아니라 기존 지주회사의 지분율 요건도 함께 상향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개정안, 재벌개혁 포기선언이나 다름없어”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2일 오전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과 인터뷰에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자체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재벌개혁이 없다’, ‘재벌개혁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며 “재벌개혁의 핵심인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재벌들을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입법”이라고 혹평했다.

    박상인 교수는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와 관련해 기존 지주회사를 배제한 것에 대해 “지주회사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 출자단계와 지분율 규제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그동안 지분율과 출자단계 규제가 다 완화됐다. 그러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나 문어발식 확장이 더 확대됐고,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했다”며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는 기존 출자단계에 대한 규제는 전혀 언급이 없고 (기존 지주회사의) 지분율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신규로 지주회사로 들어오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서 적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총수일가는 지주회사를 이용해 기업 지배력을 강화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신규 지주회사에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총수일가에 대한 특혜로 비춰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비대칭 규제라서 위헌 요소도 있지만, 기존 재벌에 대해서는 지분율 규제도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력 집중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런 개정안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증여세·상속세 등을 회피하는 식의 차명거래,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M&A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에 대해서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경실련은 지난 4일 해당 개정안에 대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할 만한 근본적 방안이 포함돼있지 않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를 위한 기업집단의 출자구조 개선 ▲황제경영과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한 기업 거버넌스 개선책 ▲각종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단서 및 예외조항 삭제 ▲약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징벌배상제와 디스커버리제도 전면 도입 등의 방안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공정거래위의 해당 개정안이 ‘기업 옥죄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규제 강화로 기업을 옥죄면 경제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규제는 없애야 하지만 바람직한 규제를 없애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라고 일축했다.

    재계 등이 ‘낙수효과’를 통한 경제부양책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재벌 대기업의 일자리 늘리기만을 바라보는 게 실패했다는 것은 이미 10년 이상 입증된 일”이라며 “(재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경제를 볼모로 그런 식의 프로파간다 또는 공포를 조장하는 공포 마케팅을 하는 것 굉장히 구태의연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정경제가 되려면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재벌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과도한 수직계열화, 하청에 대해서 단가 후려치기로 인해 공정한 경쟁 또는 공정경제라는 것 자체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SBS> 보도로 드러난 삼성 차명부동산 의혹과 관련해서도 “문재인 정부가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받들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영향력이 큰 삼성 재벌 앞에선 작아지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단호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은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삼성 차명 부동산 문제 해결은) 문재인 정부의 나라 바로잡기, 촛불시민혁명 정신을 받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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