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특구법·인터넷은행 특례법 통과
    민주당, 야당 땐 반대 여당 되니 '찬성'
    평양회담 분위기 이용 날치기, 노동·시민사회 ‘분노’
        2018년 09월 21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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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가 20일 본회의를 열고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지역특구법)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 대규모 규제완화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을 통과시켰다. 규제완화 2개 법안 모두 박근혜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해 좌절시킨 법안들이라 “정부여당이 우클릭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 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이용해 지역특구법 날치기 처리

    국회는 이날 오후 6시 30분경 본회의를 개의해 지역특구법을 재적 299명 중 194명이 재석한 가운데 찬성 151명, 반대 14명, 기권 29명으로 가결 처리됐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합의한 지역특구법은 박근혜 정부가 강력 추진했던 규제프리존과 ‘쌍둥이 법안’으로 불릴 만큼 그 내용이 흡사하다. 특히 기획재정부에 묶여 있는 규제프리존법 일부 조항을 떼어내 지역특구법에 끼워 넣는 등 법안 내 규제완화를 위한 특례조항만 60개가 넘는다.

    전날인 19일 소관 상임위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중소벤처기업소위(중기소위) 위원 사이에서도 법안 자체의 내용이 지나치게 방대하고 복잡한 탓에 이견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소위 위원들 사이에선 전문가 공청회라도 열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고 한다. 결국 이날 소위는 결론 없이 오후 8시 경에 산회, 본회의 상정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여야는 쟁점법안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이날인 20일 오후 2시 예정이던 본회의를 돌연 연기했다. 직후 산자위는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기습적으로 개최해 일사천리로 지역특구법을 처리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소위 위원 간에 이견이 분분했던 법안이 단 하루 만에 합의 처리된 것이다.

    지역특구법은 규제프리존법을 병행한 것으로 의료영리화와 원격의료추진, 비의료인의 의료기기 허용 등을 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이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의료민영화법”, “재벌청부 입법”, “국민의 생명과 안전 위협” 등의 이유로 강하게 반대해 19대 국회에서 폐기됐었으나, 여당이 된 민주당이 20대 국회에 들어 지역특구법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규제프리존법을 부활시킨 것이다.

    무상의료본부 기자회견(사진=유하라)

    노동·시민사회계는 지역특구법으로 인한 무분별한 규제완화의 결과 재앙에 가까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본회의 개의 직전 국회 정문 앞에서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지역특구법 통과되면 공공병원을 사고팔 수 있고 부대사업을 무제한 허용할 수 있다. 병원이 국민의 생명 살리는 것이 아니라 돈벌이 장사를 하게 되는 악법 중의 악법이고 제2의 세월호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노조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지역특구법이 통과되면 가습기 살균제 참사, 라돈침대, BMW 화재사건과 같은 사건이 수백만 가지의 제품 규제완화로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 정책국장은 “지역특구법은 사전예방 원칙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라며 “가습기 참사 이후에 살균제 같은 살생물질에 대해 정부가 안전성 명확하게 검증한 후에만 유통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천명 사망자와 수백만명 피해자가 생긴 후였다. 제품의 안전성을 사전 예방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시민사회계는 민주당이 남북정상회담에 여론의 이목이 쏠린 시점을 이용해 민감한 법안을 ‘날치기’ 강행처리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여야3당은 이 법안에 대한 소위 공청회 한 번 개최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무상의료운동본부도 회견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평화 분위기를 이용해 날치기했다”며 “정말이지 치졸한 작태이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회견에 참석한 최영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은 “사실상 규제프리존법인 지역특구법은 공공성 파괴법이자 의료민영화법이다. 이런 법을 남북정상회담 분위기를 이용해서 날치기하려는 정치권에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최 운영위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이용해 파업 중이었던 롯데호텔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것과 흡사하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지 국민 건강과 안전과 공공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국회가 저지르고 있다”고 규탄했다.

