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자 고행에서 노동절 행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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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5월 12일 03: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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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봄의 교수 행진을 떠올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조금 더 젊고, 훨씬 더 멀리 걷는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연구공간 수유 + 너머’의 ‘걸으며 질문하기’는 1960년 4월 25일 교수단 데모의 21세기 판이다. 그 주체가 지식인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지배적인 사회체제에 의문을 던지고 항의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물론 ‘수유 + 너머’는 교수라는 통속적 권위를 가지지 못했고, 그들이 던지는 화두가 4.19 때보다 훨씬 첨단적임은 분명하지만, 지식인 집단의 사회적 지위와 관심사는 시대를 따라 변하기 마련 아닌가.

    “허구한 날 책만 봤어요. 직접 보고, 직접 얘기하고 싶었어요.” 국문학을 전공한다는 김태환은 단 몇 킬로미터도 걷지 못할 듯이 보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장정에 나선 이유를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중을 훈계하는 지식인, 대중에 연민을 갖는 지식인 모두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지식인이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식인 스스로가 대중일 때뿐임을 압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가 대중이며 소수자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또 우리 스스로 대중이자 소수자가 되기 위해 걷습니다(대장정 선언문 중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역할 모색의 가장 자명한 답은 언제나 참여였고, ‘수유 + 너머’ 역시 거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식인답게도 ‘배움과 깨달음’을 덧붙였다.

       
     

    배움이나 깨달음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대장정의 첫날 꽤 많은 진전이 있었을 듯하다. 까마득히 펼쳐진 부안의 너른 평야 곁에 들어선 새만금 간척지의 애초 명분이 ‘농지 확보’라니 실소가 나오지 않겠는가? 농업을 억제하기 위해 휴경보상금을 주는 시대에 새만금은 난개발 이외의 대안을 찾을 수 없지 않겠는가? 갯벌에서 캐들고 온 백합을 먹을 수 없다(아마도 이미 갯벌이 죽어서?)는 사실보다 더 처절한 깨달음은 없을 것이다.

    ‘걸으며 질문하기’의 시작은 아마도 인디아 수도자의 고행 같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절 행진처럼 될 듯싶다. 1999년에 시작된 ‘수유 + 너머’의 첫 번째 도전이 대학을 벗어난 연구공동체를 향한 것이었다면, 이번 도전은 연구소마저도 뛰쳐나온 것이기 때문이거니와, 부안에서 서울에 이르는 도정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내쫓긴 오염유발산업을 군산에서 보게 될 것이고, 아산공단의 자동차부품 노동자들과 대화하게 될 터이고, 평택에서는 대추리 투쟁에 동참할 예정이고, 안산 역전에 늘어선 초라한 외국음식점 사이를 거닐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유 + 너머’ 역시 직접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싸우기 위해 걷습니다. …… 우리는 생명의 권리, 삶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걷습니다. …… 우리의 행진은 이미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늦지 않습니다. 언제나 후회만이 늦을 뿐, 행동은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걷겠습니다(대장정 선언문 중에서).”

    몇 시간 지켜본 ‘수유 + 너머’에게는 미덥지 않은 면도 적잖이 있다. 맞춰 입은 티셔츠에 ‘be minor! be multitude!’라고 씌여 있어, multitude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다중’이라고 알려 준다. ‘다중’에 속할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말이다. 모르는 나만 ‘다중이’가 된 것 같다.

    유랑족의 ‘추장’ 고병권의, “사람들에게 생소함도 주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일단 이해해 두기로 하자. 저녁 먹는 풍경 앞에 늘어선 스무 켤레 남짓의 신발을 둘러보니, 운동화와 샌들, 랜드로바 같은 것으로 종류도 다양하고, 먼 길 갈 채비라 할 등산화는 몇 켤레 되지 않는다.

    데모 한 번 나가는데, 여벌 옷까지 챙겨가는 노조원들에 비하면 부실하기 그지없다. 새만금을 보고 ‘너무 슬퍼’ 일정이 많은 차질을 빚었다 한다. 시위와 집회를 업 삼는 꾼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하지만 그래서 좋다. 적어도 그들은, 준비돼야 시작하고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고리타분한 운동권이 아님이 분명하다.

    ‘민족 고대’는 교수들 잠자리 좀 불편하게 했다고 학생들을 내쫓았다. 국립 서울대학교 교수들은, 사회 참여를 중지하겠다는 총학생회를 칭찬해 주었다. 지금 ‘수유 + 너머’의 젊은 연구자들은 전라북도 어디쯤인가에서 뻘뻘 땀 흘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걸으며 질문하기’에 작지만 새로운 희망을 걸어 보고 싶다. 희망이라는 것이 희망의 개연성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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