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자'와 민주노동당
    [붉은오늘 사이드스토리] '정파'
        2018년 09월 19일 11:14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번 <붉은오늘>의 방송 주제 ‘한방에 정리하는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4부로 구성)와 관련 “붉은오늘 사이드스토리”는 정파를 주제로 그리스 시리자와 민주노동당을 다뤘다. <편집자>
    ——————— 

    그리스가 지옥 같은 구제금융을 8년 만에 막 졸업했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그리스의 주요공항 40년 운영권을 독일에 팔아넘겼다. 아름다운 크레타의 헤라클레온과 산토리니의 티라공항도 더 이상 그리스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의 양대 항구인 테살로니키는 독일과 프랑스에 팔아넘겼고, 아테네 인근의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IMF의 손가락에 따라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야 했다. 연금을 대폭 축소하고 저소득층의 세금을 인상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구제금융을 졸업했지만 이제는 막대한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더 큰 지옥은 아직 남아있다. 그리스 정부는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국유재산의 매각을 전담하는 공사를 설립한 것이다. 이제는 나라를 조각내 팔겠다는 계획이다.

    이 모든 것은 IMF의 겁박으로 이뤄진 것이다. IMF와 유럽연합(EU)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가 어떻게 한 국민국가를 식민지에 가깝게 조정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놀랍게도 한때는 그리스 인민들의 희망이었던 급진좌파정당 시리자(SYRIZA 급진좌파연합)와 치프라스 총리가 이 칼춤의 장본인이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인민들의 첫 희망, PASOK

    1974년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정으로 정권이 이양되면서 실시된 선거에서 인민들의 희망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이끄는 사민주의 정당 범그리스사회당(PASOK)이었다. 복지와 연금제도, 교육과 의료 혜택의 확대라는 전통적인 사민주의를 표방한 사회당에게 인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군정의 잔재가 아직은 작동하는데다 공산당의 위장(?)정당이 선거에 참여한다는 것이 악재였다. 중도우파 정당인 신민당(ND)는 사회당을 공산당과 한편이라는 간단한 전략으로 손쉽게 승리했다. 하지만 인민들은 군정과 다를 바 없는 신민당에 질리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파판드레우의 정치력이 뛰어났다.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사민주의 그리스가 시작됐지만 모든 것은 불굴의 파판드레우, 그의 정치로 시작해 그의 정치로 끝났다. 연금제도를 강화하며 인민들의 기대에 부흥하며 1985년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1인 정당의 한계는 곧바로 드러났다. 대규모 금융비리에 사회당이 연루되면서 파판드레우는 위기에 몰렸다. 1989년 선거에서 신민당에게 1당을 내주었지만 파판드레우는 연정에 참여한 좌파정당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면서 총리 자리를 지켰다. 파판드레우는 약속을 교묘한 말로 번복하면서 끌고가려 했지만 연정은 곧바로 와해됐다. 재선거에도 상황은 반복되면서 신민당이 다시 집권했다.

    사회당에 질린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탄생한 신민당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정당이었다. 집권 기간 동안 긴축재정과 복지 축소, 연금제도의 손질만을 남발하며 스스로 자멸했다. 뛰어난 언변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파판드레우는 광장으로 나가 연일 신민당을 공격하며 인민들의 마음을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1993년 총선에서 재집권한 사회당은 이후 12년간 집권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에게 사민주의는 보이지 않았다. 파판드레우의 수사에 지친 인민들도 등을 돌렸고 다시 신민당의 시대가 다시 등장했다. 자본을 등에 업은 신민당은 그리스에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이식하는데 급급했지만 인민들은 노회한 파판드레우를 신뢰하지 않았고 사회당의 지지율은 하락의 길을 걸었다.

