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의 속살, 북한의 진화
    [책소개]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주성하/ 북돋움)
        2018년 10월 06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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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관계가 사상 가장 극적인 터닝포인트를 맞은 지금, 평양과 서울에서 다채로운 삶을 체험한 주성하 기자가 북한의 중심 평양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또 파격적으로 드러내 우리의 통념과 편견을 깨뜨린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 기자’인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현재 평양에 거주하는 주요 인사들과 긴밀하게 연락했고, 최근까지 평양에 살다 온 탈북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지인들이 말하는 평양을, 역시 평양에 살다 온 기자가 글로 옮긴 것. 덕분에 독자는 돈주(신흥 자본가)들의 호화 일상부터 랭천동 빈민층의 어두운 삶까지, 평양 시민이 애용하는 ‘치맥 배달’ 서비스부터 통일 시대 창업 아이템까지, 세세하게는 지금 핫한 음식점의 위치와 맥주 한 병 값까지 상상을 초월한 북한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북한은, 특히 평양은 지금 시장경제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TV 화면에 비친 것처럼 거리만 달라진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크게 변했고, 경제 활동 방식도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평양을 수박 겉 핥기로 알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평양에서 꿈틀대는 엄청난 욕망이 어떤 배경과 힘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아야 북한의 앞날도 볼 수 있다”며 이 배경과 힘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북에서 보내온 진짜 북한 이야기
    현지인의 생생한 증언으로 낱낱이 드러나는 내밀한 속살들

    이 책은 현재 평양에 사는 시민들이 외부에 소개하는 평양의 속살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평양에 적을 둔 주민들과 가장 최근에 평양에서 온 탈북자들, 그리고 역시 평양에서 살았고 남쪽에 와서도 계속 북한을 취재해온 기자의 지식과 경험이 함께 만든 책이다. 저자는 원고를 다 쓴 후 이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북한의 한 엘리트에게 잘못된 내용이 있는지 봐달라며 원고 파일을 보냈다. 최종 감수를 맡긴 것이다. 다음 날 그에게서 이런 답장이 왔다.

    “오늘 눈을 피해 가면서 기자 선생님의 책을 다 보았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가지가지 내용들도 다 포함되어 있더군요. 한마디로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상을 새롭게 알 수 있는 백과전서적인 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남쪽 사람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고 있는 북한 관련 정보로는 절대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제일 좋은 방법은 사실을 접하는 것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18년 9월 현재 이 책은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고급 식당에선 팁을 줘야 하는 거 아시나요?
    평양 시민이 남조선 인민에게 알려주는 ‘평양 사용설명서’

    평양의 고급 식당에선 5~10달러의 팁이 관행이다. 물론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팁을 주면 ‘접대원 동무’들의 봉사성은 훨씬 올라간다. 고급 식당에 근무하는 여성들은 한국 같으면 연예계로 나갔을 만한 북한 최고의 미모를 가지고 있으며 재능도 뛰어나다. 과거와 다르게 평양의 고급 식당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고급 식당에 비해 급여와 대우가 훨씬 좋다. 따라서 접대원 동무의 수준도 훨씬 높다.

    평양에선 ‘치맥 배달’도 가능하다. 웬만한 대동강맥줏집에서 마시는 맥주보다는 이런 배달 맥주 맛이 훨씬 더 좋다고 한다. 전문 배달로 먹고사는 ‘전문판매공’은 평판이 좋아야 계속 주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맥주를 사 나른다. 이들은 ‘경흥관’ 등 유명한 맥줏집에서 뒷문으로 뽑아낸 맥주를 곧바로 밀봉해 냉동 보관했다가 배달한다. 배달된 대동강맥주는 1리터에 북한 돈으로 5,000~6,000원(한국 돈 700~800원).

    평양 아파트의 로열층은 어디일까? 엘리베이터가 없는 10층 이하 아파트는 2~3층, 엘리베이터가 있는 20층 이상 고층아파트는 7~12층이다. 층별 가격이 크게 달라, 돈을 벌어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이사 오면 평양 사람들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북한의 아파트 분양 시장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데, 선분양가와 후분양가의 가격 차이는 대체로 2배 이상이다. 물론 후분양가가 높다. 모든 거래는 달러로, 한꺼번에 줘야 한다.

    2018년 4월 한국 예술단의 평양 공연 ‘봄이 온다’ 이후 윤도현이 부른 노래 ‘1178’이 평양에서 인기를 얻었다. “처음에 우리는 하나였어”라는 가사를 들으며, 통일은 자기들만 외치고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북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선희의 노래 ‘아름다운 강산’을 듣고 “남조선 사람들의 자기 땅에 대한 자부심이 저 정도인데, 우리는 아직도 남쪽 사람들이 북한을 동경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북한의 ‘갈라파고스식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백과사전
    억눌린 욕망이 분출하는 도시 평양에서 북한의 미래를 보라

    북한 체제는, 특히 평양 사회는 현재 시장경제로 급격히 진화하는 중이다. 이 진화는 매우 독특하다. 과거의 소련과 동유럽처럼 사회주의 붕괴 후 시장경제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며, 현재의 중국과 베트남처럼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진화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은 사상 유례없는 봉쇄 속에서, 세계와 분리된 채 스스로 진화한다. 북한의 ‘시장경제화’는 ‘갈라파고스식 진화’라 할 수 있다. 비교할 만한 유사 사례가 없는 까닭에, 이 진화를 풀이하는 데 참고할 만한 도서도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어떤 안경을 쓰고 북한을 봐야 할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정표를 향해 간다고 하지만, 정작 실제로 가는 길은 반대 방향이란 것을 알게 된다. 비유하자면, 겉은 꽉 닫힌 용기에 든 밀가루 반죽으로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무수한 효모 활동으로 빵으로 숙성되는 과정임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평양에서 꿈틀대는 엄청난 욕망이 어떤 배경과 힘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아야 북한의 앞날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책을 썼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평양은 북한 진화의 중심지다. 이 책이 지방이 아닌 평양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평양에서 꿈틀대는 엄청난 욕망이 어떤 원리와 힘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안다면, 북한이 어디로 갈지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독창적인 가치는 단단한 평양의 수박 껍질을 벗기고, 보기 힘든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는 데 있다. 읽고 나면 ‘혁명의 도시 평양’이 ‘욕망의 도시 평양’으로 새롭게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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