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잎 클로버, 세잎 클로버
    [행복칼럼] 행복은 '실천적 결과'
        2018년 10월 04일 11: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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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서 찾아볼 문장이 있어 책장을 넘기는데 뭔가가 발밑으로 떨어졌다. 뭐지 싶어 집어 들어 보니 바싹 바른 네잎 클로버였다. 그 옛날 난생 처음으로 네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마치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며 책갈피에 고이 끼워 둔 것이었다.

    얼마 전 미국 버지니아주의 스폿실베이니아에 사는 케이티 보카라는 소녀가 1시간 동안 무려 166개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어디 그 소녀뿐이랴. 우리 모두는 세잎 클로버가 무리지어 피어있는 곳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추억이 있다. 세잎 클로버 사이에서 운 좋게도 네잎 클로버를 발견한 당사자는 주변에 있던 친구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사람들이 네잎 클로버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네잎 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느라 클로버의 원조인 세잎짜리는 그냥 지나치거나 함부로 짓밟는다.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데….

    미국의 저명한 작가인 윌리엄 피터(William Peter)의 글에 이런 일화가 있다.

    어떤 소년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주웠다. 그 돈으로 먹고 싶었던 사탕을 사고, 갖고 싶었던 유리구슬도 사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 후로 소년에게 한 가지 습관이 생겼다. 길을 걸을 때면 늘 땅만 보며 다니는 것이었다. 땅만 쳐다보고 다니다가 길에 떨어져있는 단추, 구슬, 동전, 머리핀 등을 주었고, 가끔은 동전이나 구겨진 지폐도 주었다. 한 평생 땅만 내려다보며 다닌 결과 단추 29,519개, 머리핀 54,172개, 동전 수천 개, 그리고 유리구슬과 자질구레한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땅에서 무언가를 얻는 것에만 열중했던 그는 행복했을까? 소년은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 한여름의 뭉게구름,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다.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한 적도 없었고, 그 향기를 맡아 보지도 못했다. 계절을 견디며 나무에서 탐스럽게 익어 가는 과일들도 보지 못했고, 귀여운 아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본 적도 없었다. 땅만 쳐다보고 다니느라 허리가 일찍부터 구부정해졌으며, 어깨는 축 쳐졌고,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이 소년만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을 좇는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운을 부른다고 알려진 것들에 열광한다. 럭키 세븐(LUCKY SEVEN)이라고 통하는 숫자 ‘7’, 우리나라 설날 새벽에 그해의 복을 조리로 일어 얻는다는 뜻에서 부엌이나 안방, 마루 벽에 걸어 놓는 ‘복조리(福笊籬)’, 앞발을 들고 웃는 모습의 일본 고양이 캐릭터 ‘마네키네코’. 미국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영화 <상류사회>에 같이 출연했던 프랭크 시나트라로부터 선물 받고서 모나코의 왕비가 되자, 행운의 아이템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미국 2달러 지폐 등등….

    행운이란 뜻하지 않은 좋은 운(運)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행운은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복권 당첨자들이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행복감이 더 높았다. 즉 특별한 노력 없이 얻게 된 복권 당첨이라는 행운이 행복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2001년 개봉된 스페인 영화 <인택토(Intacto)>는 행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행운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스페인의 해안에서 좀 떨어진 섬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는 노인 사뮤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막사에 숨어 있던 유태인들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았고 35년 동안 러시안룰렛 내기에서 이겨온 억세게 운이 좋은 노인이다. 자신이 이토록 행운아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카지노에서 도박사들의 행운을 빼앗아온 부하직원의 행운을 훔친다. 이 영화에서는 타고난 운이 있는 사람에게 또 다른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운이 좋은 사람들끼리 몸이 닿으면 마치 삼투압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운이 더 좋은 사람에게로 행운이 고스란히 옮겨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뮤엘은 자신의 행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즉 영화 제목처럼 ‘손대지 않은’, ‘완전무결한’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카지노 지하에 비밀공간에서 지내며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며 살아간다. 수수께끼 같은 행운 집착 때문에 암울하게 때로는 잔인하게 ‘행운 뺏기 놀음’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노라니 내게는 언제쯤 행운의 대박이 터지려나 하는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다.

    행복(幸福)이라는 한자도 행운처럼 우연을 뜻하는 행幸이라는 단어와 복福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럼 영어는 어떨까? 행복을 나타내는 영어 happiness의 어원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뜻하는 중세 영어 hap이다. ‘어떤 기회로(by chance) 무슨 일이 발생하다’라는 뜻의 happen과 어원이 같다. 실제로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행복을 우연히 찾아오는 사건으로만 본다면 자칫 행복이 행운과 다를 바가 없다.

    미국의 정신분석의사인 칼 메닝거(Karl Augustus Menninger)는 “영어의 행복이란 단어 happiness는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운명의 힘이 아니라, 본시 옳은 일이 자신 속에 일어난다는 뜻을 가진 happen에서 나온 말이다”라고 했다. 즉 행복은 그 사람의 실천적 결과라고 본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필자가 몇 년 전 전공저서가 아닌 난생 처음 심리에세이 ‘마음 극장’이라는 책을 발간한 건 행운이며 행복이었다. 정신과 폐쇄병동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면, 그 경험을 그냥 묻어두지 않고 오랜 시간 끙끙대며 책으로 써낸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낸 것이므로 행복인 셈이다.

    길에서 우연히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주운 이후 땅만 보고 다니다가 더 많은 진정한 삶의 풍경을 놓친 소년처럼 되지 않으려면, 행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 지하에 몸을 숨기고 사는 노인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더라도 이미 내게 와있는 행복을 잘 살펴보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생성함으로써 행복 온도를 올려야겠다.

    원하는 것도 인생의 목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행운은 그들에게서 아무 의도도 발견할 수 없기에 그들 곁을 지나쳐 버린다.”

    탈무드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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