    최미영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도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호입법마저도 전부 규제로 치부해 없애버리는 악법을 국회가 통과시켰다”며 “도대체 평화와 번영은 누굴 위한 것인가.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번영과 평화엔 이제 더 이상 상생도, 국민 생황의 안전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된 이 법안에 대해 상임위 차원의 외부인사 토론도 이뤄진 적이 없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60여 개가 넘는 규제완화 조항에 대한 국민들과의 소통과 토론은 물론 산자위 내의 꼼꼼한 검토와 토론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권미경 의료산업노련 부위원장은 “국회와 정부는 국민들이 국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법이 논의되고 있는지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규제프리존법, 지역특구특례법을 아는 국민이 대체 얼마나 되겠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을 파괴하는 이 법을 대다수가 모르는 상황에서 국회에서 통과시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민사회계는 야당 시절에 강력 반대했던 이 법안을 주도해 처리한 민주당에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민들에게 ‘평화의 단꿈’을 꾸게 하고는 뒤통수를 내리친 것”이라며 “지난 5월 최저임금법 개악처럼 대통령은 자리를 비켜주고 집권여당이 주도한 국회 날치기 처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고 질타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성명에서 “민주당이 이 법을 통과시킨 것은 촛불 국민의 요구를 위배한 것이자 집권여당으로서 책무와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며 “오늘 이 법의 통과를 묵과할 수 없고 그 책임을 문제인 정부와 집권 여당에 강력히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무상의료본부와 정의당 기자회견(사진=보건의료노조)

    정의당 “박근혜가 추진한 의료영리화, 문재인 정부가 이어갔다”

    지역특구법은 정의당 의원 전원과 민주당 소수 의원만 반대표를 행사했다. 본회의가 진행되는 중엔 국회 정문 앞에선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항의 연좌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국회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비에 막혀 들어가지 못하다가 법안이 모두 통과된 뒤에야 국회에 들어올 수 있었다.

    국회 복지위 소속인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보건의료노조 등과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과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사적 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법제도를 동원한 ‘구태 정치’의 전형이자, 그 자체가 뇌물을 통한 거래 대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법이 포장만 바꿔 전격 통과됐다”고 규탄했다.

    윤 의원은 “이 법은 대기업에 각종 특혜를 제공하고, 보건의료는 물론 교육, 환경, 농업 등 각 분야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등 매우 심각한 규제완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료영리화와 규제완화의 길을 이어간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법의 통과로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을 지키기 위한 ‘규제’는 의미가 없게 됐다. 전 지역이 의료 공공성 파괴,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농업말살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며 “만약 이 법이 폐기되지 않는다면, 이후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민주당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삼성은행’ 허용하는 은산분리 규제완화 법안 통과
    상가법은 건물주에 세제 혜택주는 법안과 패키지 처리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도 이날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재적의원 299명 중 재석 191명 가운데 찬성 145명, 반대 26명, 기권 20명이었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상한을 기존 은행법 기준 4%에서 34%로 높이고 은산분리 완화 대상을 법률에서 제한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규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금융정의연대·참여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공동성명을 내고 “향후 재벌에게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의 근거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개혁 정책이자 새로운 적폐의 시작”이라며 “만약 이날 본회의에서 이 특례법이 통과된다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전체가 지금보다 더 단단한 재벌 중심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처리된 법안 중 유일한 민생법안인 상가임대차보호법도 재석 195명 중 찬성 168명, 반대 6명, 기권 21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이와 함께 자유한국당이 주장했던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상가법은 현행법 상 상가건물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 기간을 5년으로 정하는 것을 10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다만 부칙에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임대차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소상공인 단체 등은 현재 계약 중인 임차인들에 대해 소급적용을 제한한 법안에 반발하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상가법을 개정한 것은 다행이나, 반쪽짜리 입법에 그친 것에 불과하고, 오히려 일부 임차상인들의 경우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4~5년차인 임차상인의 부담은 오히려 가중시키는 차별적인 법안”이라며 “함께 통과된 조세특혜제한법을 적용해 건물주에게는 세제혜택을 주면서도 남은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인 4-5년차 임차상인들은 거리로 내몰 수 있는 우려스럽다”고 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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