    인민들은 신민당을 다시 선택했지만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됐다. 신민당은 민영화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고 연금을 삭감하기 위해 골몰했다. 인민들은 신민당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노회한 파판드레우 사이에서 절망했다. 사회당이 그때 새로운 카드를 내밀었다. 또 다른 파판드레우였다. 그의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였다. 매사추세츠대학과 영국 노동당의 이데올로그 집단이었던 페이비언들이 설립한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미국의 아이비 리그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런던정치경제대학을 졸업한 것은 훈장인 동시에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게오르기오스는 하버드대학 ‘경제학’ 연구교수라는 화려한 경력까지 수집했다.

    2009년 게오르기오스를 간판으로 내세운 사회당은 단독집권에 성공했다. 축배를 외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버지 파판드레우가 판을 벌리고 신민당이 길을 닦은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그리스에 상륙했다. IMF가 그리스를 지배하자 사회당과 게오르기오스는 신민당이 모두 찬성표를 던질 정도로 사민주의는 과거의 수사에 불과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때 거리의 아이들, 급진좌파 시리자가 젊은 지도자 치프라스를 내세워 광장의 힘으로 의회에 자리를 잡았다. 게오르기오스는 극단적인 긴축정책과 신민당도 놀랄 정도의 연금 삭감을 들고 나왔다. 민영화는 계획이 아니라 실행을 시작했다. 아테네의 신타그마 광장에는 대규모 투쟁이 계속됐고 그 중심에는 시리자가 있었다.

    궁지에 몰린 사회당은 조기총선을 선택했지만 허공으로 120석이 날아갔다. 신민당은 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에는 무려 50석이 부족했다. 그리스 정치에서 이런 대규모 헝 의회(과반 정당이 없는 의회)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회당은 2당이 아니라 처음으로 3당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거리의 좌파, 시리자였다.

    인민의 두 번째 희망, 시리자

    그리스 인민들은 공산당에 대해 호감과 동시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 맞서 게릴라전을 계속하며 싸운 것은 공산당뿐이었다. 사민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해외로 망명해 임시정부를 세우고 그리스의 대표임을 자임했지만 국내에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 해외에서 돌아온 망명객들은 미국을 배경으로 반공을 내세우면 공산당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공산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가슴 아픈 내전이 일어났다. 인근 국가로 망명한 공산당은 통합민주좌파(EDA)라는 위성정당을 국내에 만들어 인민들과 접촉했다.

    혼란을 잠재우고 정권을 잡은 것은 그레고리 파판드레우(게오르기오스의 조부)였다. 그레고리 는 투옥된 좌파들을 석방하고 공산당 일부를 사면하는 등 거침없는 좌회전 행보를 시작했다. 언제나 위협꺼리였던 군부 개혁을 시도하면서 왕당파와 군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고 그레고리 정권은 무너졌다. 왕당파들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혼란은 계속됐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군정이 끝난 것은 1974년이었고, 공산당이 합법화된 것은 7년 지난 1981년이었다. 인민들은 공산당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분홍색의 사회당에 표를 던졌다. 공산당은 언제나 두 자리 숫자를 유지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코민테른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산당에 대해 인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닫았다. 중앙집중제의 공산당 지도부는 요지부동이었고 당을 떠받치고 있는 청년들이 떠나 새로운 정치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이 대열을 통합시키며 이끈 것은 사회당 내 좌파그룹의 일원이었던 백전노장 니코스 콘스탄토폴로스(Nikos Konstantopoulos)이었다. 다양한 세력들을 규합해 사회당 왼쪽을 대신할 좌파와 진보연합(Synaspismos)은 1996년 총선에서 10석을 획득하며 공산당의 자리를 대신했다.

    시리자의 기원인 시나스피스모스는 하나의 경향(이념)을 가진 결사체가 아니었다. 사민주의, 생태좌파, 민주적 사회주의자, 유로코뮤니즘 등 여러 집단이 하나의 우산 아래로 모인 것이다. 밖에서 볼 때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분명한 이념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콘스탄토폴로스는 지난한 노력으로 이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데 성공했지만 이 노력은 훗날 독약으로 작동하며 시리자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그리스를 파국으로 몰고 가자 시나스피스모스는 사회당과 공산당을 대신할 급진좌파정당의 건설을 촉구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좌파연합 시리자에 참여한 당과 정파는 무려 13개에 달했다. 다수파는 시나스피스모스였지만 언제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방향을 결정했다. 게오르기오스를 앞세워 집권한 사회당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그리스는 IMF에 빠지며 인민들의 삶은 뿌리째 흔들렸다.

