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추리 가는 길
        2006년 05월 15일 0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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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 노태우 군사독재시절. 늘 경찰에 원천봉쇄 되었던 전국노동자대회의 장소를 알기 위해 전화를 걸던 기억이 떠올랐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철수가 책 2권을 가지고 갔다"는 대답을 듣고 집회 장소를 알아낸 후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 산을 넘어 노동자대회에 참가했었다.

    14일 아침 9시. "지방대오 둔포리, 수도권 계양5거리에서 본정리 진입"라는 문자가 찍혔다. 경찰의 검문에 대비해 조끼도 입지 않고 가방도 들고 오지 않았는데 마음은 15년 전 그 때처럼 조마조마했다. 평택극장 앞에서 30분을 넘게 기다려 15번 버스에 올랐다.

    군문다리에서 검문은 시작되고

    9시 50분. 평택역을 출발한 버스가 채 10분도 달리지 않았는데 갑자기 멈춰섰다. 1010 부대 전경들이 군문다리 입구를 막아선 채 차량을 일일이 검문하고 있었다. 한 경찰이 버스를 향해 소리치더니 경찰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버스를 막았다. 한 경찰관이 버스에 올라타더니 "오늘은 외지인들을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버스기사는 시동을 껐다.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멀쩡한 버스를 왜 막아?" "전두환 때도 이러지 않았어" 집회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탄 승객도 있었다. "엄마, 군문다리에서 버스를 아예 잡아서 집에 못 가고 있어. 나 집에 데려다 줘"라며 엄마와 통화하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버스에서 내린 김호숙씨(50)씨는 경찰을 향해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면 어떡하자는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김씨는 "객사리에 있는 한 교회의 장로님과 10시 30분에 처음 만나기로 했는데 이렇게 봉변을 당하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14일 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 논길을 달려오고 있다.
     

    또 한 대의 버스가 멈췄다. 버스기사까지 내리자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경찰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500여명으로 늘었고, 아예 다리 전체를 막았다. 김용한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의 차량도 어김없이 막혔다. "여러분은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경찰 책임자 나오세요. 선거운동 방해하지 말고 길을 터 주세요" 그러나 경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도, 언론사도 못 들어가

    기자들의 차량도 예외는 아니었다. MBC,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등 보도차량들도 범국민대회 장소로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MBC 기자가 경찰에게 차량을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경찰은 기자증을 가진 사람만 들여보낼 뿐 차는 보내주지 않았다. 군문다리 입구에 내린 150여명의 사람들은 도로에 주저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대로 여기서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 지역 신문사 기자가 알려준 우회도로를 찾아 차를 돌렸다. 경찰의 봉쇄로 군문다리에서부터 평택역으로 향하는 3Km에 이르는 긴 구간에 차량이 꽉 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일요일 교회도 못 가게 막는 경찰이 어딨어?", "왜 집에 못 가게 하는 거야" 우리는 창문을 열고 소리치는 운전자들의 분통을 뒤로 한 채 대회장으로 향해 차를 달렸다.

    한겨레 기자의 차를 얻어타고 본대회 장소로

    차를 여러 번 세워 길을 물었고, 길을 잘 아는 현지주민과의 수 차례 통화 끝에 45번 국도 계양5거리 방면으로 향했다. 본정리로 향하는 2개의 길은 봉쇄되어 있었고, 입구에는 출입을 저지당한 사람들이 경찰에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군문다리 첫 검문은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후에는 무사통과였다. 언론사 취재차량이라는 이유로 세 차례의 검문을 통과했고, 다른 사람들은 한 시간씩 걸어 들어오는 논길을 승용차로 달릴 수 있었다.

    논에 들어가 농약을 뿌리고 논일을 하는 농민들의 모습 뒤로 멀리 형형색색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 위로는 헬기가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반대편 차창을 보자 경찰의 경비망을 뚫고 50∼100여명씩 짝을 찌어 뛰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 14일 범국민대회 도중에 경찰헬기가 저공비행을 하며 불법집회 중단을 요구하는 ‘삐라’를 뿌리고 있다.
     

