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헌법 개정은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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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5일 07: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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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일본은 헌법 개정 문제로 열기가 뜨겁다. 무엇보다도 5월3일이 헌법시행일이기 때문이다. 3일을 기점으로 5월 내내 일본 곳곳에서는 대규모의 헌법집회들이 개최된다. 필자가 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5월3일의 토쿄 히비야 공원의 헌법집회만 해도 4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였다.

    또한,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의 시민단체들과 사민당, 공산당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범정파적인 대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같은 집회에서 사민당의 당수와 공산당의 당수가 나란히 발언을 하는 것은 흔한 장면이 아니다.

    헌법의 계절을 맞이한 일본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올해는 헌법시행 59주년이고, 11월에는 제정 60주년이 된다. 헌법제정 60주년이 되는 올해, 헌법개정 논의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일본 국회 내에서 헌법개정을 위한 절차법인 국민투표법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작년 11월 창당 50주년을 맞아 ‘신헌법 초안’을 발표한 자민당은 6월에 끝나는 이번 국회 회기에서 국민투표법안을 제출하려고 하고 있다. 연립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공명당도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제1야당인 민주당은 자체적인 국민투표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고, 다른 야당인 사민당과 공산당은 국민투표법안이 ‘헌법개악’을 위한 수순에 불과하다며 상정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투표법안은 교육기본법개정안, 공모죄 신설 문제와 함께 5월과 6월의 일본 정치사회를 뜨겁게 달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 5월2일 새벽 발표된 미일 양국의 주일미군 재편에 관한 <최종합의>는 논란에 불을 붙이고 있다. ‘미일동맹의 군사적 일체화’가 전쟁포기와 전력(戰力)보유 금지, 교전권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9조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탈냉전기 세계경영을 위한 비용분담에 일본을 참여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위대의 군대화와 집단적 자위권을 제약하고 있는 9조는 커다란 장애물인 것이다.

    일본 헌법 개정을 추동하고 있는 것은 미국

       
     
      ▲고모리 요이치 ‘9조의 회’ 사무국장
     

    이와 같은 배경에 대해, 지난 4월30일 도쿄에서 만난 ‘9조의 회’ 사무국장 고모리 요이치 교수(도쿄대)는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헌법 9조를 중심으로 한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것이다.

    사실, 2000년 발표한 대일 정책 제언 보고서인 이른바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일본 헌법이 미일동맹의 강화를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던 아미티지는 후일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부장관이 되었다. 그는 2001년 9.11테러 이후 대테러전쟁을 ‘단행’할 무렵 일본 정부에 대해 “일장기를 보여라”(Show the Flag)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또한, 파월 전 국무장관도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헌법9조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보복공격할 당시 해상자위대의 이지즈함을 인도양에 파견한 것이나, 2004년 이라크에 육상자위대를 ‘파병’(일본 정부는 ‘파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고모리 교수는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과 파월 전 국무장관 등의 발언, 요코스카에 대한 원자력항공모함 배치 계획에서 보여지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움직임, 그리고 일본의 역할 확대를 바라는 미국 조야의 입장이 일본 헌법 개정을 추동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일본 보수우익세력이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일본의 보수정치인들에게 독자적인 국가운영의 논리는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일본 정치

    더 나아가 고모리 교수는 전후 일본의 정치는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미국의 논리 내에서 움직여 왔다고 강조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전쟁을 계기로 자위대를 창설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헌법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력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이름은 “자위대”였다. 그러나 그 조직과 체계, 내용은 사실상 전력(군사력)에 다름 아니었다.

    또한 고모리 교수는 ‘록히드 사건’의 예를 들었다. 록히드 사건은 1976년, 미국의 항공기 제작회사인 록히드사가 일본에 항공기를 판매하기 위해 일본 정재계에 ‘검은 돈’을 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정재계에 일대파란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다. 이 일로 인해 당시 정계의 거물이었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수상이 체포되었다.

    록히드 사건은 일본 정재계의 고질적인 유착문제로 유명한 사건이지만, 고모리 교수는 당시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을 미국이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했다. 즉, 록히드의 항공기를 구입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로비를 한 것이 미국이면서, 또한 이 문제를 폭로한 것도 미국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전후 일본 정치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내에는 헌법의 개정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세력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케이단렌(經團聯)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과 다국적 자본이다. 케이단렌은 일본 최대의 경제단체로,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헌법 9조의 개정을 지지한 바 있다. 이들은 해외에 투자한 자신들의 자본을 자국의 군사력을 통해 보호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통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 기업(자본)의 이익이 일치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고모리 교수의 지적이다.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 진출한 기업들이나 중소기업들의 경우 헌법 개정,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에 의해 동북아 주변국들과 관계가 냉랭해지는 것에 대해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능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의 신헌법 초안은 “쿠데타”

    고모리 교수는 작년 11월 자민당이 발표한 ‘헌법개정안’은 사실상 쿠데타적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그 명칭부터가 ‘헌법 개정안’이 아니라 ‘신헌법’(新憲法) 초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자민당 내 개헌세력들은 애초부터 지금의 헌법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았고, 개헌논의가 촉발된 지금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헌법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민당의 신헌법 초안의 헌법 전문의 첫 문장은 “일본 국민은 스스로의 의지와 결의에 기반해 주권자로서 여기 새로운 헌법을 제정한다”고 되어 있다. 이 부분은 자민당이 자주적인 헌법을 만들고 싶어 했던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자랑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본래, 신헌법의 제정이란 혁명이나 쿠데타 혹은 전쟁 등에 의한 근본적인 정치체제의 변혁에 수반하는 것이다. 또한 신헌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예처럼 헌법제정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행하고, 새로운 헌법의 초안을 작성한다. 그러나 자민당의 발상은 기존 헌법의 개정절차에 기반해서 새로운 헌법을 만들겠다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풀뿌리 호헌네트워크를 지향하는 ‘9조의 회’

       
     
    ▲지난 5월3일 토쿄 히비야 공원 공회당에서 열린 5.3 헌법집회.
     

