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녘 들판 가득 찬 탄식…"차라리 죽어야"
    By
        2006년 05월 14일 09:52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연구공간 수유 + 너머’는 ‘FTA 반대, 대추리에 평화를, 새만금에 생명을’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30여 km를 ‘걸으며 질문하기’를 한다. 5월 11일 전북 부안에서 시작해 5월 22일 서울에 이르는 열이틀의 기록을 <레디앙>이 매일 전한다. <편집자 주>

    발바닥에 느껴졌던 갯벌의 감촉을 기억하며, 백합 조개들의 마지막 몸부림에 눈물 흘렸던 한 어민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우리는 오늘도 걸어 나갔다. 내딛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은, 매 걸음에는 우리가 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약속들, 내내 안고 가야할 고민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농민이 써 준 글 ‘서울 젊은이들, 고마워’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서 다다른 곳은 군산시 대야면 접산리. 마을의 지형이 꼭 나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나부뫼’라는 이름이 한자어로 바뀌면서 ‘접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곳 쌀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며, 농민 회관 앞 계단에 걸터앉아 우리를 반겨 주시던 농민 분들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온다며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계시던 농민 분들은 ‘서울에서 온 젊은이들, 그리도 고마워’라는 제목을 달아 손수 쓰신 글을 나누어주셨고, 생각하고 계신 것들에 대해 생생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한미 FTA라는 건 추상적인 지표와 막연한 환상으로 가득 찬 무언가가 아니라,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그분들의 일상을 헤집어 놓을 실제적인 위협이었다. 가격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농약을 거의 쓰지 않으신다던 분, “이제 더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텐데, 왜 그렇게 기어코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하시던 분, 지난 해 여의도에서 항의하다가 맞아서 팔과 다리를 다치셨다던 분, 그런 그 농민 분들의 삶에 대한 위협 말이다.

    차라리 죽어야 한다고, 재앙이 일어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는 말은 결코 접산에서 처음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부안 대추리 집회에서도 그랬고, 계화도 어민들에게서도 그랬다. 다수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을 강요당하며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는, 이 사람들의 심정만큼 처절한 것이 있을까.

    FTA는 우리가 받은 하나의 선물

    한편 접산리의 농민 활동가 한 분은, 이 FTA라는 것을 하나의 선물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해주는 선물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 이 싸움의 길 위에서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삶을 더욱 단단하게 엮음으로써 다양한 삶들의 권리를 지켜낼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나 재앙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심지어 선물이라 표현될 정도로 모두의 삶을 진실하고 굳건하게 만들어 줄 싸움의 길.

       
     

    접산리 농민 분들의 고민들 속에서 그 희망을 본다. 그분들의 걱정은 자신의 삶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계화도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녀. 조개를 못 캐잖어. 이제 갯벌이 썩어나가서 고약한 냄새가 엄청나게 날거야.” 논밭에 씨 뿌리고 거두는 것이나 갯벌에서 조개 캐는 것이나 매한가지라며 어민들의 처지를 걱정하셨다.

    대추리 주민들의 삶이 군화 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것에 분노하시며 며칠 후에 있을 집회에도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접산리 농민 분들의 목소리는, 그 사건들이 저 멀리서 일어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문제임을, 모두 함께 싸워서 이들의 삶을 지켜내야 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농민 분들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던 든든함은, 바로 첫째 날 부안에서 진행된 대추리 촛불시위에서 보았던 희망의 느낌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농사지은 쌀 조금 줄테니 가져가”

    하루 종일 걷느라 지쳤을 테니, 내일 또 걸으려면 일찍 자야 할 테니 어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시면서 농민 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는데, 그 가운데 한 분이 다가오셔서 쑥스럽게 웃으시며 말씀을 꺼내셨다. 지으신 쌀을 조금 주고 싶다고.

    그 분은, 브랜드가 붙어 값이 비싸지는 것도 아니지만 가능한 한 농약을 적게 써서 농사짓는다고, 한 톨이라도 우리 쌀 먹는 사람은 복 받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었다. 아무 것도 준비를 못해 미안하다며 수건 세 개를 건네주시는 분도 계셨다.

       
     

    일 년 내내 일해도 소출이 넉넉하지 않으니 돈을 거의 못쓰고, 가끔 있는 술자리에서도 늘 사람 수대로 나누어 계산한다던 한 농민 분의 말씀이 생각나서, 그분들의 마음 쓰심이 더욱 고맙고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결코 계산될 수 없는 이 정성과 넉넉함이, 삶의 모든 것들을 자본으로 환산시키려는 어처구니없는 움직임에 휩쓸리지 않도록 열심히 싸워야겠다.

    국익이라는 거대한 환상에 맞서 하나하나의 삶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 치열한 고민들을 몸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기 위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걸어 나가야겠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