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에도 서천에도 새만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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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5일 10: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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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으면서 질문하기 넷째 날이다. 접산리를 떠나 금강을 건너 충청남도 서천에 도착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리와 발의 통증을 호소했다. 이날 마침 연구실 동료 중 한의학을 공부하는 선배가 ‘위문진료(?)’를 위해 찾아왔다. 저녁밥을 먹은 후 우리 숙소는 순식간에 임시병동이라도 된 듯싶었다.

    이날의 만남은 8시부터 시작됐다. 걸으면서 질문한다는 것은 피곤한 상황에서도 만난 사람들에게 열정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신체를 키우는 것이기도 했다. 마치 운동이 위기에 처한 자리에서도 다시 시작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날 대화에는 서천 지역 농민회와 전교조 그리고 민주노동당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그 분들의 고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개발의 이중성이었다.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고려할 때 반대만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대체 서천의 현실, 아니 한국의 대부분의 농촌이가 처한 현실이란 어떤 것일까?

       
     

    텅 비어가는 것도, 개발로 몰려 들어오는 것도 다 문제

    첫째,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지역들은 발전을 논의하기 이전에 활기 자체가 부족하다. 농사를 짓는 인구도 40대 이하는 찾을 수 없고, 대개가 60대들이다. 유권자의 65% 이상이 60대인 것이다. 이는 단지 농촌이 늙어가고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텅 비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개발이 추진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선거철마다 이용해 먹는 정치인들의 이해타산도 보였다. 모든 개발이 지역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 할일이 없어 사람들이 떠나가고 있는데, 개발이라도 해야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고 “그래야 지역경제도 살아날 것 아니냐”고 외치고 다닌다. 문제는 이런 선전이 점점 활기를 잃어가는 주민들의 마음을 울린다는 슬픈 현실이다.

       
     

    둘째, 만약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현재, 서천 땅 중 일부는 값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천 지역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사람이 ‘비어가도 문제’이지만 ‘몰려들어도’ 문제이다.

    개발이라는 건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개발이 국책사업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은 새만금 간척 사업 같은 것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천에도 공단을 만들기 위해 바다를 메우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군산 쪽 공업단지도 놀고 있는 상태에서 서천의 공업단지에 기업이 들어오긴 어렵다고 한다.

    현장의 아픔을 논문의 주석 정도로 보면 안 된다

       
     

    새만금은 새만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산에도 서천에도 있었다. 다른 경우 개발은 현지 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지인을 위한 것이 되기 쉽다. 서천에도 투기 바람이 부는 지역이 있다. 그러나 풍경이 좋고 땅값이 비싼 곳은 외지인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만난 농민회 사람들과 활동가 분들은 서천 땅을 개발에 내놓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야기될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서천에 뿌리박고 사는 평범한 주민이나 농민들의 삶이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외지인들에 의한 투기성 개발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현장의 아픔과 고통을 주석으로만 단다” 그 말은 치열한 현장을 무시하는 관리자와 같아진 지금의 대다수 지식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언론운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한동안은 언론고시에 붙기 위해 공부를 한다. 외우기 위주의 공부를. 그 뒤엔 서울에 취직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그들이 말하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싸울 사람이다. 서천에는 <뉴스서천>이라는 지역 신문사가 있다. 돈을 많이 벌 수는 없지만, 치열하게 보도하고 여론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이런 공간이 지역에 많이 생겨야 한다고 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서울에서 지역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지역에서 함께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서 지역 얘기하지 말고, 지역으로 내려와라

    그분들이 말씀해 주신 문제들은 새만금에서도 대야 농민회에서도 접했던 문제들이었다. 우리들도 언론에서만 보고 접했던 내용들을 직접 들었다. 그것은 우리의 감각을 조절하게 하는 현장감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우리들은 그분들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대로 그 분들이 우리들에게 물어오고, 우리들에게 ‘지역 경제학의 토대 마련’을 주문하시면서 지식인의 역할을 언급하셨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개발의 이중성을 벗어나는 것. 그것은 바로 이곳에 직접 와서 이곳 대다수 농민과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단지 서천에서만 서천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돌아간 뒤에도 이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어떤 현장성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발의 망령에서 희생을 강요하는 자와 희생자는 누구인지 분명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일도 걸으면서 계속 물을 것이다.

    다 같이 잘 사는 방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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