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울산의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았다
        2006년 05월 12일 10: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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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탈진해 가는 하청노동자들이 “현중자본 박살내자”란 구호를 쥐어짜듯 끌어올릴 때, ‘회사사수대’로 동원돼 이를 지켜보던 정규직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흘리고, 그 중 한 명이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좆까”를 외치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가슴 속에서 우뚝우뚝 솟는 그 무엇과, 눈가에서 슬금슬금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관객은 뻣뻣해지는 뒷목을 쓸어대며 떨어지는 시선을 주체하지 못한다.”

    “현중에 ‘절망의 공장’이란 이름이 붙은 지 오래됐다. 98년도 이후부터 현장 활동가들은 자기의 공장을 ‘절망’이라 불렀다. 이는 95년 이후부터 회사가 집요하게 현장을 깨오는 과정에서 연유한다. 회사는 대의원 포섭뿐 아니라, 대의원선거 자체에도 철저히 개입했다. 활동가에 대한 폭행도 예사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노조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고자질하는 회사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 조합원들이 희망을 꿈꾸기보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치지 않고 버티는 ‘절망의 공장’이 되고 만 것이다.”

    지난 2004년 11월 19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이문영 기자의 “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이라는 제목의 기사 중 일부다. 같은 해 2월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였던 박일수씨가 분신했고 현대중공업 노조는 사실상의 구사대역할을 했다. 그리고 9월에 현대중공업 노조가 민주노총에서 제명됐다.

    현대중공업의 제명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민주노조운동에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현대중공업은 결코 남의 사업장이 아니었다. 현대중공업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제명은 충격이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현중’의 제명 소식을 들으며 머리 속에는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 * *

       

    <철의 기지>는 1988년 말부터 1989년 초까지 128일 동안 계속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파업을 기록한 보고문학이다. 1990년 출간됐고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책이 됐다. 하긴 누가 ‘제명당한’ 노조의 옛 기록을 더듬어 보려 하겠는가.

    홍승일이라는 저자의 이름이 붙어있는데 실명인지, 가명인지 모르겠다. 그 이후 글 쓰는 일을 계속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는 냇물처럼 흘러내려갈 시간의 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왜 민주노총의 대의원들이 자신의 몸 일부를 도려내는 심정으로 현대중공업노조를 제명했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철의 기지>는 민주노조운동의 초창기 대공장 노동운동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내가 울산 방어진의 한복판에 서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보고문학 답게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서술한다.

    식칼테러니, 골리앗 투쟁이니 하는 ‘전설’들의 기원도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이갑용, 조돈희 같은 ‘현재적’인 이름들도 눈에 띤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분의 이야기도 있다. 책에는 1988년 12월 26일 노무현 의원이 파업중인 현중 노동자들에게 한 강연이 기록돼 있다. 일부만 옮겨보자.

    “다른 사람은 전부 휴가를 가도 괜찮지만 노동자가 하루를 놀면 온 세상이 멈춥니다. 그 잘났다는 대학교수, 국회의원, 사장님 전부가 뱃놀이 갔다가 물에 풍덩 빠져 죽으면 남은 노동자들이 어떻게든 세상을 꾸려나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노동자가 모두 염병을 해서 자빠져버리면 우리 사회는 그날로 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 경제, 사회관계 등 모든 것을 만들 때 여러분이 만듭니까? 아닙니다. 이제 여러분의 대표가 이런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오늘 한국의 노동자가 말하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우리 다함께 노력합시다.”

    오늘 대통령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록은 무서운 것이다. 이 말을 한 장본인은 까맣게 잊고 있을지 모르지만 책은 18년 전 노무현 의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소떼를 몰고 통일의 물고를 튼 기업가’로 남은 정주영 회장의 진면목(!)도 볼 수 있다.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서울 현대그룹 본사로 진격한 노동자들을 소파에 벌렁 누은 채로 맞아 손주 가르치듯 막말을 하는 왕회장님의 모습은 그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봤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민주노조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 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며 고민하는 현장의 모습을 더하고 뺄 것 없이 기록했다. 조합원들은 동요한다. 당연한 일이다. 조합원들은 노동해방의 신념으로 무장한 철의 전사들이 아니다. 그런 조합원들을 어떻게 단결시키고 투쟁을 유지하고, 승리를 쟁취할 것인가는 활동가의 몫이다.

    식칼에 찔리고, 구사대에 감금당하고, 공안경찰에 잡혀가면서 버티는 활동가들의 모습이야말로 ‘민주노조’의 생명이라는 것을 <철의 기지>를 읽으며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러다보면 한가지 의문을 피할 수 없다. “그 많던 활동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 * *

    90년대 중반, 국가는 민주화됐고 경제는 무한히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이 퍼지기 시작할 무렵, 대자본들은 신경영전략이라는 이름아래 현장장악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팀제를 도입해 현장 통제를 강화하고, 노조 중간간부들을 매수하고, 노사협조적인 세력을 만들어 노조를 이간질하고, 다물, 증산도 같은 동아리를 만들어 이상한 사상교육을 벌였다.

    당시에도 자본의 현장장악 음모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노동운동은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당시의 한 보고서는 조선업 등 중공업의 경우 작업의 동질성이 강하고 조합원의 단합이 잘되기 때문에 현장이 장악될 우려가 없지만 자동차산업의 경우 작업이 라인을 따라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참 순진했다.

    1995년 김진숙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 노동연구소가 펴내는 잡지에 현대중공업 조합원  인터뷰를 실은 적이 있다.

    87년식 프레스토 승용차를 털털거리며 약속장소를 찾아가는데 백미러를 자꾸 보던 천동지가 "뒤에 한번 보이소. 누가 따라오죠?" 하신다.
      "누가 따라오다뇨?"
      "며칠 전부터 회사 경비가 자꾸 따라다녀요."
      "미행을 한단 말이예요?"
      "예."
      "수배중이예요?"
      "아니요"
    근데 무슨 19세기 미행타령이람. 오랫동안 핍박받으며 살아온 운동권 특유의 과민 반응이겠지. (<연대와 실천> 95년 4월호)

    인터뷰 말미에 그 꼬리가 현대중공업 경비였음이 밝혀진다. 삼성만 지독하게 노동자를 감시한게 아니다. 모든 자본이 똑같은 방법을 썼다. 차이라면 삼성은 다른 자본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철의 기지>에서 “쓰라린 패배에도 불구하고 단련된 울산의 노동자 군단”에 대해 이야기한지 정확히 5년만에 현장은 사측의 손에 넘어갔다. 그리고 12년 동안 파업 한번 없는 무쟁의 사업장으로 칭송받고 있다.

    골리앗은 노동해방의 상징에서 선진노사문화의 상징으로 전락한 것이다.

    * * *

    다시 펼쳐 든 <철의 기지>는 이미 종이가 노랗게 변해 있었다. 누런 종이들이 왜 이제 와서 이런 낡은 기억을 꺼내드는 것이냐고 항변하는 것 같다. 역시나 내용을 읽어도 까마득히 먼 곳의, 옛 이야기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책을 보면 이름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노옥희’. 현대중공업노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사측이 해고자들을 지원하는 ‘검은 세력’으로 지목해 이를 가는 대표적인 인물로 책에 등장한다. 지금 노동자 시장이 되기 위해 울산에서 출마한 그 양반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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