    11시. 본대회 예정시간에 마침내 집회장소에 도착했다. 본정2리 입구에 500여명의 사람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대의 경찰버스가 입구를 틀어막았고, 그 사이사이를 경찰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시위대를 눈앞에 두고도 합류할 수가 없었다.

    "논 한 마지기라도 사줬어? 미군만 여기 들어와 살면 돼?’

    대추리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한 아주머니의 험한 욕설이 쏟아졌다. "××놈들아 왜 막냐? 차를 다 빵구내고 석유를 싸질러야지 ××놈들" "농사 못 지어서 눈깔이 뒤집혔는데 왜 길까지 막는 거여?" "논 한 마지기 장만할 때 지들이 한 마지기라도 사줬어? 미군만 여기 들어와 살면 돼? 정치하는 놈들 다 나오라고 그래"

       
     
    ▲ 물가에서 뛰어노는 천진난만한 아이 뒤로 경찰병력이 경계를 서고 있다.
     

    11시 50분. 서울을 출발한 지 5시간만에, 30분 거리인 평택역을 출발한 지 3시간만에 집회장소에 도착했다. 또 다시 몸싸움이 시작됐다. 경찰은 곤봉을 휘둘렀지만 폭력진압에 대한 비난을 의식했는지 조심하는 것 같았다.

    시위대는 경찰을 밀어내고 집회 장소를 넓히기 시작했다. "평택은 우리 땅 확장이전 반대한다" "군부대는 철수하라 확장이전 반대한다" 노동자들과 학생들의 목소리가 광활한 논길 위로 우렁차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범국민대회 장소를 향해 난 논길로 경찰의 검문을 뚫고 노동자들과 학생,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오후 3시에 이르자 5천여명에 이르렀다.

    "평택역부터 여기까지 꼬박 4시간을 걸어왔어요"

    "10시에 평택역에 내렸는데 택시도 안간다고 하고 버스는 아예 오지도 않고. 그래서 평택역부터 여기까지 꼬박 4시간을 걸어왔어요" 금속산업연맹 허성관 부위원장만이 아니었다. 군문다리에서 막혀 학생들은 곳곳에서 검문에 걸려 가방을 다 뒤집어까고 버스에서 내려 산길을 걸어야했다. 학벌없는 사회 학생모임 박남규 회원(고3)도 "검문을 피해 4시간 동안 이 동네를 헤맸다"고 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이 모 조합원은 더욱 황당했다. 그와 그의 아내는 10시 평택역에 도착했는데 평택시청으로 모인다는 라디오방송을 듣고 시청 앞으로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온정리로 향했다. 군문다리에서 버스가 막혀 다시 택시를 타고 둔포 입구에 내렸는데 경찰이 가로막아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평택시청에 모인다는 얘기를 해서 다시 평택시청으로 갔다가 다시 택시 타고 온정리 입구에서 내려 50분을 걸어 본대회 장소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데 택시비만 48,500원이 들었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 14일 5천여명의 노동자, 학생, 시민들이 평택 본정리에서 미군기지확장반대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검문 7번 당한 단병호 의원

    검문은 국회의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대추리를 거쳐 이곳까지 오는 데 검문을 7번 당했다고 전했다. 이날 전국에 있는 경찰이 평택에 총집결한 것 같았다. 방송은 경찰병력이 2만명이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민주노총 최용국 부산본부장은 "어제 부산 노동청 집회에 갔는데 경찰이 하나도 없어서 물어봤더니 다 평택에 갔다고 했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그곳은 이미 우리 땅이 아니었다. 따가운 햇살에 모두의 얼굴은 벌겋게 익었다. 더위에, 분노에.

       
     
    ▲ 밭일을 하고 계신 한 할머니 뒤로 경찰들이 어디론가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과 단병호 의원이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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