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물 한모금 없이 버텼을 백합,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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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3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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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공간 수유 + 너머’는 ‘FTA 반대, 대추리에 평화를, 새만금에 생명을’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30여 km를 ‘걸으며 질문하기’를 한다. 5월 11일 전북 부안에서 시작해 5월 22일 서울에 이르는 열이틀의 기록을 <레디앙>이 매일 전한다. <편집자 주>

    두 번째 날. 계화도에서 출발한다. 이곳은 새만금 문제의 중심이다. 여기에 서면 초원처럼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다. 물이 들고 나고. 어민들의 삶도 저곳에서 그처럼 들고 났으리라. 지난 밤 주민들은 저 바다를 이야기했다.

    자식 젖 물리려는 듯 몰려오던 바닷물

    단지 삶의 터전으로서 바다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곳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저들은 바다에서 자신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자들을 보았다. 사람의 입이 없지만 충분히 말하고 있다. 밀물 때면 저 바다 쪽에서 갯골로 마치 자식에게 젖이라도 물리려는 태세로 바닷물이 밀려온다.

       
     

    지난달 22일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다. 그야말로 바닷물의 드나듬을 막아 버린 거다. 이걸 무슨 능력쯤으로 여기는 자들도 있다. 함께 있던 우리를 안내한 주민 고은식 씨는 이제 갯벌이 아니란다. 하기야 바다를 잃은 마당에 무슨 면목으로 그것이 갯벌일 수 있겠는가.

    8년 관록의 부녀회장님은 며칠 전 이야기를 했다. 물길이 막힌 지 18일 만에 비가 내렸다. 수줍게 내린 비에도 갯벌은 난리가 났다. 평소 같으면 숨구멍만 보였을 백합이 아예 입을 벌리고 바깥으로 몸을 드러냈다. 더구나 벌로 치면 여왕벌 격인 ‘쿠리’가 갯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저게 사라지면 번식이 그치겠지.

    ‘쿠리’ 네가 사라지면 번식도 끝이겠구나

    주민들은 그냥 조개를 주웠다. 그걸 보고 있던 부녀회장님은 가슴이 너무 아팠단다. 18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그냥 버텼을 녀석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저 놈들이 저렇게 사라지면 백합은 이곳에서 영영 끝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 또 가슴 아프다.

    고은식 씨는 말한다. 어민들이 나서 새만금 간척 사업을 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갯벌에 사는 저들이 가장 절실하게 반대할 거라고. 눈물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차라리 끝을 보고 싶단다. 바다가 뭔가 하길 바란다. 그것은 분명 재앙이지만 그래서 진실을 보여준다. 그래야만 새만금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불행한 희망이다.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올라있는 배. 힘없이 널 부러진 어구들. 바다에 나갈리 없는 부표들. 폐허가 된 농촌을 보는 듯 하다. 나는 어릴 적 뱃고동 소리에 새벽잠을 깨곤 했다. 집에서 바다까지 5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가의 생기와 어부들의 기운을 안다. 포구에서 고기를 푸는 소리. 새벽 어판장의 불야성.

    고기 풀러나간 남편 새벽밥 해 가는 아주머니. 계화도 어부가 바다에 고기잡이 나가고 싶단다. 아주머니는 갯벌에서 조개 하러 가겠단다. 이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요구인가. 그런데 정부는 그들의 바다를 없애 버렸다. 개발 이야기하면서 어부의 일을 뺏은 자들이다.

    오질 않을 미래 들먹이며 현재를 탈취한 자들

    오지도 않을 미래를 들먹이며 현재를 탈취하고 그것을 자꾸 과거로 만들어버린다. 거짓 미래를 통해서 실제 미래가 사라지는 것을 이곳에서 본다. 갯벌에서는 생명들이 사투를 벌이는데 뭍에서는 지방 선거 현수막으로 난리다. 모두 새만금 개발은 자신이 적격이란다. 저 거대한 생명을 죽이는 데 자신이 최대 수완가라는 말일 테다. 코메디다.

    새만금을 벗어났다. 계화도 저쪽 편인 군산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새만금을 절대 벗어날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전북 어디라도 새만금 개발의 진동은 있기에. 아니 실은 새만금은 벌써 지역을 벗어났다. 그것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부를 앞세운 자본은 이제 생명 자체를 위협한다. 지칠 줄도 모른다.

    아마 우리의 걸음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동진강을 향해 열심히 걸었다. 행진의 속도를 내니 걷는 게 느껴진다. 근육이 조금씩 뭉칠수록 걸음은 차분해진다. 걸음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만경강을 지났다.

    오랜 동안 새만금에 물을 붓고 흙을 토한 두 물줄기가 아닌가. 동진강이나 만경강은 여전히 평온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슬프다. 입이 막힌 채 흙을 토하고 물을 쏟아내면 결과는 뻔 하다. 거스를 수밖에. 강은 범람할 것이다.

    강은 범람할 것이다

       
     

    군산에 도착해서 농민 한 분과 이야기했다. 얼마 전 대추리 다녀왔단다. 농사 지어본 사람은 다 안다고 말했다. 자기 손수 모내기 한 논에다 시멘트 쏟아 부으면 뉜들 눈 돌아가지 않겠냐고.

    거대 자본은 국가이익이나 개발 운운하면서 어민과 농민뿐만 아니라 저 자연 모두의 생명권을 박탈한다. 전체 발전을 위해서 불가피한 거라고 위협한다. 새만금도 불가피하고, 대추리 미군기지도 불가피하고, 한미FTA도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어쩜 그렇게 꼭 필요한 일만 할까. 이런 불가피성은 아무래도 저들에게 돌려 줘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저 위협을 이제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뉜들 죽고 싶겠는가. 이제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할 것 같다. 이건 최소한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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