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적 성중독에 빠진 한국 사회
    By
        2006년 05월 13일 11:09 오전

    Print Friendly

    지난 3월 최연희 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한 것이 들켰을 때 그는 “술집 주인인 줄 알았다”는 핑계(?)를 댔다. 얼마 전 박계동 의원이 룸카페 종업원의 몸을 더듬는 장면이 몰래 카메라에 포착되어 논란이 일자 그는 “그런 일 할 자리가 아니었다”고 변명(?)하려고 했다.

    정치권 뿌리 놔두고 표면 징후만 만지작

    물론 성추행은 결코 우파들만의 것이 아니다. 소위 진보진영에서도 성추행이 적지 않게 발생한다. 즉, 성추행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병이라고 봐야 옳다. 그리고 환자는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고, 안타깝게도 미성년들까지 별 다른 죄의식 없이 성추행을 저지르고, 또 집단 강간과 같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범죄를 발생되고있다. 다시 말해 성추행은 일상다반사가 됐다.

    그러나 정치권은 성매매금지법이니 전자팔찌니 하며 문제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은 채 오직 표면의 징후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사회에서도 이러한 크고 시급한 문제를 이제 겨우 인식하는 정도이다. 마치 ‘코끼리가 안방에 들어선 것’ 같은 상황을 눈앞에 두고도, 코끼리는 바라보지 않고 안방이 왜 이렇게 갑자기 좁아졌는지에 대해서만 떠들고 있는 꼴이다.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가부장제와 상업주의에서 비롯된 우리의 성, 특히 여성에 대한 무책임한 자세에서 찾을 수 있고, 또 주요하게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퍼져 나온 왜곡된 성관(性觀)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

    얼마 전 영국에서는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영국의 중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이 새로운 데오(방취제)를 펑펑 써서 교사들이 창문을 열어도 수업을 못할 정도로 심한 냄새가 난다고 호소했다는 일이었다. 남학생들은 멋있는 유명 남자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오의 TV 광고를 보고, 이 데오를 쓰면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이 바로 넘어간다는 내용에 속아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어떻게 광고를 보고 그대로 믿을 수 있느냐’고 의심할 수 있지만, 한 두 명이 아니라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수십, 수백 명씩 그랬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남학생들이 TV 광고 속 멋진 남성상에 넘어간 것이 틀림 없어 보인다. TV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한국에서도 가끔 현실이 드라마를 규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드라마가 현실을 규정하는 것인지가 혼동될 때가 있다. 언젠가 어떤 드라마 PD가 신문에 이와 관련한 기고를 냈다. 그는 이에 대해 "천만에!"라며, 드라마가 현실을 규정하는 힘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특히 이른 아침부터 TV를 켜는 사람이 많은 한국에서 TV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바로 이 ‘바보상자’에서 성적인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관습은 너무나 지나칠 정도여서 사람들은 성(sex)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받아 내재화할 위험이 있다.

    한국 TV 성적인 것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줘

       
    ▲ ‘섹시한’ 여가수의 대명사 이효리 ⓒ연합뉴스

    예컨대 ‘성기노출 사건’이나 오후 프로그램에서 야한 옷을 입고 춤추면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대중가수들, 거리에서 ‘성인 퍼포먼스’ 하는 음악밴드 등은 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일부 음악비디오나 노래는 아예 방송불가 처분까지 받는다.

    물론 TV가 절이나 수도원의 분위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자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하지만, 가수들이 데뷔하기도 전에 먼저 누드사진부터 찍어야 음반이 팔린다는 논리나 가수 중에 누가 더 ‘섹시’한지, 즉 누가 더 많은 피부를 보여주면서 더 야하게 춤추는지의 경쟁을 부추기는 상업논리는 이미 병적인 단계에 와 있다. 최근에 에로배우 출신의 여가수들이 데뷔하는 것을 보면 여기서 무엇이 통하는지 알 수 있다. ‘섹스가 잘 팔린다’는 것이다.

    어떤 2인조 밴드의 두 남자들은 노랫말에서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CD 재킷에 한 여성과 함께 벌거벗은 채 성관계(sex)를 연상시키는 사진을 사용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숨기려는 성문제를 밖으로 꺼내기 위한 것’이라고 후안무치하게 주장했다.

    성관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성에 대한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주제화가 부족하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지 무차별적인 섹슈얼리즘의 퍼붓기가 도움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것에 노출된 시청자들이 이런 논리를 본의 아니게 사회의 현실로 전이시키는 더 위험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대중가수들은 성관계를 ‘쿨한 것’, ‘가벼운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등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무대나 음악비디오를 통해 연출해낸다. 이러한 일그러진 성관(性觀)은 암시적이며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보급되고 있다.

    특히, ‘섹시(sexy)하다’라는 말의 무차별적인 사용을 보면 성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할지에 대한 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어, 섹시해 보이네’나 ‘야, 나 섹시해 보이지 않니’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그것일 것이다.

    마치 ‘섹시하다’는 말은 ‘예쁘다’라는 말의 동의어인 것 같다. 즉, 예쁜 것이 섹시한 것이 되고, 또 섹시한 것이 예쁜 것이 된 셈이다. 언어적 혼동에는 인식적인 혼동이 따르기 십상이다. 예컨대 여성의 외모는 섹시하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된다. 한마디로 섹시한 것, 즉 성적인 것(!)이 이제 우리 일상생활에 아주 당연한 ‘대량상품’이 되었다.

    해체주의에 큰 영향을 준 데리다에 따르면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텍스트’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사람들이 무엇을 보게 될 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표현의 구조에 의해서 규정된다. 예컨대 나무를 나무만으로 알아보고, 책상은 책상만으로 알아본다. 나무가 나무이고, 책상이 책상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TV라는 텍스트에 의해 규정받는 우리들

    마찬가지로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성관과 같은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과 사회를 일정하게 보고 느끼게끔 한다. 데리다의 표현대로 말하면, 우리는 세계를 우리 의식에 배어 있는 텍스트를 통해서 알아보는 것이다. 물론 이 텍스트를 쓰는 주체는 바로 우리이지만, 우리가 텍스트에 의해서 규정 받는 측면이 더 강하다.

    성경과 같은 매체의 텍스트는 일정한 ‘문법’을 가짐으로써 정보뿐만 아니라, 문법(사고방식)도 주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대중매체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말 (여)성을 진정하게 해방시키려면 이러한 왜곡된 텍스트와 문법을 문제화해야 한다. 대중매체에서 성적인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것들을 보고 싶어하고 따라 하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얼마나 이 텍스트에 길들여져 있는지, 즉 성중독에 얼마나 빠졌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박계동 의원이나 최연희 의원은 자기가 한 행동을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정치적인 것일 뿐이다. 박계동 의원의 행동을 폭로한 이들은 박 의원이 처벌을 받는 것을 원하겠지만, 그 이유도 역시 단지 정치적인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사건이 잠잠해진 다음에는 또 다시 만질 거고, 또 다시 몰래 찍고 말 거다. 그러나 우리가 왜 도대체 자꾸 그래야만 한다고 착각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보이지 않는 손’, 그것부터 잘라야 하지 않을까.

    강미노_한네스 B. 모슬러라는 독일 이름을 갖고 있는 이방인. 76년 독일에서 태어나 95년 브레멘대학에 입학했다. 이듬해 베를린 훔볼트대로 전학해 문화학과 한국학을 전공했다. ‘한국 민족주의 논쟁에 대하여’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와서 <이코노미21> 객원기자로도 활동했다. 현재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의 정당체제’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