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판 '후세인'의 핵위기 정치
    By
        2006년 05월 15일 02:2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이 성공한 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이란에서 쫓겨났고 곧 이어 신정독재체제가 들어섰다. 외세와 팔레비 왕조에 맞서 봉기했던 이란 국민들은 오히려 민주적 제권리를 박탈당하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혁명이 성공한 다음 해인 1980년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침공으로 8년간의 가혹한 전쟁에 돌입해야 했다.

    제국주의 쫓아낸 자리에 신정독재체제

    전시체제에서 민주주의나 자유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8년전쟁이 끝난 뒤에는 주변 국가들의 불안정한 정치상황과 서방세계와의 단절로 인한 고립으로 인해 이란의 개혁은 계속 미뤄져 왔다.

    현재는 세상을 떠난 이란혁명의 상징인 지도자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후계자인 하메이니가 절대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란의 이슬람교의 원리주의자들은 알라가 그를 지도자로 임명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권위는 호메이니의 권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돼왔다. 호메이니 체제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반체제 시위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학 내에서 일어나기도 하여 그의 권위가 부정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7년, 개혁파의 하타미 대통령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민주적 제권리를 신장시킬 것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란의 정치체제 속에서 하타미의 개혁정책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집권했던 8년 동안 이란 국민들은 그의 개혁정책에 기대를 걸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마저도 말살 당한 상태에서 실업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만 갔다. "정부를 비판한 다음 날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이란 사람들의 공포에 짓눌린 말은 이란의 상황을 단면적으로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인권문제뿐만 아니라 실업률 통계를 본다면, 2004년도의 청년층(15세에서 29세)의 실업률은 52%이며, 전체 실업률은 16%이나 비공식통계는 두 배가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국민들 태반이 일자리 없이 힘겹게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 동안 축적된 이란 국민들의 불만은 2005년 6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를 통해 터져 나왔다. 대선의 결과만 보더라도 이란 정부는 국민들 대다수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밀스러운 선거보이코트운동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4천 6백만의 유권자들 중 단지 2천 4백만의 유권자들만 투표했다.

    50%가 조금 넘는 투표율은 이란에서 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저조한 투표참여율은 이란에서는 꽤 충격적인 일이기도 했다. 서구세계의 저조한 투표율은 정치적 무관심에서 나온다지만 높은 정치적 관심을 가진 이란인들의 자발적인 투표불참은 이란의 정치체제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하메이니의 지원을 받은 극단적인 보수파인 아마드나제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미국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자극하는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홀로코스트가 정말로 일어났는지 의심한다"는 말이나 "이스라엘은 지도상에서 쓸어버려야 한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발언이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으로서 이 같은 발언은 철두철미한 정치적 계산 속에서 나왔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아랍세계에서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으로 반미 반유대주의적 정서가 팽배한 아랍세계를 자극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과 서구세계에 맞서는 유일한 아랍세계의 맹주가 되기를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국제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과 이스라엘을 자극하여 첨예한 긴장상태를 고조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내정의 실책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무마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사실 아마드네자드 대통령의 극단적인 반유대주의적 발언은 이란의 "핵개발은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라는 입장을 상쇄시키는 ‘악수’였다.

    당연히 그의 발언이 나온 후부터는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여론마저도 부정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물론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을 국가의 존립위기로까지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군에 의한 이란의 핵시설 폭격 가능성이 전면에 떠오르기도 했다.

    한편, 핵개발문제로 인한 이란에 대한 타격은 이라크 문제로 인해 부시 행정부에게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30%로 추락했고, 최근 발생한 CIA국장의 사임은 권력의 내부가 균열되면서 치열한 암투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라크에서는 미군측의 사상자가 계속 증가하여 이미 2,500 명이 사망했고 수만 명이 부상당했다. 더욱이 내전의 조짐을 보이는 이라크가 안정을 찾으리라는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당연히 미국이 이란을 전면적으로 침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미국 정부 내의 강경파들은 이란에 대한 선제타격의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고 있다. 이란의 핵발전소와 군사시설을 타격하면 체제에 불만을 품은 이란 국민들이 반정부투쟁을 벌여 이란의 체제를 붕괴시킬 것이란 전쟁시나리오를 퍼뜨리고 있다. 어쨌든 강경파들은 이미 이란을 타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로 기회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까지 아마드네자드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사담 후세인의 길을 답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사담 후세인처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판단을 하기에는 아직도 이른 감이 있다. 미국과의 전면적 대립이 내부의 정치적 위기보다 체제에 더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막판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다. 유럽이나 러시아를 내세워 핵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체제의 안전보장을 약속 받는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