    시리자는 당의 차세대 정치인 치프라스를 전면에 내세워 2012년 총선에 신민당에 이어 단숨에 2당으로 뛰어오르며 사회당을 군소정당으로 내몰았다. IMF를 가져온 것은 사회당이었지만 신민당은 고분고분한 집행자였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은 인민들의 목소리로 들끓었고 시리자는 그 자리를 함께 지켰다.

    2015년 1월 총선 이후의 시리자 지지자들과 치프라스

    2015년 1월 총선은 전 유럽에게는 경악이었지만 인민들에게는 축제였다. 사민주의 왼쪽을 표방하는 급진좌파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한 것은 유럽에서 시리자가 처음이었다. 총리에 오른 치프라스는 다양한 세력들을 내각과 당 지도부에 참여시키며 시나스피스모스의 정신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럽연합과 IMF가 가혹한 구제금융안을 들이밀면서 시리자는 격랑에 빠졌다. 협상에 나선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유럽연합의 요구에 번번이 반대하며 그리스의 구체적인 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시리자 내의 급진좌파그룹은 이 기회에 그리스가 유로존(유로 단일화폐를 쓰는 나라)을 떠나자는 입장이었다. 치프라스는 재무장관을 경질하고 시나스피스모스 소속의 인물로 교체하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재무장관이 가져온 협상안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말처럼 베르사유조약이나 마찬가지였다.

    40여명에 이르는 좌파연대(Left Plartorm) 소속의 의원들은 협상안에 반대할 것과 협상안이 통과된다면 당을 떠날 것을 선언했다. 파국이 눈앞이었지만 치프라스는 신민당의 지원사격을 받아 협상안을 통과시켰다. 토론과 합의 정신이 사라지자 좌파연대와 급진세력들은 당을 떠나며 시리자는 분열됐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급진정당이라고 불린 시리자는 신자유주의의 착실한 전도사로 전락했다. 인민들이 시리자를 떠나자 지지율은 계속해서 폭락했고 내년 총선에서는 신민당의 재집권이 확실해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극우정당인 황금새벽당(XA)이 시리자의 2당 자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등장하고 있다.

    2004년 총선과 민주노동당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득표율(비례대표 정당득표 13.1%)을 올리며 10석을 차지해 화려하게 원내에 진입했다. 총선이 시작되기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5~6% 사이를 오가는 정도였다. 비례대표 3석이 현실적인 수치였다. 선거가 본격화되자 방송 토론 권한이 있는 당은 준비된 인물들을 선보였고 인민들은 그 신선함과 대안정치에 술렁거렸다. 그 중심에는 고 노회찬 의원이 있었다.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는 현장을 휩쓸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될 당시에는 범좌파가 다수파였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닦은 소위 자주파 계열과 전농은 진보정당 창당에 부정적이었다. 97년 대선에 권영길 후보가 참패를 한 것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진보정당이 아닌 민족민주전선 운동이 노선이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나타났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당에 대거 들어온 자주파들과 전농은 이후 당 지도부를 장악하면서 당을 전선체 운동의 참여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당을 흔들었다. 토론과 협의가 아니라 표결과 수적 우위가 당을 지배했다. 분열은 시간문제였다.

    진보정당에서조차 정파를 불온한 것으로 치부하는 당원들이 상당수다. 유럽의 모든 진보(좌파)정당들이 그렇듯 진보정당에는 다양한 경향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들이 공개적으로 건강하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정파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보정당은 필연적으로 인물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는 결정이 당이 지배할 위험이 높다. 그것은 곧 토론과 협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4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 원내의원들의 국회 입성 기자회견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