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어깨 위로 올라서려는 난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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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5일 08: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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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화에 발을 딛고 사는 존재이다. 고대인들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중세 이후의 인간들은 신의 이야기 안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아갔다. 예컨대 서양의 근대인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자식들이다. 르네상스 시대 학자 베르나르(Bernard)의 격언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보잘것없는 난쟁이다."

   
 
  ▲그리스 디디마 아폴론 두상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타난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성(異性)을 욕망하고, 자신을 뽐내며, 다른 신을 질투하고, 실패한 사랑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는가 하면, 신에게든 사람에게든 복수도 저지른다. 인간의 발견! 엄격한 신의 이름에 갇혀 허덕이던 중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들어 낸 ‘거인’ 앞에서 그들은 그저 ‘보잘 것 없는 난쟁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비록 난쟁이라 하더라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이상 거인보다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신 중심의 세계를 인간 중심의 세계로 바꾸어 냈고, 스스로 신이 되어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제우스의 무기인 벼락에 비유할 수 있을, 과학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의 『그리스 로마 신화』(원제: The Age Of Fable)가 1855년 처음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의 『신화의 시대』가 출판된 1855년은 바야흐로 혁명의 완성기에 속해 있었다. 이미 방직 기계, 증기 기관차 등이 발명되었고 전신기, 윤전기 등이 실용화 되었으며, 그 전 해에는 시카고에 철도가 놓여 동부 해안과 연결된 상태였다.(중략) 이러한 시대야말로 우리의 높은 정신이나 풍요한 인간성을 고대 신화 속에서, 전설의 시대 속에서 구해야 한다고 외쳤던 것이다."(최혁순, 「이 책을 읽는 분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범우사)

그러니까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는 ‘과학의 시대’와 대척 관계를 형성하는 셈이 된다. 차가운 과학적 이성에 맞서기 위해 불핀치가 나서서 고갈되어가는 시적 상상력을 소생시키는 형국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더 이상 근대의 주인이 아니라,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인간의 전도(顚倒)된 처지가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그리스 로마 신화』(『신화의 시대』)가 다시 호출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새로운 르네상스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불핀치가 이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여담 삼아 말하자면, 일본의 ‘근대 초극론(近代超克論)’은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신화와 결합시킨 천황의 재발견을 통해 일본은 근대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일본식 근대'[新體制]로써 ‘서구의 근대'[舊體制]를 뛰어넘고자 하였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못한 한계는 여기서 배태되었고, 파시즘으로 귀결한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게르만의 신화를 현재로 불러내어 민족의 우수성을 훈육하였던 독일 또한 마찬가지다. 두 나라 모두 근대의 질서를 수긍하며 근대를 넘어서겠다고 발버둥쳤던 꼴이다.

반면, ‘신라정신'[風流道]을 되살려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일으키자는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범부(凡父) 김정설(金鼎卨)의 노력은 김지하(金芝河)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내면적인 명상가. 수행자인 ‘요기'(Yoggy)와 외부의 사회질서와 대결하여 바꿔 나가는 혁명가 ‘싸르'(Ssar)를 결합하여, 김지하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을 ‘요기-싸르’로 규정한다. 한민족(韓民族) 신화는 ‘요기-싸르’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발견되며, 이로써 근대의 한계와 맞서게 되는 것이다.

1996년 초판이 발간된 유시주의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근대와 맞서려는 설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저자 유시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진보적인 색채를 덧입게 된다. 가령 코카서스의 산정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심부름꾼 헤르메스를 꾸짖는 장면은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들어있지 않다. "헤르메스여, 이 정도 고생이면 말 한 마디를 아끼는데 그대는 어찌 그리 비굴한가?" 일신의 안락을 거부하고 대의에 따랐던 프로메테우스의 면모가 한껏 부각되는 순간이다.

유시주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김남주를 살려내고, 윤동주의 「간」을 설득력 있게 분석해 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프로메테우스를 현재 한국의 상황 속으로 끌어들인다. 전체적으로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기술되었다. 그러니 신화의 독법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일독할 필요가 있겠다.

* 이 글은『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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