    고모리 요이치 교수가 주도하고 있는 ‘9조의 회’(www.9-jo.jp)는 2004년 6월에 창립되었다. 창립의 배경은 특히, 고이즈미 정권 이후 더욱 노골화된 평화헌법의 개정 움직임에 대한 일본 호헌평화세력들의 위기감이었다.

    국제공헌과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한 대응 등 세련된 논리를 제시하는 개헌세력들에 대해 호헌세력은 이렇다할 효과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활력을 불어 넣은 것이 ‘9조의 회’의 결성이었다.

    ‘9조의 회’는, ‘호헌’이라는 식상한 화두보다는 평화헌법의 핵심인 헌법 9조(전쟁포기와 전력보유·교전권 금지)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흐름을 전면화했다. 발기인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한 9인이었다. 발기인에는 오에 겐자부로 외에도 토쿄대 명예교수인 오쿠히라 야스히로(헌법학자), 평론가인 카토 슈이치 등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저명인들이 참가했다. 특히, 일본의 고질적인 병폐인 정파간 갈등으로부터 한발짝 거리를 두고자 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9조의 회’는 중앙에 9명의 발기인을 비롯한 중앙 강사단을 두고 일본 전역에서 강연활동을 중심으로 한 풀뿌리 호헌평화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필자가 고모리 교수를 만난 4월30일 저녁에도 고모리 교수는 오전과 오후 두 번에 걸친 토론과 강연을 마치고 부리나케 오는 길이었다. 9인이 발기인보다도 오히려 더 바쁜 사람이 ‘9조의 회’의 실질적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고모리 교수라는 점은 이미 일본의 언론들에는 잘 알려져 있는 바이다.

    고모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9조의 회’는 9조의 회 ‘발기호소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9조’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9조의 회’와 연계를 가지면서 지역에, 마을에, 학교에, 직장에 모임을 만들자는 기조라고 한다. 즉, ‘9조의 회’는 전국적인 단일조직을 지향한다기보다는 헌법9조의 개악 혹은 폐기, 헌법 개악에 반대하는 전국 곳곳의 자발적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운동의 결과 2006년 4월 현재, 전국에 ‘9조의 회’와 연계를 갖고 활동하는 단체가 약 4천7백여 개에 이르고 있다.

    헌법9조가 지향하는 이념을 전세계로

    9조의 회 이외에도 사민당(구 사회당)계의 단체인 ‘헌법 행각(行脚)의 회’도 있다. 성격이나 활동방식은 ‘9조의 회’와 거의 비슷하다. ‘헌법 행각의 회’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도이 다카코 전 사민당 당수, 토쿄대의 강상중 교수, 재일교포 인권운동가인 신숙옥 씨 등이 참가하고 있다. 고모리 교수는 ‘헌법 행각의 회’와도 연대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부러 두 개의 단체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9조의 회’는 그런 단일조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필요한 측면에서 연계”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헌법9조가 지향하고 있는 이념 즉, 전쟁포기와 전력보유 금지, 국가의 교전권 금지를 세계 평화의 대안으로서 적극적으로 확산시켜 가고자 하는 흐름도 전면화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의 방어적, 수동적 대응에서 오히려 9조의 이념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제기해 가는 운동이다. 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일본의 국제교류 NGO인 피스보트(Peace Boat)이다.

    고모리 요이치 교수 또한, 이러한 흐름에 대해 무척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특히, 일본의 평화헌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즉, 일본의 평화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처참한 살육전과 원자폭탄 투하라는 인류의 비극적 역사를 교훈으로 해서 만들어진 헌법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원자폭탄 투하 이전이었던 1945년 6월26일 서명된 유엔헌장은 51조에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에, 일본의 전후 헌법은 자위권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토록 ‘강한 평화주의’를 택했던 일본의 평화헌법이 이제는 개별적 자위권은 당연시하고, 집단적 자위권마저 인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격세지감이라고 할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작년 11월 자민당의 ‘신헌법초안’에 따르면 1항 전쟁포기 조항은 그대로 두지만, 2항에 자위군(自衛軍)을 명기하고 자위군의 “국제협력활동”도 인정하기로 했다. “국제협력활동”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의 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개헌세력들 내에는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이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유엔헌장과 일치한다는 주장들도 있다. 또한,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헌장과 정신에 따라 행사될 것이라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 용인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모리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 헌법의 역사와 의미를 모르는 논리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성찰적 관점에서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과의 연대를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논쟁의 쟁점들을 보면,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저지른 과오와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자신의 문제와도 많은 부분이 오버랩된다.

    한국의 헌법에 침략전쟁 거부, 유엔헌장 준수, 국제평화주의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또한,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파병을 한 것도, 이라크전쟁에 파병을 한 것도 ‘위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 스스로가 무력화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이고 조항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가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 뿐만 아니라, 보수우경화와 관련된 전반의 문제들을 다룸에 있어 성찰적 관점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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