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적 형제애"
    2006년 05월 15일 08: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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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반대말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배우던 어린 시절, <동물농장>이나 <1984년>은 종종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의 ‘사회주의 체제’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소설로 제시됐다. <1984년>의 ‘빅 브라더’는 스탈린이나 김일성이었고 <동물농장>은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풍자로 읽혔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을 쓴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의 사회주의라로서의 생애와 사상은 가려져 있었다. 가령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고 난 후 쓴 <까딸로니아 찬가>라든가 몇가지 짧은 에세이 그리고 좌파언론 <트리뷴>에서의 활동 등을 보면 그의 사회주의적 지향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보통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로 정의된다. 거칠게 보면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며 만인은 국가의 피고용인이다. 이는 옷, 가구 등 인민들의 사적 소유가 금지된다는 것이 아니라 토지, 광산, 선박, 기계류와 같은 생산도구가 국가의 자산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가는 유일한 대규모 생산의 담당자다."

그는 1941년 평등한 사회를 염원하는 내용의 소책자 <사자와 일각수>에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사회주의가 모든 면에서 자본주의보다 우월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본주의와 달리 사회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상시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생산되는 재화는 모두 소비될 수 없다. 항상 과잉생산이 되며 실업은 항상적으로 존재한다.…사회주의 경제에서 이러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단지 어떤 재화가 필요한지를 계산하고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생산은 노동과 원료의 양에 의해서만 제한된다."

그는 "생산수단의 공동소유가 사회주의에 대한 충분한 정의가 아니"라며 "소득의 평등, 정치적 민주주의, 모든 세습특권의 폐절" 등이 추가돼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바르셀로나서 발견한 ‘사회주의’

그의 이같은 사회주의적 지향이 분명해진 계기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을 때의 경험이었다.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북동부의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원래 스페인행의 의도는 신문기사를 써보겠다는 것이었지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선거를 통해 들어선 좌파 공화정에 의해 스페인 사회는 크게 달라졌고 대영제국과 그 식민지 인도와 버마 정도를 접해봤던 조지 오웰은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도시"의 모습에 반해버렸다.

식당의 점원은 동등한 입장에서 손님을 맞이했고 격식을 차린 말투는 사라졌다. 사람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 ‘세뇨르’, ‘돈’은 ‘동지'(camarada)로 바뀌었고 팁을 주는 것은 법으로 금지됐다. 물자는 부족했지만 계급의 차별이 철폐된 평등한 도시를 목격한 오웰은 사회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영국에서 작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인 1930년대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비현실적"이었고 당시 영국의 사회주의자들 대부분은 중간계급이 되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거리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있는 바르셀로나의 혁명적 분위기를 접한 그는 바로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의 의용군에 입대한다. 공화파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군과 맞서는 것은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즉시 그 도시의 모습이 내가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고 오웰은 <까탈로니아 찬가>에 기록했다.

좌파의 분열에 좌절하기도

물론 무기도, 제복도 열악했던 의용군이었지만 지휘관과 부하들 사이의 완전한 평등관계, 유럽 각국에서 모여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금세 친해지는 동지적인 분위기는 그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던 사회주의가 실현가능한 어떤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오웰이 몇 달 동안 파시스트와 대치를 하다 휴가를 얻고 돌아온 바르셀로나로 몇 달 전의 바르셀로나가 아니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사라졌고" 파시스트와 맞서 싸우는 좌파 연합진영 안에서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오웰이 속해 있던 통일노동자당이 파시스트가 아니라 같은 좌파와 시가전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양쪽이 휴전에 합의하고 오웰은 다시 전선으로 돌아갔지만 좌파 내부의 분열은 그에게 큰 상처를 줬다. <까탈로니아 찬가>는 이처럼 그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의 감동으로 시작해 스페인을 떠날 때의 좌절감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자신이 속한 통일노동자당 등 혁명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통일노동자당과 스페인 정부 및 공산당 사이의 분열은 전쟁과 혁명에 대한 전략의 차이에 있었다. 스페인 좌파정부와 공산당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우선시하면서 혁명은 잠시 유보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반파시스트 자본주의 국가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일노동자당은 혁명의 승리가 전쟁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소련은 정부와 공산당 편을 들었고 내전의 와중에 통일노동자당 당원들이 체포, 처형되는 사태까지 이른다. 오웰에게 이는 ‘혁명에 대한 배신’이었고 파시즘 승리의 전주곡이었다.

     
   
 

체포의 위험을 피해 스페인 국경을 넘어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1938년 폐렴에 걸려 잠시 모로코에 요양을 갔다가 그곳에서 2차 세계대전의 발발소식을 접했다. 오웰은 스페인에서 싸웠던 것처럼 파시스트와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참전하지 못했다.

1941년 그는 BBC에 입사하면서 언론인의 길에 들어섰다. 2년 뒤에는 BBC를 나와 1937년에 창간된 좌파언론 <트리뷴>의 문학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동물농장>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풍자한 우화소설 <동물농장>은 1945년에 출판됐는데 당시 소련이 영국과 군사동맹관계를 맺고 있어 출판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은 스페인 내전에서 목격한 공산당의 배신과 독선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행복은 사회주의의 부산물"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난 오웰은 영국의 명문 이튼 스쿨을 졸업한 후 버마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식민지에 대한 조국 ‘대영제국’의 착취를 목격하는 것을 견디다 못해 사직하고 유럽으로 돌아왔다.

이후 오웰은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에서 부랑자 생활을 체험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의 문제를 몸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오웰은 빈민가에서의 체험과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희망과 좌절을 사회주의에 대한 옹호와 전체주의에 대한 명백한 반대로 연결시키며 작품활동을 벌이다 1950년 숨을 거두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 <1984년>은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 즉 사회주의의 ‘비결’은 평등 사상에 있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여태껏 (사회주의의) 부산물이었고 우리가 아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적인 형제애이다."

평등과 형제애 그리고 행복.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에 매력을 느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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