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자유당과 더 후퇴한 내용 합의해 추진
    삼성은행 등 재벌들 은행업 진출 길 열어줘
        2018년 09월 18일 10: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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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오는 20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을 법에서 제한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내용으로 지난 8월 여야 사안보다도 더 후퇴한 내용이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의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은산분리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등 ‘삼성은행’을 허용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례법을 다루는 관련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무위원회 여야 간사는 지난 14일 특례법에 관한 내용을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가 확보해 17일 보도한 ‘인터넷전문은행 관련법안 논의결과(2018.9.14.)’ 자료에 따르면, 여야 간사들은 산업자본이 최대 34%까지 인터넷전문은행의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이에 더해 은산분리 완화 대상을 법으로 규정하지 않도록 했다. 다만 이런 특례를 적용받는 한도초과 보유 주주의 자격을 따질 때 ‘경제력 집중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고 이와 관련한 요건을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인터넷전문은행 허용 대상을 법조문이 아닌 시행령으로 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주장해온 것으로, ICT(정보통신기술기업)에 한정해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허용한다거나 재벌총수가 있는 대기업의 은행 소유를 막겠다는 당초의 논의보다도 더 후퇴한 것이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도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얼마든지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이 가능한 대상을 확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오전 자유한국당 김성태·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을 20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후, 같은 날 오후 2시경에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를 개최해 2시간 30분간 의견수렴에 나섰다.

    강병원 원내대변인은 의총 후 브리핑에서 “많은 의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개진됐다. 국회 정무위뿐만 아니라 지도부와 반대 의견을 가진 분과의 논의도 수차례 있었다”며 “결론적으로 원내지도부 책임 하에 여야 간 최종합의를 거쳐 20일 이 법안을 처리하기로 결론냈다”고 밝혔다.

    당론 확정 여부에 대해선 “당론으로 표결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원내지도부가 정치적인 책임을 지고 여야 합의로 처리하기로 한 것”이라고 답했다.

    특례법 처리를 당론으로 정하지 못한 채 원내지도부 합의로 법안 처리를 강행한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 원내대변인은 “정무위에서는 1명이 반대하고 나머지는 찬성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무위에선 제윤경 의원이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 밖에 박용진 의원 등도 복수의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특례법에 관한 우려를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참여연대, 경실련, 금융정의연대 등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재벌은행을 막아달라” “은산분리 완화 안 된다”, “삼성은행은 안 된다”며 의총 장으로 입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붙잡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 경비들이 시민단체 회원들이 들고 있던 손팻말을 훼손하고 이들을 강제로 끌어내면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의당과 경실련·금융정의연대·민변 민생경제위·빚쟁이유니온·금융산업노조·주빌리은행·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주당 의총이 열리기 직전인 이날 오후 1시 30분에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특히 여론의 이목이 집중된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여야가 반대 의견이 높은 특례법을 졸속 합의한 것에 대한 강한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사진=금융정의연대

    정무위 소속인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온 국민의 기대와 관심이 집중되고 각종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시기에 한편에서는 금융건전성 규제의 근간인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려는 여야의 졸속적인 합의시도에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지난 8월 인터넷전문은행 재정 논의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정부여당은 재벌대기업의 인터넷전문은행 소유는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하면서 법안 본문에 ‘재벌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제외를 명문화했다”며 “그런데 지금 여야가 합의했다는 내용은 ‘재벌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을 제외하겠다는 조문을 삭제했다. 명백한 공약파기이자 심지어 8월 당시 안보다도 더 후퇴한 안”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도대체 정부와 여당은 9월들어 무슨 협상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본 의원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며 “규제 완화 대상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위임함으로써 이제 정권에 따라 국회의 동의도 필요 없이 시행령을 마음대로 변경하여 은산분리 원칙을 전면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기자회견 참석자들 모두 보수정부에서도 하지 못한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문재인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데에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허권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정말 참담하다.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마저도 은산분리 규제완화에 반대해 산업자본의 소유 한도를 8%로, 노태우 정권은 이를 다시 4%로 줄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9%로 늘린 것을 국민에게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는 다시 4%로 줄였다”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촛불의 힘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권, 소위 민주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34%로로 산업자본의 소유한도 늘렸다. 이것이 민주정부, 촛불정부인가”라고 개탄했다.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교수도 “이 자리에 서서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 너무나 참담하다”며 “이 법안이 합의대로 통과된다면 재벌들이 은행업에 진출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양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이어 “재벌들은 은행업을 이용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비자금을 해외에 보내고, 정치인들은 기업에게 비자금을 쉽게 조달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이 아니라 ‘재벌왕국’이 될 것”이라고 말해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했고, 그 정신을 구현해야 할 역사적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하는 것은 그 역사적 의무를 방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촛불시민의 정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라며 “만야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 법안을 주도한 책임자에 대해 정치적 책임 반드시 묻겠다”고 경고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백주선 변호사는 “지난 정부, 지지난 정부에서 규제완화가 경제성장 등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지팡이인양 소동을 벌일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했던 측이 지금의 집권여당”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은 그 모든 것을 다 잊은 듯이 규제완화를 내세우고 있다. 규제완화 중에서도 가장 건들지 말아야 할,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은행업을 어떠한 검증과 설득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법안 개정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백 변호사는 “은행에 미치는 국민 재산권에 미치는 악영향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운 정도”라며 “이런 주장을 수차례 했지만 정부여당은 전혀 귀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민주당과 정부에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특례법에 대해선 이제 비판이 진부할 정도다. 법조문에 담지 않고 ‘경제력집중을 감안해서 정하라’고 시행령에 위임한 합의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재벌에 은행이 넘어가지 않도록, 이상한 미사여구로 민주당의 추잡한 행동이 가려지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이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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